영도에서 만난 오래된 이야기 2/3

영도의 명물, 양다방을 따라서...

2023.12.24 | 조회 2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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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장아찌 주문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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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님, 그간 안녕하셨나요? 너무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중리해녀촌을 소개할 때만 해도 영도 3부작은 3주 안에 적어 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고 없이 오랜만에 인사드리게 되어 면목이 없네요. 아이스크림을 밖에 내다 팔 정도로 추운 날씨가 이어집니다. 2023년의 문턱에서 구독자님의 12월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요? 

하루의, 한달의, 일년의, 평생의 정해진 좋은 일의 총량이 있다는 걸 믿으시나요? 전 믿는 편입니다. 1월부터 10월까지 너무 많은 행운들을 만났기 때문일까요? 11월과 12월은 강추위 만큼이나 운은 따라주지 않는 추운 시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되는 일이 없네 생각하다가, 그간 있었던 되던 일들을 떠올리곤 합니다. 감사하게 이어지던 행운들이 제법 많았기에 혹독한 추위도 견뎌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편지를 읽고 있는 당신에겐, 아직 미처 못 쓴 운이 남아 연말 내내 기쁘고 복된 일들이 가득했으면 합니다. 혹 그렇지 않더라도, 곧 2024년이 밝아오면 우리에겐 한해 만큼의 기쁨이 다시 충전될 것이니 괘념치 맙시다.

두달이 지났지만 이제라도 가쁘게 이어붙여보겠습니다. 오늘의 편지는 2023년 10월, 그러니까 아직 올해의 행운이 제 곁에 있던 시절 부산에서 들른 양다방 이야기입니다.

영도의 명물, 양다방

다방에 가보신 적 있으신가요? 카페 말고 다방이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도 다닌지 얼마 안 됐습니다. 다방은 진입장벽이 있었어요. 왠지 들어가면 안 될 것 같고 문전박대 당할 것 같은 느낌에 입구에서 고민하다가 들어서지 못한 적도 많았습니다. 이따금 여행을 하다보면 눈에 들어오는 레트로 컨셉의 카페들이 헛헛한 마음을 채워주었지만 시간이 켜켜이 묻어나는 그 감성은 느끼지 못해 아쉬웠어요.

영도에 '다방'으로 오래 이름을 알린 곳이 있다고 해서 기뻤습니다. 중리해녀촌과 양다방은 영도에 가야하는 중요한 이유였어요. 해녀촌에서 낮술을 마신 뒤, 양다방으로 향했습니다. 

중국집에 걸려있을 법한 알록달록 발을 걷고 내부로 들어섰습니다. 앞머리에 헤어롤을 말고 계신 사장님이 휴게소에 팔 것만 같은 트로트를 듣고 계셨고요. 몇몇 테이블엔 이미 손님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나훈아와 남진의 비호를 받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니 다양한 영화, 드라마에 등장했던 양다방의 모습이 여기저기 사진으로 붙어있더라고요. 최근에 양다방에서 촬영한 드라마 <무빙>이 인기를 끌면서 한국인들은 물론, 외국인들도 물어물어 찾아온다는 것이 사장님의 첨언이었습니다.

카페에선 메뉴판 쓰윽 보고 결국 아메리카노를 시키지만 다방에선 그럴 수가 없더라고요. 아메리카노가 없기도 하거니와 쌍화차를 먹어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어서요. 쌍화차를 시키고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재밌었던 건 이곳저곳에 양다방의 역사를 스토리텔링하는 판넬이 놓여있었다는 건데요. 양다방은 어쩌다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고 어떻게 현재까지 그 모습 그대로 살아남아 있는 걸까요?

양다방 변천사

<수리조선소길> 출처 :한국관광공사 
<수리조선소길> 출처 :한국관광공사 

양다방이 있는 대평동 일대는 일제강점기 간척사업으로 형성된 땅이라고 하는데요. 1887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조선소인 <다나카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경제적으로 활기를 띠는 동네가 되었다고 합니다. 해방을 맞이한 1945년 이후에도 조선업 하면 대평동 일대를 손꼽을 정도였기 때문에 어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지역을 찾아왔다고 하는데요. 사람들이 모여서 정보를 교환하고 이야기를 하려면 자연스럽게 만남의 장이 필요했을 겁니다. 

소통창구의 필요성은 1966년 최고점을 찍습니다. 참치연승어업과 트롤어업이 대서양까지 진출하면서 대평동이 조선업과 원양어업의 중심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거든요. 일종의 커뮤니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파악한 사장님은 1968년 지금 이 자리에 <양다방>을 운영합니다.

당시 양다방의 파워는 정말 엄청났다고 합니다. 원양어선에 탑승할 선원을 찾기 위해 가장 먼저 방문하는 곳이 양다방이었다고 하고요. 선원을 희망하는 사람들도 양다방의 마담에게 가장 먼저 일자리를 문의했다고 하니까요. 

파워를 알려주는 또 다른 예시는 당시 부산 택시기사들 중 영도 양다방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조선업과 원양어업이 호황이었던 시기, 덩달아 잘 되는 양다방을 보며 한땐 이곳에 다방이 줄 지어 서있기도 했다는데요. 그중에서도 단연 가장 인기를 끄는 곳은 양다방이었다고 합니다.

잘 나가던 대평동에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1980년대부터였습니다. 조선소들이 여러 곳으로 분산되고 사람들은 떠나갔습니다. 사람들이 떠나자 사랑방의 필요성도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줄지어 있던 다방은 연이어 문을 닫았고 그 사이 양다방의 운영자도 두번 바뀌었습니다. 그러니까 양다방의 세번째 주인이 헤어롤을 말고 쌍화차를 끓여준 저 여사장님이군요. 

할머니 댁에서 본 기억이 나는 옥색 선반과 굴렁쇠 소년이 떠오르는 88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길쭉한 통에 담긴 원두와 오색 찬란한 부채, 50년 전 과거로 전화를 걸 수 있을 것 같은 공중전화기와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본 것 같은 완장. 이 모든 것들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싶은 사장님의 마음이 남겨둔 소중한 유산이네요.

쌍화차의 맛과 포토그래퍼 사장님

그래서 쌍화차의 맛이 어땠냐면요. 사장님 피셜, 사장님도 감기걸렸을 때 약 안 드시고 쌍화차를 드신다고 차가 아니라 보약이라고 하셨는데 맞는 말 같습니다. 차라고 하기엔 사이사이 목에 걸리는 게 너무 많아요. 각종 견과류가 잔뜩 들어가서 속이 든든합니다. 가운데 올라간 노른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날달걀을 못 먹어서 처음엔 좀 난처했는데요. 휘휘저어서 먹으니까 그 사이 약간 익은 것 같기도 하고요. 속이 따끈해지는 게, 요즘 같이 추운 날 마시면 그만한 게 없겠다 싶습니다.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보기엔 참 귀여운 잔이지만 마시면 줄줄 흘러서 모양이 빠진다는 것 정도를 들 수 있겠네요. 

전날 여행의 마지막 일정을 아쉬워하며 늦도록 술을 마신 우리는 수척한 몰골로 쌍화차를 마시고 있었는데요. 온갖 드라마 팬들의 사진을 도맡아 찍던 사장님은 자꾸 우습지도 않은 저희의 몰골을 사진으로 남겨주시겠다며 열정을 보이셨습니다.

사장님만의 유니크한 촬영구도를 잊을 수 없을 거예요. 분명 처음 보는데 어디선가 본 것 같았던 이미애 사장님. 다음 번에 영도에 갈 때도 양다방은 거기 그렇게 있으면 좋겠습니다.

두달이 지나 되돌아본 양다방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바다의 윤슬이 아름다웠던 날이었고요. 노상을 해도 춥지 않은 날씨였습니다. 60일 남짓 지났을 뿐인데 옷차림도 날씨도 마음도 많은 것들이 바뀌었네요. 분명 하루 만큼씩 바뀌어온 걸텐데 하루 아침에 모든 게 달라져 버린 것 같은 기분입니다. 구독자께 편지를 쓰던 중, 12시가 지났습니다. 크리스마스보다 설렌다는 크리스마스의 이브가 시작 되었네요. 추운 겨울이지만 이따금 낮에 햇살이 닿는 자리는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습니다. 남은 여러분의 2023년에도 다정한 햇살이 내리쬐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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