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찾아왔습니다. 지난 번 편지를 쓸때까지만 해도 한낮엔 덥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져 옷 입기가 참 곤란한 날씨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요. 요즘은 하루 만큼씩 겨울에 다가가는 것 같네요. 참고로 글을 쓰는 지금, 저는 출가한 동생의 수면바지를 입고 앉아 있습니다. 모두들 건강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지난 주에는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바다를 실컷 보았고 음악도 실컷 들었네요. 짧았던 2박 3일 구석구석이 애틋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말랑말랑해졌던 시간은 마지막날 다녀온 영도에서 보낸 오후가 아닐까 싶습니다. 과거의 정취를 사랑하는 제게 지역의 원도심은 언제나 가슴 뛰는 장소인데요. 부산에서는 영도를 가장 좋아합니다. 한 편지에 모두 담아 보내드려볼까 생각도 했지만 곱씹고 싶어서요. 영도에서 만난 오래된 이야기를 3회에 나누어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영도편지 첫번째 이야기는 영도해녀촌의 해녀이야기예요.
영도와 처음 눈을 맞춘 건, 2021년 11월이었습니다. 편지를 보내는 오늘 10월 17일에 태어난,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 간 두번째 부산여행이었어요. 날이 추워져 아무도 없는 영도해녀촌에서 장필순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를 들으며 저물어가는 해를 보았습니다. 감동이 차올라서 눈물 흐르기 직전이었어요. 이따금 콧물도 훌쩍인 것 같고요. 세 번 까지는 필순 언니의 안개 같은 보이스에 감동하던 친구가 대체 언제까지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르는 거냐고 물어왔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아,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하면 그것도 잊을 수 없겠네요. 장필순과 이상은, 그리고 브라운아이즈를 오가며 너울대는 감성에 몸을 맡기다가 숙소로 돌아 가려던 때였습니다. 이상하게 불이 다 꺼져 있길래 기분이 세-하긴 했거든요. 쟁반 반납하러 도착한 해녀촌의 문은 굳게 잠겨 있었어요. 낭만에 잠긴 우리만 버려두고 해녀분들은 모두 퇴근을 하셨습니다. 날아가지 않게 쟁반 위에 돌 몇 개 올려두고 종점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오던 날이었습니다.
눈과 비가 오면 이 동네 사람들은 어떻게 다닐까. 단전에서부터 오지랖이 끌어오르는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며 다음번에도 부산에 오면 꼭 영도에 와야지 하고 다짐했어요. 한낮의 해녀촌은 처음이었는데 인상 깊었습니다. 너울너울 홀릴 것 같이 일렁이던 윤슬과 이 윤슬이 현실의 것임을 알려주는 해녀들의 어망. 낙지와 전복이 한가득 담긴 삶의 현장.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제주도의 대명사였던 해녀들은 어쩌다 영도에 자리를 잡게 되었을까요?
숨 쉬기 위해 멀리 떠난 제주 해녀들
제주 해녀들이 영도를 비롯한 다른 바다로 진출하게 된 계기는 일제강점기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조일수호조약으로 항구가 열리면서 해녀들의 바다에 일본인이 잠입하게 됩니다. 일본 어민들의 무자비한 침입과 불법 어획으로 인해 제주 바다에서 물질하던 해녀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녀들의 눈에 들어온 일은 바다에서 우뭇가사리를 채취하는 일이었다고 해요. 당시 우뭇가사리는 고급 비단의 광택제 원료와 군수 재료로 이용되어 물질한 해산물보다 비싸게 팔리는 아이템이었거든요. 이런 이유로 해녀들은 우뭇가사리가 많이 잡히는 경남 지역의 바다로 진출하게 되는데요. 1887년, 해녀가 최초로 제주를 벗어나 자리 잡은 지역이 당시 부산부 목도로 불리던 현재의 영도였습니다.
좌판에서 해산물 판매장과 해녀 전시관이 생기기까지
해산물을 잡았으면 팔아야 돈이 되겠지요. 해녀촌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자면 40여 년 전에 도착합니다. 영도에 자리 잡은 해녀들은 잡아온 해산물을 널어놓고 좌판처럼 판매했습니다. 현장에서 신선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는 매력에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는데요. 제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해녀의 집>에 비하면 너무나 열악했습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영도에도 제대로 된 해산물 판매장과 해녀 전시관을 갖추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고 하는데요. 2023년에서 인과관계를 살펴보면 모든 게 순탄했던 것 같지만 2016년 경 작성된 기사들을 살펴보면 쉽지 않은 과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공간을 정비하는데 필요한 사비 20억원을 확보하지 못해 정비는 커녕 해녀촌 전부를 드러내야 한다는 기사가 나오거든요. 당시 29살이던 한 시민은 영도의 명물인 해녀촌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는데요. 다행히 2019년에 해산물 판매장과 해녀문화전시관이 조성되면서 2023년인 지금까지도 중리 해녀촌의 낭만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장아지pick] 중리 해녀촌의 낭만+1
이번 여행, 중리 해녀촌의 낭만을 책임진 한 끗을 모아 보내는 코너 속의 코너입니다. 첫번째는 어차피 술을 드실 거라면 한 번에 세 병 이상 주문하는 걸 추천합니다. 왜냐면, 세 병 이상 주문하면 얼음이 가득 담긴 파란 양동이에 물병과 술을 그득그득 넣어주시는데요. 그게 저 세상 낭만이기 때문이에요. 뭐랄까, 완전히 젊음이 넘치는 해변으로 가요 감성이랄까요.
두번째로 모자를 쓰고 가서 땡볕에 앉는 걸 추천합니다. 중리 해녀촌엔 천장이 막힌 판매장 바로 앞 좌석과 해변과 맞닿은 야장 좌석이 있는데요. 대낮에 방문할 경우, 햇볕에 눈이 시려서 판매장 앞에 앉은 사람들이 승자 같고 어쩐지 나는 바보가 된 기분이 들 수 있습니다. 잔잔한 현타가 이따금 몰아쳐요. 그러나 모자 하나만 있다면 햇볕은 막으면서 낭만은 만끽할 수 있답니다. 눈은 안 부시는데 등으로 작열하는 태양볕을 느끼는 일, 저는 정말 좋아하는데요. 이거 즐기는 분들은 꼭 부서지는 윤슬 근처에 앉아 시간을 보내보세요.
마지막으로 이번 중리 해녀촌에서 들었던 노래 몇 곡을 공유합니다.
1. 단풍 같은 목소리, Billy Joel - Just the way you are
2. 노래 듣다 타투할 뻔한 백예린- 물고기
3. 우리는 왜 중경삼림을 사랑할까 : 왕페이 - 몽중인
4. "그래 나는 후져" Radiohead - creep
5. 중리 해녀촌에서 들었다고 말하기 민망하게 자주 듣는 바비콜드웰
그날의 기억이 너무 짙어서 만원 지하철에서 들어도 순식간에 바다향이 느껴지는(과장) 노래들인데요. 이 낭만이 부디, 화면을 뚫고 여러분의 고막에도 숨비소리처럼 가 닿기를 바라봅니다. 오늘의 편지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번에는 양다방에서 쌍화차 마신 이야기와 영도의 또 다른 조각, 깡깡이 마을 이야기로 편지할게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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