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을 깨고 나온 전혜린, 그녀 생의 한가운데

불꽃처럼 사랑하고 사랑하며 죽어가리

2024.04.25 | 조회 2.98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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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얼마나 오랜만에 부치는 편지인지 모르겠네요. 다짐이 느슨해지던 순간이 떠올라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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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체코 프라하에 있습니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 이제 한국에 있지 않으니 오래된 낭만을 담아 보내는 건 더욱 머나먼 이야기겠거니 생각했습니다.

당신과 다른 시간에 살게 된 지는 3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요. 모든 게 새로운 사람에겐 시간이 얼마나 더디게 흘러가는지 체감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빨리 늙고 싶지 않다면 안하던 일을 많이 하라던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요즘은 아주 사소한 것 하나도 쉽지가 않아서 빨리 늙어도 좋으니 아이 덥다 하는 시간이 오기를, 단풍이 예쁘다 하는 시간이 오기를, 이번 겨울은 유독 추운 것 같다고 까만 밤 내내 중얼거리는 시간이 다가오기를 바라고 있어요. 사람은 간사하고 그중에도 유독 간사한 유형에 속하는 사람이 저니까, 가을쯤 되면 뭐했다고 가을이 되었다고 한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그래서 다시 첫 문단의 문장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곳은 뜨문뜨문이나마 이어지던 제 낭만 궤도를 벗어나는 범위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흐지부지 끝이나겠구나 싶었는데요. 여기 온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사랑하는 이웃 모글리가 말했습니다. 이제 프라하에 갔으니 다시 장아찌를 쓰시는 거냐고요. 그 문자를 보고 두 가지 마음이 들었어요. 아직 누군가 이 장아찌를 기다리고 있다는 감사. 그리고 어쩌면 한국 역사와 비슷한 결을 지닌 체코에서 엇비슷한 궤도의 이야기들을 찾아낼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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