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구독자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오늘 보내는 장아찌는 대학가요제 초대장이에요. 어릴 땐, 대학에 가면 무조건 대학가요제에 나가는 줄 알았어요. 노래를 못하거나 악기를 못 다룬다면 응원이라도 하러 갈 줄 알았는데 제가 대학 갈 무렵 대학가요제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답니다. 사라지고 없는 대학가요제에 어떻게 초대할 거냐고요? 아직도 싱그럽게 빛나는 그 시절 대학생들의 노래를 들으러 가보려고요. 수십 년이 흘렀어도 노래 속 청춘들은 아직 푸르거든요.
🚫(반전주의) 대학가요제를 박정희가 만들었다고?
포카리스웨트 같은 청춘으로 서막을 올릴 줄 아셨지요? 뭐만 하면 '~의 기원'을 찾아대는 고질병을 고치려고 노력했는데요. 대학가요제까지만 써볼게요. 대학가요제는 70년대 말, 박정희 정권에 의해 시작됩니다. 그 시절 대통령은 왜 느닷없이 대학생들의 가요제를 열 생각을 했을까요? 늘 그렇듯, 사건의 이유를 찾기 위해선 그 시기를 기점으로 몇 년 전을 캐봐야 합니다. 1977년 제1회 대학가요제가 시작되기 3년 전, 국내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은 민청학련 사건이었습니다.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내부에 공산국가를 세우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대학생 180여 명을 구속, 기소한 사건이었는데요. 당연히 대학생들 입장에선 억울한 학생들이 간첩으로 몰려 옥고를 치르는 것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을 거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당시 정부는 대학생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릴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떠올린 게 대학가요제였죠.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무슨 결론인가 싶지만, 1970년대는 서슬 퍼런 유신정권 아래 많은 음악가가 대마초 파동과 검열로 활동을 할 수 없는 시기였지요. 음악을 원하는 사람들은 넘쳐나는데 활동할 수 있는 뮤지션들은 없고 대학생들의 관심을 끌 무언가는 필요하니, 대학생들이 스타가 될 수 있는 가요제 판을 벌일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이런 이유로 1977년부터 시작된 대학가요제는 2012년까지 이어졌고요. 수십 년간 많은 대학생 스타와 명곡을 배출해내게 됩니다.
'나 어떡해'부터 '잘 부탁드립니다' 까지 : 명곡의 연속
명곡은 1977년 1회 대학가요제부터 터집니다. 서울대 농대 재학생으로 구성된 '샌드페블즈- 나 어떡해'는 심사위원은 물론 대중의 마음마저 사로잡고 인기를 끌기 시작합니다. '나 어떡해'는 당시 서울대 농대에 재학 중이던 김창훈이 작사, 작곡하여 만든 곡이었는데요. 이 김창훈은 훗날 형 김창완, 동생 김창익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록밴드 산울림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여기까지만 듣더라도 대학가요제가 어느 정도 파급력이었는지 예상되시지요? 이쯤에서 '샌드페블즈- 나 어떡해'를 들어볼게요.
1978년 열린 2회 대학가요제에서도 대박이 또 터집니다. 2회 대학가요제의 대상은 부산대 캠퍼스 밴드 '썰물-밀려오는 파도 소리에' 였는데요. 오늘날 돌이켜 보면 썰물도 썰물이지만 2회 대학가요제 라인업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명지대학교 '심민경' 양은 다른 대학생들과 다르게 트로트 장르로 '그때 그 사람'을 불러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대학가요제에서 상을 타는 것엔 실패했지만, 훗날 이름을 심수봉으로 바꾸며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가수로 자리매김 했지요. 1878년 대학가요제에서 금상은 또 다른 여성 솔로 지원자에게 돌아갔는데요. 단국대에 다니던 노사연 양은 '돌고 돌아가는 길'을 불러 금상을 수상합니다.
이 해, 은상을 수상한 그룹을 저희 아버지가 정말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도 좋아하는데요. 한국항공대 캠퍼스 밴드 '활주로'가 전통적인 요소가 가미된 '탈춤'을 불러 은상을 탑니다. 활주로는 이듬해 약간의 멤버 교체 끝에 한국항공대학교를 상징하는 새 이름을 따와 밴드를 결성합니다. 산울림과 같이 3대 밴드로 손꼽히는 송골매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지요. 빅밴드의 시작을 예견했던 활주로의 탈춤을 함께 들어봐요.
사심을 넣어서 88년으로 시간을 좀 건너뛰겠습니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제 인생 타이틀이 대상을 타야 그 핑계로 노래 한 번 더 들을 수 있거든요. 88년 대학가요제 대상은 이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올타임 레전드 청춘의 주제가라고 생각해요. <응답하라 1988>이 '무한궤도- 그대에게'를 시그널 송으로 사용한 이유가 88년에 나왔다는 공통점 하나가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2023년의 청춘에게도 찰떡같이 어울리는 그대에게. 언제나 명곡이에요.
이번엔 90년대로 갑니다. 또 사심 넣어서 갈 거예요. 93년 대학가요제 대상 곡은 제가 너무나 사랑해마지 않는 그 그룹, 전람회가 '꿈속에서'로 수상합니다. 대학가요제 수상 이후, 전람회는 세 장의 앨범을 발표하는데요. 제가 전람회를 정말 사랑하는 이유는, 이들이 마지막 앨범인 3집에 자신들의 호시절이 담긴 '꿈속에서'를 발표했다는 사실이에요. 또 하나 멋진 모먼트는 마지막 앨범인 3집의 제목과 동명의 타이틀이 <졸업>이라는 점. (다시 곱씹어봐도 감동적이네요) 매번 저를 설레게 만드는 '꿈속에서' 함께 들어요.
마지막 노래는, 많은 분이 '대학가요제'의 마지막 노래로 기억하고 계실 그 노래, 버디버디 홈피와 싸이월드 홈피에 존재감을 드러냈던 유일한 접점. <잘 부탁드립니다>입니다. 2005년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은 이 곡으로 보컬 이상미는 논스톱 등 방송활동을 이어 나가기도 했었고요. 몇 년 전, 추억의 가수를 소환하는 프로그램 <슈가맨>에 나와 다시 한번 <잘 부탁드립니다>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오랜 시간 한국 대중음악에 한 획을 그은 대학가요제를 이 몇 명의 팀으로 정리한다는 게 너무나 아쉽고 부족하네요. 시작이야 어찌 되었든 빛나는 청춘의 초상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70년대도 80년대도 90년대도 00년대도 대학생 특유의 젊음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편지를 적었어요.
젊은 지성의 쉼터, 곱창전골 안 파는 곱창전골
대학가요제는 몇 번 부활을 위한 시동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쉽게,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만날 수 있는 이 시대에 '대학생 한정'으로 진행되는 가요제는 힘을 쓰지 못하고 이내 사라져버렸죠. 그러다 보니, 대학가요제의 낭만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 정말 드문데요. 제가 사랑하는 장소 중, 그 시절 청춘의 초상을 잘 밀봉(?)하고 있는 음악감상실이 있어, 마지막으로 동봉합니다. 젊은 지성의 쉼터를 자처하는 곱창전골은 팔지 않는 음악감상실 곱창전골입니다.
아날로그 한 정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멋진 공간이라 백예린 등 트렌디한 아티스트들의 뮤직비디오 장소로도 사랑을 받았던 공간인데요. 산울림과 대학가요제 음악이 많이 흘러나옵니다. 나름대로 다양한 지역의 음악감상실에 가보려고 애쓰는데, 이렇게 대학가요제 음악만 연달아 나오는 곳은 처음이었어요. 갈 때마다 선곡표는 달라질 수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지향하는 무드가 젊은 지성의 쉼터인 만큼 젊은 지성의 초상인 대학가요제를 아주 외면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잊을 수 없는 풍경은 9시쯤 세상 힙한 Y2K 옷을 입은 청년들이 79년 대학가요제 대상을 수상한 김학래, 임철우의 '내가'를 따라부르며 춤추는 모습이었어요. 아빠의 낡은 경차에서 흘러나오던 노래였는데 이게 이렇게 힙한 곡이었나 가사를 읊조려 보니 과연 그렇더라고요.
내가 말 없는 방랑자라면 이 세상의 돌이 되겠소
내가 님 찾는 떠돌이라면 이 세상 끝까지 가겠소
시대 불문! 힙한 '내가'를 마지막으로 함께 동봉합니다.
오늘은 여전히 싱그러운 청춘의 초상, 대학가요제를 담아 보내드렸습니다. 어떠셨나요?
사실 대학가요제는 아주, 오래전부터 담아 보내고 싶은 주제였는데요. 오히려 그러다 보니 자꾸 미루게 되더라고요. 더 좋은 방법으로 담을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그랬던 것 같아요. 봄이 다가오고 있는데요. 시대를 뛰어넘은 싱그러운 청춘의 한 조각, 여러분의 마음에 닿는다면 그걸로 전 기쁠 것 같습니다.
따뜻해지나 싶더니 날씨가 밀당을 하네요. 다시금 추워졌는데 이런 때에 건강 관리 유의하셔야야 합니다. 건강하시구요. 다음 주에도 재미있는 지난날의 이야기로 인사드릴게요. 그럼, 그때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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