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희일비 #5 입, 입, 입!!

2021.09.09 | 조회 2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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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곰의 일희일비

일희일비하는 우리의 일상에 대해 씁니다

오늘은 엄복동처럼 술 한 잔(사실은 논알콜) 했읍니다. 여러분 돼지로 사는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안해봤으면 말을 마세요.... 오지랖에 두 대 치이고 오늘은 기분이 너무 나빠 또 그만 쓰고싶었던 살 얘기를 씁니다. 긴 말 하지 않겠습니다. 제발 적당히 서로에게 거리를 두는 세상을 꿈꿉니다.

 

나는 진짜 샐러드를 먹는다고!!!!
나는 진짜 샐러드를 먹는다고!!!!


온갖 소문과 뒷얘기와 뱉은 말의 
200배 정도로 떠다니는 카더라 속에서 살면서, 이제 엥간한 얘기엔 조*세요 자동완성 기능이 장착되어있다. 누가 쟨 왜 저렇게 여성스러워?”라고 말한다면 넌 남자/여자는커녕 심지어 인간스럽지도 않으셔서 좋겠어요.”라고 받아칠 준비가 되어있고, 왜 저렇게 예민하냐고, 좋은 게 좋은거라고 살면 어디가 덧나냐고 지적한다면 예 대충 좋은 게 좋은 대로 적당히 살다 적당히 가시는 당신의 인생이 참 대충 적당해 부럽습니다!”라고 답해줄 자신도 있다.

 

그러나 내가 여전히 받아치기 힘들어하는 주제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나의 뚱뚱함을 비난하는 말들이다. 오늘도 회사에 적같은(^^) 놈들이 많아 한참 열이 받아 있는데, 하루 한 끼 먹는 샐러드를 두고 걱정하는 말이 전해졌다. 너 그러다 쓰러질까 걱정이다, 하는 실로 다정한 안부의 말이었는데 거기에 대고 누군가 쟨 좀 감량할 필요가 있지라는 적같은 말을 이어붙였다. 주변에서 왜 그런말을 해! 라고 지적해줬다면 그래도 기분이 좀 풀렸을 텐데, 그러기는커녕 와 너 (성질 더러운) 쟤한테 어떻게 그런말을... 그건 나도 참고 못하는 말인데를 얹어주는 바람에 내 기분은 더 적같애지고야 말았다.

 

이렇게 (열받게도) 세상의 부피를 내가 좀 더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게 껄끄러운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 그들의 걱정에는 다 이유가 있다. 내가 옛날처럼 예쁘지도, 건강하지도 않아서 (쓸모없는) 돼지가 된 것이 안타까운 걸테지. 그리고 그 너를 위하는 마음이라는 핑계는 모든 공격을 다 정당하게 만든다. 나는 당신을 위해서 당신의 주름과, 억지 미소와, 무능력과, 못생김을 공격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대인스타몸전시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속엔 비만은 공공연히 관리못한 원죄가 씌인 악으로 이미 규정되어 있다. 때문에 이렇게 마음놓고 걱정하는 일이 오히려 자연스러워지고 만 것이다.

 

그 따뜻한 위로와 걱정 덕분에, 일생을 하루도 말라보지 않은 나는 그 많은 말들을 내 스스로의 수치심으로 내재화했다. 덕분에 나는 아직도 샤워할 때 화장실 불을 켜지 못한다. 불빛에 비친 내 맨살들, 쳐지고 터진 흔적들이 가득한 요요의 전쟁터가 나는 여전히 스스로 역겹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몸을 똑바로 응시하지 못하는 일, 그 고통은 겪어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무엇이라, 일생 날씬해온 여러분께 이 기분을 설명하기가 참 어렵게 느껴진다. 그냥 적같은 기분, 이라고밖엔.

심지어 비건육포도... 먹는다....
심지어 비건육포도... 먹는다....

 

이렇게 누구나 비난해도 되는 흠결을 지닌 채 살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버겁다. 운동하고 밥 굶으며 20kg 넘게 감량해봤지만, 발을 다쳐 운동을 쉬고 아픈 몸을 회복하려 일반식을 먹었다가 다시 30kg 넘게 찌게 된 이야기를 여러분은 믿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실화이고, 덕분에 이 모든건 공허하다는 우울증마저 얻게 되었다는 슬픈 스토리의 주인공은 바로 여기 여러분과 살아 숨쉬는 나다. 여러분은 정녕 모를테다. 내가 근 1년 간 매일 아침 1시간씩 운동을 했고, 수술해서 회복이 필요한 시기를 제외하곤 주 6일 이상 하루 한 끼는 샐러드만 먹고 있다는 것을. 물론 코끼리도 풀만 쳐먹지만 몸집은 계속 큰 것처럼, 내 몸도 여전히 변화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낄 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걱정하니까, 라고 나름의 방식으로 건강한 돼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과정과 경과를 무시한 채 겉으로 드러난 내 결론들만 모아 비난할 구실을 찾는 사람들의 말은 이 작고 귀여운 나의 건강 의지마저 휙 꺾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어떤 날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밤새 폭식을 하고 게워내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이 말들 때문에 잠을 못이뤄 다음날 운동을 하지 못하기도 한다. 다른 말은 그렇게 잘 받아내면서 왜 이건 저까!!!’하지 못하고 이렇게 마음에 담아두는지 의아한 분들도 많겠지만, 그것은 오랜 시간 비난받아 온 이의 몸에 새겨진 자연 발작버튼에 가까울 것이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엄마가 내게 해 준 선물이 비만치료주사였다면, 많은 애인들에게 살만 조금 빼면 널 사랑할 수 있을거란 말을 들어왔던 사람이라면, 그 작은 판단의 징후만으로도 지나간 많은 세월이 돌아 날아온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묻고 싶은 분들도 계실 것이다. 그럼 살을 빼면 되는거 아니냐고. , 좋다. 내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 나도 인정할 수 있다. 독하게 마음 먹고 더 해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이미 여러 병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다이어트 주사와 약 때문에 머리가 휑하게 빠지고 손톱이 다 부러져 보기도 하고, 우울증 약을 먹으면서 아무리 아무리 굶어도 점점 불어나는 나를 발견하며 절망하기도 했다. 극단적으로 운동하다 다쳐보기도 했고, 무리하게 시도하다 모든걸 다 포기해 더 큰 부작용을 안게 된 경우도 많았다. 이런 발악 끝에 나는 오래도록 천천히 할 수 있는 방법들과 내 정신과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균형에 천착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여러분이 원하는 만큼 빠르고 독하게 감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제발 그만좀...
제발 그만좀...

 

그래도 살찐 나를 보면 답답할 것이다. 저 인간이 차지하는 부피가 부담스럽고, 제발 좀 정상으로 돌아오라고 소리치고 싶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중생들이여. 나도 내 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다. 부디 도와줄거면 PT등록비도 내주고, 나처럼 샐러드만 먹으면서, 혹은 살이 찐 채로 몇 년 쯤 살아본 뒤에 입을 열어줬음 좋겠다. 그게 아니라면 제발, 돼지는 그만 건들어라. 그러다 정말 돼지는 수가 있...은 아니고, 아무튼 다른 일을 하느라, 병과 싸우느라, 현생에 치이느라, 의지가 조금 떨어져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해해달라고 말은 못하겠다. 노력하겠다, 가 내가 뱉을 수 있는 나의 최선이다. 근데 내가 왜 음주 5회 하고도 술 못끊어서 광고 짤린 셀럽처럼 사과문을 써야 하는지도 나는 알 수가 없다. 비정상, 비주류로 사는 것은 이렇게 가슴에 많은 멍을 남긴다. 내가 뭘 하지 않아도 잘못했다고 일단 말해야 할 것 같은 상황 속에 살다보면 애초에 누군가에게 흩날리는 이런 사과들이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리니까. 부디 삶만으로 힘든 우리 서로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제발. 제발. 그리고 또 제발. 니 입은 필요할 때만 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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