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강머리 앤’은 이미 너무 유명한 작품이다. 국내 번역본만도 여러 가지니까. 좋아하는 사람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작품이다. 앤의 발랄함에 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무 정신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이건 작품 내에서도 반응이 갈리는 것이라, 앤처럼 독특한 아이를 보고 모두가 똑같은 인상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확고히 전자에 해당했다. 나자마자 고아가 된 아이, 친척집을 전전하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생업에 뛰어들었던 아이, 그렇다고 돈을 번 것도 아니고 자신의 고된 노동을 대가로 겨우 의식주를 의탁해야 했던 아이. 초록 지붕 집에 오기 전까지는 누군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을 수 없게 밝고 명랑한 아이. 눈칫밥을 먹고 컸으나 눈치보지 않고 사람에게 살갑게 다가가는 아이. 총명하고 한번 배운 것을 잘 잊어버리지 않는 아이.
여섯 살쯤 어머니께서 묶음으로 사주셨던 어린이 동화책 속에서 만난 앤은 순식간에 내 영혼의 이상향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일면 내가 닮기도 했다고 착각한 적이 있었다. 내가 꽤 어린 시절까지는 부정적인 감정이 무엇인지 아예 모르다시피 하고 자랐었는데 그런 모습이 앤과 같다고 생각했다. 사실 너무 어렸던 탓에 ‘기쁨이’가 강력하게 감정을 지배하고 있던 발달 과정 속에 있었을 뿐인데 나는 그것이 나의 메인 캐릭터인 줄 알았다. 어쩌면 내가 그녀를 너무 좋아한 탓에 우리는 닮은 구석이 많다고 믿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나는 앤보단 마릴라에 가까운 성격이 아니었나 싶다. 어딘가 완고하고 깐깐한. 충분히 통제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사람. 마릴라가 앤에게 꼬장꼬장하게 구는 것도 아이를 키워 본 적 없는 자신이 앤의 ‘교육’을 망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던 것 아닐까 생각했다. 말 많은 린드 부인을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많은 아이를 낳아 기른 그녀에게 기꺼이 조언을 청하고 의논하는 것만 봐도 누군가의 경험으로 자신의 불안을 통제하고자 했을 거라고 짐작한다.
그래서 작품 속 마릴라는 대체로 좀 냉소적으로 보인다. 어떤 상황이건 그것의 걱정스러운 면을 본다. 그걸 관리하고 통제해야 내 일상이 안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내 삶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 때 유독 불안하다. 그러나 이 생각이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삶이 마음대로 통제가 가능한 대상이 전혀 아닐진데.
어느 날 문득 아프고, 어느 날은 상황에 떠밀려 회사를 나오게 되고, 갑작스레 가족을 잃기도 하는. 반면 또 어떤 날엔 기대하지 못했던 기쁜 순간을 맞이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늘 어딘가 모르게 긴장하고 있다. 새로운 일을 맞이할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늘 상처 받지 않으려고 거리를 유지한다. 노상 새로운 저자와 번역자, 디자이너와 외주자를 맞대야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통제되지 않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 부담을 가지니, 일의 상당 부분을 불필요한 스트레스 속에서 진행하고 있는 셈이다.
내가 내 일중 좋아하는 부분은 사실 원고와 마주하는 순간이다. 글은 일부 내가 통제할 수 있다. 물론 작가의 글이므로 저자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큰 틀에서 방향을 정하고 길을 잃은 것 같은 작가에게 우리가 처음에 이런 논의를 했었다고 약속된 표지판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건 말 그대로 ‘약속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변수를 통제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앤 같은 작가가 아니라 편집자가 된 것이 아닐까? 퀸 학원을 졸업한 앤은 대부분의 시간을 통제되지 않는 아이들과 보내는 교사로 살면서 그보다 훨씬 자유로운 글을 쓴다.(길버트와의 결혼 뒤에는 완전히 달라지지만.) 대문호가 되지는 않지만 분명 자기 글을 쓴다. 자유롭게 상상하고 그 세계를 일구어 간다. 그건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은 것을 새롭게 만드는 만큼 다양한 변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마도 나는 영원히 따라할 수 없을 세계.
그래서 생각한다. 나는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 불안을 관리하지 못하는 것이 삶이라면 그 불안 속에서 무엇을 해야 행복해질까?
마릴라는 앤을 바라보고 키우면서 행복해한다. 재능을 드러내고 나중엔 든든한 조력자가 되는 앤에게 의지한다. 통제되지 않는 기쁨과 슬픔을 받아들인다. 내가 책을 만드는 일도 비슷하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하고 만드는 내내 틀어지는 일정과 더해지는 의견들에 불안해하면서도 그 책이 세상으로 나아갈 때 뿌듯하다. 누군가 만들어 낸 세계가 타인의 삶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피어날 때의 희열이 있다. 결국 불안한 사람일수록 무언가를 더 치열하게 사랑해야만 일상을 견딜 수 있는 것 같다. 그것을 사랑하기 위해서 계속 살아가고 싶어지니까. 그게 꼭 가족, 연인, 아이 같은 것들이 아니더라고 몰두하고 애착을 형성할 수 있는 대상이라면 무엇이든 좋은 것 같다. 결국 인간을 견디게 하는 건 사랑인가보다.
종종 앤과 같은 삶이 되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 재능이 툭 튀어나와서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삶.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또 사랑 받는 삶. 또 그러기 위해서라면 귀찮음이나 불편함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삶.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내가 어딘가 좀 모자라 보이고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앤이 아니라 마릴라를 닮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강퍅종 앤과 같은 삶이 되기를 바란 적이 있었다. 재능이 툭 튀어나와서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삶.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고 또 사랑 받는 삶. 또 그러기 위해서라면 귀찮음이나 불편함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삶. 그렇게 살지 못하는 내가 어딘가 좀 모자라 보이고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앤이 아니라 마릴라를 닮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강퍅하고 답답해 보이는 마릴라의 삶에도 분명한 사랑과 희망이 있었으니까. 내 삶에도, 그리고 내 일에도 어떤 새로운 기쁨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게 되었다.
모두가 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내가 사랑하는 앤’을 만나 기쁨과 뿌듯함을 한껏 맛보는 일상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모두 조금 더 행복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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