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낯선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먼저 말 걸고 다가가는 편이다.
- 나는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크게 긴장하지 않는다.
- 나는 처음 보는 사람과도 비교적 빠르게 친해지는 편이다.
성격유형 테스트에 자주 등장하는 문항인데, 내 답은 전부 ‘아니오(NO)’다. 그런 내가 덜컥 신청해버린 산행이 있었다. 이맘 때 벚꽃으로 가장 핫한 곳, 경남 진해 군항제다. 정확히 말하면 군항제를 들렀다가 통영 미륵산(고도 458m)을 가볍게 오르는 살방 코스에, 다음날 오전에는 통영 루지와 케이블카까지 포함된 일정. 실은 등산을 빙자한 벚꽃여행 코스였다.
이런 코스라면 빠르게 인원이 마감되고도 남을 텐데, 너무 멀어서 다들 신청을 안 한 걸까? 의아했지만 그건 잠시였고, 오히려 나는 내 앞까지 기회가 온 게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신나게 등산 동호회 카페 게시글에 참여 댓글을 달았다. 내 뒤로도 줄줄이 참여 댓글이 달릴 거라 생각했지만, 산행 출발 전까지 더 이상 신청자는 없었다. 그렇게 산행 공지를 올린 리더를 포함하여 먼저 신청한 남자 3명, 여자 2명, 그리고 나까지. 최종 멤버는 단 7명이었다.
인기 있을 법한 산행 코스가 외면 받은 이유는 출발하려고 다 같이 만난 자리에서 금방 밝혀졌다. 그들은 서로 너무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이었다. 그 중에는 커플도 있었다(이들은 훗날 결혼까지 한다). 그러니까 이 산행은 공지 상으로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실제로는 이미 친한 무리가 함께 가기로 맞춰둔 자리, 어쩌면 닫혀 있는 여행인 셈이었다.
끼리끼리 모임에서는 ‘낄끼빠빠’를 아는 사람들이 알아서 빠진다. 나는 그걸 몰랐고, 공지를 그대로 믿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게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이미 형성된 무리에서는 맥락이 쉽게 생략된다. 친밀해지는 동안 쌓아온 경험과 에피소드들은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가 잘 알고 있으니까. 진해로 내려가는 승합차 안에서는 그렇게 히스토리가 생략된 대화가 계속 오고갔다. 그 대화에 백퍼센트 끼지 못하는 사람은 나뿐이었으나, 그렇다고 나를 겉돌게 내버려두진 않았다. 다행히 언니들, 오빠들은 모두 거침없이 친절했다.
나만 어색한 상황에서 안 어색한 사람처럼 행동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모를 때는 모르는 대로 반응하지 않는 게 좋을지 고민하면서 어색하게 택한 내 방식은 자는 것이었다. 잘 때는 아무도 건드리지 않으니까. 마침 서울에서 진해까지 가는 길은 너무 멀었고, 우린 아침 일찍 만났기 때문에 자는 나를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언니, 오빠들을 단어로 표현한다면 ‘왁자지껄’일 것이다. 벚꽃을 보려고 진해 군항제를 찾은 사람들보다도 시끄러웠으니까. 아이처럼 끊임없이 서로를 놀려대곤 했는데, 덕분에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나의 어색함도 잘 숨겨둘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자연스레 분위기에 섞여 들었던 것 같다. 이렇게 재밌게 놀았나 싶을 정도로 우스꽝스러운 모습들을 남긴 걸 보면.
친한 무리 속에 후발로 끼면서 ‘괜히 왔나?’ 싶은 순간도 없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돌아올 때는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 시간을 ‘1박 2일짜리 경험’으로 가볍게 두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약속을 잡고 때로는 모임을 만든다. 하지만 약속이나 모임이 취소되어 집에 있게 되는 상황도 좋아한다. 이런 모순된 성격 때문에 단체 MT를 가거나 회사 워크숍을 가야할 때면 늘 부담스러웠다. 아마도 나는 함께 있기를 바라면서도 혼자 있기를 원하는 사람, 때때로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 고독을 즐기는 사람이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도 여전하다. 회사 밖에서 일을 찾아보겠다고 이곳저곳 기웃거리기 시작한 뒤로는 늘 내적 불안을 겪는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나의 외향성과 사회성을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2월 말 ‘하이노마드’라는 디지털 노마드 커뮤니티에서 트렌드 인사이트 세션을 들었다. 그때 진행자가 이런 말을 했다. “능력은 입장권, 관계가 생존권”이라는 말. 그 말이 깊게 남았는데, 내 삶에 잘 적용해보고 싶어 오래 붙들고 있었다.
그러다 2주 전, 서울 마포의 북카페에서 《베스트셀러 10만 부 팔리는 법》의 윤성훈 저자 북토크에 갔다. 저자의 경험과 노하우를 듣고 싶기도 했지만, 그 자리에 올 출판인들과 네트워킹을 해보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낯선 무리 속에 나를 한번 던져놓고 싶었다. 자신 없기만 한 건 아니었다. ‘나도 독립출판으로 책을 낸 1인 출판사 대푠데, 내 책 잘 팔려고 10만 부 팔아본 저자의 이야기 들으러 오는 건 당연한 일이지.’라고 생각했으니까. 명함 10개는 주고 오겠다는 마음으로 참석했다.
북토크는 진지했고 뜨거웠다. 서로 잘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저자에게 최근 기억에 남는 책을 묻자, 질문자가 만든 책(일레븐 출판사, 《모든 새를 보았다고 믿은 남자》)이라고 언급한 순간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하는 사이라는 사실이 부러웠다. 북토크가 끝나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였다. 나는 어느 무리에 끼어야 할지 몰라 서성이다가, 저자 사인 받는 줄에 섰다. 그때 ‘출판사 박대리’로 알려진 흐름출판 과장님이 먼저 말을 걸어주었고, 덕분에 다른 출판사 대표님과 길게 대화도 나눴다. 명함 10개를 주고 오겠다는 계획은 실패했지만 몇 마디 대화를 나눴고, 저자에게는 내 고민에 대한 조언도 들었다.
사람은 관성이 있으니까 생긴 모양대로,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대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더 안전하고,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처럼 계속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하는 사람이라면, 결국 낯선 환경에 들어가 봐야 한다. 그래서 올해는 의식적으로 다른 선택을 해볼 테다. 잘 아는 사람들 사이, 익숙한 관계가 아니라 조금은 어색하고, 조금은 불편한 자리에도 스스로를 던져보기로. 기꺼이 어색해지기로. 낯선 긴장과 불편을 알고도 한 번 더 해보는 것, 그때 나는 좀 더 다른 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 지난주 부유하는 유부가 쓴 [이 계절 이 식물]을 읽고 따뜻한 메시지를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일상을 잘 포착하고, 들여다보면서 일에 대한 이야기를 잘 전할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예고🌟 [책방산책📚]이 돌아옵니다.
제가 지난 레터 [문장 이어쓰기] 희망을 현실인 것처럼 얘기하라(2025년 5월 30일 발행)에서 제 책을 입고하며 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적었더라고요. 말을 해두니 현실이 된 걸까요? ㅎㅎㅎ요즘 제가 만든 책을 들고 책방에 방문 입고를 하고 있는데요. 소개하고 싶은 책방이 생겼어요. 생긴지 한달도 안된 신상 서점 '초록서림' 이야기를 들고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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