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너 해 쯤 전 어느 5월,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를 한번 찍어 보자는 기획에 전라남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섭외를 하러 다닌 적이 있다. 어디에도 있으나 어디에도 보이지 않던 너무나 막막했던 아이템. 신문에 난 사연을 보고 찾아가는 것도 아니고 이장님의 소개를 받은 것도 아니고 무작정 마을회관이 보일 때 마다 차를 세우고 동네 어머님들을 붙잡고 인터뷰를 했다. 새로운 사람을 찾아내보자는 마음으로100% 리얼 ‘맨땅에 헤딩’이라는 것을 하고 다녔지만 마땅한 주인공이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하염없이가고 이제 더 늦어지면 방송 자체가 엎어질 수도 있겠다 싶은 시점까지 왔다. 여기까지만 보고 안 되면 접자는 심정으로 마지막 스팟을 찾았다.
고흥의 한 섬마을. 이제는 큰 다리가 놓여 더이상 섬이 아니지만 십수년 전만 해도 아침 저녁으로 사람을 실어 나르는 배가 다니던 곳이었다. 이런 동네라면 나이가 많은 할머니들이 많을테니 누구라도 있겠지 싶었다.
마을 윗쪽에서는 섬 전체가 내려다보였는데 주황색 지붕과 파란 바다의 조화가 그림처럼 예뻤다. 좁은 돌담 골목도 운치있고 마을 어귀의 큰 나무도 일부러 옮겨다 놓은 것 마냥 맞춤이었다. 완벽한 세트장 같은 그 모습에 ‘차라리 배우를 사다가 심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집 담장에 차를 박았는데 그 순간 진짜 드라마처럼 머릿 속 배우가 나타났다. 하얀 머리에 쪼글쪼글하게 작아진 할머니가 “내 사람아 내 사람아 안 다쳤는가” 하며 뛰쳐 나오셨다. 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는 처음 들어보는“내 사람아.” 나는 그 말에 그냥 이 할머니다 싶었고 그 할머니 옆에서 한 달을 눌러 붙게 되었다.
거짓말처럼 그 할머니는 우리가 그토록 찾던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였다. 할머니 집 앞에서는 새로 놓인 다리가 보였는데 할머니는 제사 지내러 오는 아들을 기다리러 집 앞에 나가서 몇 시간이고 다리를 바라보는 것이 일이었다. 다리 위의 차가 실제로 눈으로 구분이 되는 것도 아니고 할머니가 쳐다보고 있다고 제삿날이 더 빨리 올 것도 아니지만 할머니는 그것이 당신의 사명인 것 마냥 꼬박꼬박 하루에 두세번 집 앞에 나가 앉아있곤 하셨다. 온다는 아들이 안 오니 마당에 불도 못 끄고, 비가 와서 그러나 싶어서 뉴스 일기예보만 돌려가면서 보는 할머니. 오늘 아드님이 오는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씀드려도 할머니의 아들 마중은 끝이 없었다.
서울에서 어쩌다 한 번 오는 오십이 넘은 아들. 기다린 시간이 무색하게 자식은 하룻밤 자면 휭 하고 제집으로 떠났다. 떠나는 날 트렁크 문이 안 닫히게 채워넣은 음식에 뒷바퀴 주저 앉겠다고 큰소리를 내는아들. 할머니는 이번엔 그 아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같은 자리에 앉아서 배웅을 했다. 누구집에서나볼 수 있는 그 흔한 풍경에 마음이 답답하고 시렸다. 그리고 내가 떠나던 날도 할머니는 내 이름을 부르며 그 자리에 앉아계셨다.
나는 내 할머니의 강아지였다. 내 할머니도 언제나 그렇게 나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셨다. 할머니 집에가는 날이면 할머니는 내가 오는 소리를 저 멀리 부엌 안에서도 듣고 뛰어 나오셨다.
“내 ㅅㅇ 왔는가 내 ㅅㅇ 왔는가”
첫 월급을 타던 날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동네 근처 유명하다는 식당에 갔었다. 할머니 옷장에는 뜯지도 않은 새 내복 상자가 많았었고 다른 걸 해드리에는 월급이 너무 조그마헸다. 맛있는 거나 사드리자싶어 식당에 모시고 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별것도 아닌 시골 백반집이었다. 그 한 상을 드시기도 전부터 할머니는 연신 맛있다 맛있다 하셨다. 돈 얼마나 번다고 이런 비싼거 사주지 말고 그냥 전화나 한통더 해달라고도 하셨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그게 내가 사드린 처음이자 마지막 식사였다. 물론 전화는 자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주, 섭외를 하러 그 식당에 15년 만에 갔다. 겉 모습이 바껴서 다 바뀐 줄 알았는데 식당 안은 그대로였다. 음식도 그 때 그대로였다. 할머니 할아버지만 그 자리에 안 계셨다. 맛있게 먹었는데 마음이 시큰했다. 할머니가 하늘로 가신 10월. 국화가 한창이던 그 때, 할머니 영정은 하얗고 노란 국화로 꾸며졌었고 가시던 날에 하늘이 너무나 맑았다. 앞으로 국화 냄새가 나는 푸른 가을이면 할머니가 생각나겠구나 했다. 하늘이 깊게 푸르러졌고 국화가 피기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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