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딸은 엄마를 닮는다고 하니까, 엄마에게 물었다.
대체로 엄마들은 자기 자식 고생한다고 여기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인정한 걸 보면 지금 나는 팔자 좋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결혼은 했지만 갈등이 생길 시가가 없고, 아이도 없고, 이제는 직장마저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엄마에게 확인 사살을 받고 나니 ‘나도 그리 편한 것만은 아니야’ 하고 반박하고 싶다가도 본인 딸이 이토록 편하게 지낸다는 걸 아는 것도 복이겠다? 싶어 그냥 두기로 했다.
백수도 고민은 있고 일은 있다. 나는 현재 1년 6개월째 적을 두지 않고 갭이어 중이다. 조직 생활은 이만하면 된 것 같으니 지속 가능한 일을 찾아 보겠노라고 주변에 말하고 다녔지만, 사실 아직 잘 모르겠다. 내가 무얼 하고 싶은 지, 무얼 잘 할 수 있을 지 말이다. 또 내가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이런 불안감에 손쉬운 성취감을 얻고자 찾은 것이 여러 수업들이었다.
지난 봄, 이다혜 기자님의 온라인 에세이 수업을 들었다. 시간도 많은 이 때, 좋아하는 기자님이 집에서 클릭 몇 번으로 참석 가능한 온라인 수업이라니! 게다가 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까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평일 오전 진행되는 수업이다 보니 수강 연령층은 다소 높았다. 인생의 2막 혹은 3막을 순항 중인 분들이 수강생의 절반이었고, 프리랜서나 육아맘, 취준생도 보였다. 6번의 수업, 3번의 에세이 과제를 통해 서른 개의 인생을 나눴다.
수강생분들은 에세이 과제를 통해 살면서 묵혀만 두었던 말을 길어내 글자로 옮기고 낭독했다. 동트기 전부터 하루를 시작하며 이른 아침의 고요함을 즐긴다는 부지런한 고백, 번아웃 이후 취준생의 삶으로 돌아왔지만 강박적으로 무언가를 하기보다 무기력한 자신을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그저 관찰해 보겠다던 솔직한 다짐, 어른들의 말문을 막히게 만드는,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는 어린이의 말과 행동을 담은 생생한 기록까지 특별하진 않아도 각자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 글 속에 담겨 있었다.
“사는 게 바빠 그냥 넘어 가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삶의 접힌 부분들을 펼쳐보면 다 이야기가 숨어 있어요. 글쓰기를 하는 건 시간을 내서 접힌 삶의 부분들을 펼쳐보는 거예요.” 마지막 수업 시간, 기자님은 글을 쓰는 건 스스로를 꼼꼼히 사랑하는 법이라 말했다. 그리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지금을 잘 기억하고 싶어서 쓰고, 5년 뒤, 10년 뒤 읽을 나를 위해서도 쓰는 것이고, 그게 글쓰기의 효용이라고.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나 또한 결국 잘 살고 싶어서, 나를 사랑하고 싶어서 이렇게 방황하는 거겠구나 싶었다. 이것저것 하고는 있는데, 무엇 하나도 갈피 잡을 수 없어 ‘언젠간 선으로 이어 지겠지’라고 막연히 긍정 회로를 돌리며, 온 동네 깨 뿌리듯 무수한 점들을 찍고 다닌다 생각했다. 그 때 에세이 수업의 시간들은 낯간지럽지 않게 툭 던져준 위로였다. 각자 인생을 걸고 쓰는 것이 에세이라는데, 미래의 내 글에는 어떤 인생이 걸릴지, 걸 수 있을지(사실 ‘뭐라도 하나 걸려라’하는 마음이 더 크지만) 불안하면서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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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 WAVE
유부님의 삶의 접힌 부분들을 이 뉴스레터를 통해 조금씩 볼 수 있어 행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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