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세계가 확장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나는 그것이 익숙한 곳을 벗어날 때라고 생각한다. 낯섦과 설렘, 두려움이 공존하는 곳에서는 잠들어 있던 감각들이 자연스레 깨어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내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이나 주관을 흔들고, 때로는 아예 깨부숴서 내 안에 균열을 만들어내는 것. 그리하여 이전과 같은 마음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마는 것. 그것이 마흔 이후의 성장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그래서 올해 한 가지 목표를 세웠다. 나를 계속 낯선 곳으로 데려다두는 것. 낯선 사람들 속으로, 낯선 공간 속으로, 낯선 시간 속으로. 익숙한 세계의 바깥으로 자꾸 기웃거리는 것이다. 내향인 본캐는 잠시 접어두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 미칠 지경인 호기심 많은 관찰자 부캐를 씌워 호시탐탐 탐방에 나선다.

#1.
첫 탐방지는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성미산 마을에 있는 동네책방이었다. 평일 오전, 글쓰기 수업 신청자는 대부분 엄마들이었다. 곧이어 한 엄마가 6개월 된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나타났다. 6개월 아이와 글쓰기 수업을 듣는 게 가능할까? 걱정하고 갸웃거렸던 건 나뿐이었던 것 같다. 책방 사장님도, 함께 참여한 엄마들도 별일 아니라는 듯이 아이를 안아 다독이고 돌봤기 때문이다. 서로 돌보고 서로 챙겨주는 모습. 마을이란 이런 걸까? 품앗이라는 단어를 그려낸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수업 중간 중간 아이의 칭얼거림과 울음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짜증내지 않았다. 그럴 때면 아이의 엄마보다도 함께 수업 듣던 다른 엄마들이 먼저 일어나 아이를 달랬다. 엄마가 글쓰기 수업에 집중하고 몰입하기를 바라는 엄마들의 따뜻한 마음만 보였다. 6개월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과 상황이 어떨지 우리는 너무 잘 아니까. 그 시기를 먼저 건너온 육아 선배들만이 할 수 있는 넉넉한 배려였다.
그때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배웠던 것 같다. 서로 조금씩의 불편과 소란스러움을 감수하더라도 함께이길 택할 때, 누군가에게는 작지만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는 것도.
#2.
얼마 전 전주에서 있었던 모임도 그러한 연장선이었다. 5월 한 달 간 전주 동네책방 ‘에이커북스토어’에서 ‘누군가의 첫책’ 독립출판물 전시가 열렸다. 나는 [시도라 불러야 할 어떤 실패]로 참여했는데, 전시 마무리하는 시점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커뮤니티 모임을 갖기로 했다. 굳이 전주까지 가야 하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굳이’ 그 자리에 가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했다.


총 6명이 책방에 모였다. 나이도, 지역도, 직업도, 살아온 배경이나 관심사도 모두 달랐지만 우리에겐 분명한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각자 마음 안에서 피어난 동력으로 어떻게든 책을 만들었다는 점이었다. 그 중엔 만든 책이 궁금해 한번 만나보고 싶었던 작가도 있었다. 그러니까 처음 만났지만 할 이야기도, 들을 이야기도 넘쳤다.
특히 도움이 됐던 건 34년차 라디오 방송 작가로 일하고 있는 분이 나눠 준 말이었다. 방송작가가 가진 특유의 집요함(좋은 의미로)으로 책 입고처를 계속 찾고 메일을 보냈는데 그 중 지역의 한 서점에서 ‘터져서’ 책이 계속 팔렸다는 것이었다. ‘될 때까지’ 하면 된다는 말에도, 말을 하는 작가님의 목소리에도 기세가 느껴졌다.
책이 나오고 한 달 정도는 마치 땅에 발이 붕 뜬 사람마냥 정신 못 차리고 지내다가, 이제는 판매가 저조하니 자꾸 아무 것도 안하게 된다는 말을 누군가 했을 때, 우리는 깊이 공감했다. 하지만 우리가 거기에 멈춰 있지 않도록 동력을 불어넣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책방 사장님과 전시를 기획해준 우리의 독립출판 스승님이었다.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계속 해야 해요. 나만의 마감을 만들고, 매일 작은 것 하나라도 계속. 그러다 보면 어디선가 책을 찾는 사람들이 생기고, 책으로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기게 될 거예요. 각자의 마감을 만들어 봐요. 일주일에 인스타그램 게시물 1개는 올린다든가, 매일 동네서점에 입고 메일을 계속 보낸다든가.”
책방 사장님이 아무 일이 없을 때가 바로 제안서를 만들고 기획서를 만들어야 하는 시기라고 힘주어 말할 때는 나도 모르게 정신이 번쩍 났던 것 같다.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던 거다. 혼자서는 자꾸만 자신과의 마감을 어기고 미루게 될 테니, 각자의 업무가 지체되지 않도록 단체 채팅방도 만들기로 했다. 그곳에서 그날그날의 마감을 서로 챙기고 공유하면서 이 모임을 지속해보자고.
서울로 올라온 다음 날, 나는 혼자 만들어둔 출판사 인스타 계정에 게시물을 하나 올렸다. 친한 선배의 제안으로 진행했던 북토크 겸 미니 워크숍 후기를 정리한 것. 아무도 보지 않더라도, 만들고 올리는 나는 아니까 일주일에 2-3개씩은 계속 올려보자는 마음으로 가볍게 정리한 그날, 나는 수원의 동네서점에서 북토크 제안 연락을 받았다.
이 또한 아주 우연한 기회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굳이 게시물을 만들고 올리지 않았으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뭘 해도 연결되는 게 없다 싶어지는 분이 계시다면 이 말을 꼭 건네고 싶다.
"좋은 운에 닿기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성실하게 시행 횟수를 늘리는 것밖에 없다."
<비주류 프로젝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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