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에서 일하다 보면 종종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왜 요즘 책들은 다 비슷하게 생겼어요?”
생각해보면 참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어떤 시기에는 표지가 비슷해지고, 어떤 시기에는 판형이 비슷해지고, 또 어떤 시기에는 제본 방식이 비슷해집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왜 다들 같은 방향으로 가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지요.
물론 가장 흔한 이유는 레퍼런스 때문입니다. 잘 팔린 책이 있으면 비슷한 형태를 참고하게 됩니다. 회사 내부에서 "그 책처럼 만들어보면 어떨까요?"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결정권자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반복되기도 합니다. 어쩌면 가장 안전한 선택이고, 어떤 경우에는 게으른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저는 일을 하면서 조금 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저는 작년에 필사책을 만들었어요. 아시겠지만 필사책의 형태는 대부분 누드사철제본이 유행하고 있어요. 책등을 막지 않고 실이 그대로 보이는 형태의 제본인데 책이 180도로 잘 펴지는 장점이 있습니다. 필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매력적인 방식이었죠.
하지만 저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책을 만드는 사람은 독자가 책을 사용하는 순간뿐 아니라 그 이전과 이후의 과정도 생각하게 됩니다. 인쇄소에서 나오고, 창고에 보관되고, 서점으로 이동하고, 독자의 책상 위에 놓이는 과정까지요.
누드사철제본은 책등이 열려 있습니다. 그래서 먼지나 습기에 조금 더 취약하고, 만약 액체가 닿으면 본문 종이가 직접 영향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당시 저자 역시 그런 부분을 걱정했고요.
그래서 저는 사철제본의 장점은 살리되 책등은 막는 방향을 선택했습니다.(보통 출판계에서는 반양장이라고 부릅니다. 아래 이미지는 두 방식의 차이를 간단히 설명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책은 계획대로 잘 나왔습니다. 제작 과정에서도 큰 문제는 없었고 저 역시 꽤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출간 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이벤트와 강연에서 독자들을 만났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같은 이야기를 하셨거든요.
“다음에는 누드사철제본으로 해주세요.”
“책이 더 잘 펴져서 쓰기 편해요.”
“필사책은 역시 누드사철제본이 좋아요.”
처음에는 몇몇 독자의 취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건 특정 독자의 의견이 아니라 사용자의 요구였던 거예요. 제가 우려했던 부분보다 독자들은 실제 사용 경험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결국 다음 에는 누드사철제본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들이 비슷해지는 이유가 꼭 레퍼런스 참조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업계에는 유행이 있습니다. 잘 팔리는 책을 따라 하는 경우도 있고, 경쟁작을 의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여러 출판사가 각자 다른 선택을 시도하다가 결국 독자들의 요구 때문에 비슷한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형태가 등장하지만 사람들이 가장 편하게 사용하는 방식이 발견되면 점점 그쪽으로 수렴하게 되죠. 어떤 형태는 사라지고 어떤 형태는 살아남습니다. 그 과정에서 편집자들은 계속 선택합니다. 이것이 정말 좋은 선택인지. 아니면 그냥 익숙한 선택인지. 독자를 위한 선택인지. 아니면 나를 위한 선택인지.
저는 레퍼런스를 볼 때마다 조금 경계하려고 합니다. 이미 성공한 사례를 참고하되 무조건 따라 하지는 않으려고요. 하지만 동시에 독자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낸 집단적인 선택 역시 존중하려고 합니다. 결국 책은 편집자가 만드는 물건이지만 독자가 사용하는 물건이니까요. 어쩌면 좋은 레퍼런스란 남을 따라 한 결과물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면서 검증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다른 책들을 봅니다.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왜 독자들은 이걸 좋아할까?’ 그 질문들 속에서 다음 책의 답을 찾으려고요.
그러니 혹시 서점에서 비슷하게 생긴 책들을 보게 되더라도 편집자들이 모두 같은 책을 따라 하고 있다고만 생각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때로는 여러 편집자가 각자의 고민 끝에 비슷한 결론에 도달한 결과일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필사책을 만들면서 느낀 것처럼요. 어쩌면 유행을 만드는 사람은 출판사가 아니라 독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편집자들은 그 목소리를 조금 늦게 따라가는 사람들일 뿐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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