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잘 쓰지 않는 ‘계수’라는 말은 ‘센다’는 뜻이다. 새 번역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의 날을 세는 법을 가르쳐 주셔서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해주십시오.’라고 번역했고 NIV는 number our days라는 표현을 썼다. 쉬운 성경은 ‘우리의 일생이 얼마나 짧은지 헤아릴 수 있게 하셔서 우리가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오 우리에게 제대로 사는 법을 일러 주소서. 지혜롭게 잘 사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라고 되어 있다.
돌아보면 이십 년쯤 전이다. 우연히 들렀던 성당에서 들었던 강론의 한 토막이 생각난다. 아마 신년 미사였던 것 같다. 신부님은 바로 이 말씀으로 강론하셨다. 남은 일생(30년)을 날(365*30=10,950일)과 시간(10,950*24=262,800시간)과 분(15,768,000분)과 초(946,080,000초) 단위로 계산한 결과를 후두두둑 말씀하셨다. 그렇다고 제가 지혜로워졌겠습니까라고 부드럽게 덧붙이시자 신자들의 낮은 웃음소리가 깔렸던 기억이 난다. 계수란 단순히 계산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재미있게 표현하셨다.
한동안은 시간을 계수한다는 의미를 이렇게 생각했다 월급을 받으면 먼저 반드시 지출해야 할 돈을 떼어 놓고 남는 돈을 계산하여 생활해야 한다. 빚지지 않고 살려면 대부분은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런데 지혜로운 마음은 시간 역시 세는구나! 시간을 세는 법을 배워서 시간을 귀하고 진지하게 계획하고 생활해야 하는구나.
이제는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물론 배워야만 한다. 어떻게 헤아리고 또 어떻게 사용할지를 배워야 한다. 살던 대로 혹은 마음에 좋은 대로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귀하다는 것을 깊이 느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남은 날들을 헤아린다는 것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그것을 귀하게 진지하게 사용하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보면 시간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획은 예상치 못한 사건들에 끊임없이 수정되고 또 무너진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난다. 내가 관리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빨라지는 시간, 미디어에 왕창 도둑맞는 시간, 게으름과 사소한 일들에 잡아먹히는 시간, 유익하게 보낼 수 있었는데 싶은 시간, 기력이 없어 아무 것도 못하고 흘려보낸 시간… 떠올릴수록 나의 한계를 들여다보게 된다.
더하여 우리의 판단을 뛰어넘는 삶의 아이러니가 있다. 내가 헛되이 보낸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자양분이 되었고 고통의 시간들이 배움의 기간이 되었음을 깨닫게 되는 일이다. 마치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라’는 찬송가 가사처럼.
어쩌면 이 말씀은 ‘계수함’이 아니라 ‘가르치사’에 방점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주님 가르쳐 주십시오.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어떤 마음으로 시간을 사용할지 제게 능력이 없사오니 주님의 지혜를 부어주십시오. 시간을 창조하신 분께 겸손히 가르쳐 달라고 청해야 할 일이다. 그 분이 마지막에 나에게 주신 모든 시간에 대해 판단하실 테니.
2024년, 신년의 계획이 어그러지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시간을 계수하는 것을 가르쳐 달라는 기도를 할 수 있는 마음이야말로 실로 지혜로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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