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과 은혜는 신약 성경 중 한 권인 갈라디아서의 중요 주제다. 바을이 갈라디아 지방에 있는 교회 교인들에게 쓴 편지가 갈라디아서이다. 한동안 갈라디아서를 묵상하고 있었는데 정말 쉽지 않았다. 당시 갈라디아 교회에는 예수님을 믿으면서 유대교의 율법도 지켜야 하고 특히 남자는 할례(지금의 포경수술)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들어왔는데 바울은 그 소식을 듣고 격분하여 편지를 보낸다. 그러한 주장을 ‘율법의 행위를 믿음보다 앞세우는 것’으로 규정하고 그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를 쓴다.
지금은 포경 수술을 하고 뭔가 율법을 지켰다고 자랑하지 않는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가 이해가 안 되기도 하고 그냥 교리의 정립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바을의 말이 잘 다가오지 않았다. 내 삶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싶었다.
며칠 후 교회 모임이 의정부에 있는 교회 멤버의 집에서 열렸다. 초행길이지만 네이버 지도를 검색해 보니 버스 환승 주차장까지 지하철로 연결되어 있어서 쉽게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20분 여유를 두고 제법 여유만만하게 나갔는데, 웬걸, 내 생각보다 아쉽게 놓친 버스가 너무 안 왔다.(ㅠㅠ) 게다가 내리려던 정류장을 잘 몰라 지나치며 당황하기도 하고 남의 집에 들어가기도 하고 결국 모임에 꽤 늦고 말았다. 서울을 벗어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기회기도 했는데, 문제는 나의 마음이었다. 부정적 기운이 쁌뿜이었다. 연발하는 실수에 스스로에게 속이 상하고 모임에 늦는 것에 대하여 무척 화가 났다. 모임에 늦을 수도 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나의 예상과 틀리게 여러 이유로 방해를 받고 또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하여 억을하기도 하고 중간에 돌아갈까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마음이 불편했다.
이런 마음을 곰곰이 들여다보니 내가 잘 다가오지 않는다고 느낀 ‘율법과 믿음’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날 일기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오늘 20분 여유 두고 제시간에 도착하고자 하는 나의 계획이 여러가지 일 때문에 틀어질 때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했다.’
살다 보면 하나님이 주시는 온갖 좋은 일에도 불구하고 일이 막힐 때가 있다. 그때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사실 믿음을 보여준다. 대문자 J로 자부하는 나는 수많은 to do 리스트로 삶을 채워가려는 성향이 있다. 뭐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어긋났을 때 마음이 요동치느냐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을 놓치게 된다. 성경은 율법의 행위에 근거해 사는 사람은 저주 아래에 있다고까지 말한다. 수많은 해야 할 일에 둘러싸여 그것을 성공적으로 하고자 애쓰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력 있는 관계를 누리는 것이 믿음이다.
일이 안될 수도 있다. 어쩌다 보니 늦을 수도 있다. 세웠던 계획이 무너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삶을 규모 있게 하는 그러한 계획들이 나쁜 것도 아니다, 율법도 선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것에 대하여 마음을 여는 것,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 내 뜻대로 안된다고 해도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것, 지금 아닐 수도 있고 때로는 다른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러면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 그것이 주님 은혜를 누리는 믿음의 삶이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규범을 지키고자 애쓰는 삶이 아니라 함께 하시는 주님을 의지하고 그 믿음 안에서 사는 삶이기에 어느 순간에라도 그분의 은혜를 의지하여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달라는 기도를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이런 글이 한 편 나왔다. 아무 일 없이 잘 도착했으면 안 써졌을 글이다. ^^
그리고 버스에 내려 뛰어가다가 사진 한 장도 건졌다. 이렇게 삶의 놀라움은 곳곳에 숨어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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