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닿는 길

10분 동안의 행복_목담

2024.02.29 | 조회 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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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월요일 아침 오랜만에 안개 낀 아침을 맞았다. 비가 오고 난 후 아침 출근길이었다. 눈앞까지 안 보이는 그런 안개는 아니었지만, 골목 한 자락 정도까지만 보이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이 느껴지는 그런 안개였다.

저 멀리는 안개로 싸여서 온통 하얬다. 하루아침에 동네 길목이 사라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겨울이긴 하지만 춥지는 않았고, 시야는 안개 때문에 탁 트이지는 않았지만, 비 온 후라 깨끗이 닦은 유리창으로 보는 투명한 느낌이었다. 얼마나 오랜만에 느껴본 환상적이고도, 동화 같은 느낌이던지.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출근을 해야 했고, 나에게 주어진 행복한 기분은 10분 남짓이었다.

솔직히 그 짧은 시간의 안개 낀 아침이 왜 그렇게 나에게 위안이 되었는지 처음엔 잘 몰랐다. 살다 보면 가끔씩 그렇게 기분전환을 해주는 상큼한 날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하루가 끝나갈 무렵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전날의 나의 컨디션 때문이었다.

일요일, 나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사실 일요일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최근에 나의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다. 크게 문제는 없는데 왠지 마음 한구석에 울적한 마음이 드는, 우울증일까 하는 느낌도 드는 그런 시간들이 있었다. 마음이 울적해지면 몸도 울적하기 마련이다. 그날은 겨울비가 오고 날씨마저 을씨년스러웠다. 실내 온도는 춥지 않았으나 춥지 않기 때문에 보일러를 돌리지 않으면 생기는, 썰렁한 냉기가 계속되었다. 몸이 춥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다이어트를 하고 있던 딸아이가 오랜만에 치킨이 먹고 싶다며 튀기지 않은 치킨을 먹으면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사실 내키지 않았지만, 참고 참았던 음식을 먹고 싶었던 딸이 간절히 '신호'를 보낸 것이어서, 나는 토를 달지 않고 같이 먹기로 했다. 그게 화근이었을까. 먹기는 맛있게 먹었는데, 저녁이 될수록 속이 거북하고 좋지 않았다. 따뜻한 물을 먹고, 매실차를 마시고 속을 진정시키려 애를 썼으나 속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저녁때에는 속이 미식거리더니 급기야 토를 하고 말았다.

모두 경험했다시피 토하는 일은 정말로 괴로운 일이다. 여러 차례 게워 내서야 겨우 정신이 들었다. 그래도 토를 해서 다행이었다. 꽉 막힌 상태보다는 백번 나았다. 미식거리는 속은 가라앉았으나, 몸 상태는 바닥이었다. 나는 딸 아이가 걱정되어 계속 ‘너는 괜찮니?’ 물었는데, 다행히 딸은 괜찮은 것 같았다. 나의 부실한 몸이 문제였다.

아마 몸이 으슬으슬 냉기를 느끼고 있을 때 음식을 급하게 먹은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예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하여 큰코다친 적이 있었는데, 미처 깨닫지 못하고 또 일을 치렀다.

나는 그런 후에 방에 보일러를 높이고, 이불을 깔고 일찌감치 누웠다. 예년에 비해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늙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신경성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최근 들어 위장이 계속 좋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많은 생각과 후회가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누워 있다가 생각했다. ‘아, 어쩌면 내일 출근을 못할지도 모르겠구나. 상태가 심해지면 병원에 가야겠다.’

다음날 아침에 몸 상태를 봤다. 다행히 밤새 더 탈이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젊었을 때처럼 토하고 나서 바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배는 아프지 않았지만, 잠에서 깼을 때부터 계속 재미있는 소리가 났다. ‘꼬르륵’ 소리 같기도 하고 ‘꾸르륵’ 소리 같기도 하고, 뽀글거리는 소리 같기도 했다. 어떻게 이런 소리가 날까? 나는 내 배 안이 궁금해서 한참 동안 소리에 집중하다가 아픈 것도 까먹었다. 까먹은 걸 보니 상태가 괜찮아진 모양이었다. 병원에 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소리만 요란할 뿐 아프지는 않아서 출근을 하기로 했다.

아침에 밥으로 흰죽을 써서 적당량 먹었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출근길에 나섰다. 왠지 오랜만에 외출하는 느낌이었다. 비는 그쳤고, 날씨는 춥지 않았다. 골목을 돌자 주변을 안개가 하얗게 감싸고 있었다. 와! 오랜만에 보는 안개! 환상적인 풍광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 갑자기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어릴 때 안갯속에서 놀던 생각이 나면서 위안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열감기로 몸이 아프다 아스피린을 먹고 개운해진, 그런 아침을 선물로 받은 기분이었다. 그 느낌이 좋아 천천히 걸었다. 10분 내내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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