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의 사생활

아들과 단둘이 스페인 여행 12_자날이모

2024.03.27 | 조회 2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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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그라나다에서 출발한 Alsa 버스는 정확히 2시가 50분 만에 세비야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택시 정류장을 찾아서 가보니 역시 택시들이 줄지어 있더군요. 호텔까지 편하게 이동했어요. 예약한 숙소가 스페인 광장 근처에 있어서 택시가 과달키비르 강변을 따라 달리더군요. 한강만큼 넓고 깊은 강이어서 유럽에서 유일하게 큰 배가 다닐 수 있는 강이라고 해요. 세비야를 한때 유럽 최고의 무역 도시로 만들어준 강이기도 하고, 스페인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위치까지 올려놓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도 하고요. 강변 주변 풍경이 참 예뻤어요. 세비야에 있는 동안 여러 번 강변 도로를 지나갔는데 시간이 없어서 황금의 탑과 이사벨 2세 다리 근처 산책을 못해본 것이 지금도 두고 두고 아쉽답니다.

세비야에서 우리가 선택한 숙소는 <호텔 히랄다센터>였습니다. 숙소를 세비야 대성당 근처로 잡을지 스페인 광장 근처로 잡을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시설이나 청결도가 좋다는 평이 많았고 스페인 광장의 낮과 밤을 다 구경하려면 아무래도 그 근처로 잡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이 나서 선택했는데 결론적으로는 대만족이었습니다. 세비야에서는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객실 내부 사진을 못 찍은 것이 안타까운데 객실이 정말 넓고 관리가 잘되어 있었어요. 호텔 앞에서 택시 잡기도 좋고 시내까지 가는 트램 정류장이 근처에 있어서 교통편도 좋았습니다.

그라나다에서 출발하기 전에 샌드위치 먹은 것 말고는 별로 먹은 게 없어서 배가 무척 고팠던 우리는 짐을 풀자마자 막내가 찾아놓은 호텔 근처 맛집으로 향했어요. 그런데 원래 가려고 했던 식당은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서 포기해야 했답니다. 대신 구글 평점이 높았던 바로 옆 이태리 식당으로 가봤더니 마침 한자리가 비어서 겨우 늦은 점심을 먹을 수 있었어요. 식당 이름이 <Alimentari>였는데 봉골레 파스타도 짜지 않고 피자도 맛있었어요. 다만 애피타이저를 시키는데 양이 많지 않다는 종업원의 말에 같은 요리를 두 개를 시켰더니 생각보다 큰 요리가 나와서 당황했죠. 막내랑 '우리가 배가 너무 고파서 이성을 잃은 거 같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걸 하나 더 시킬 걸 그랬다' 하면서 웃었네요.

점심을 먹고 나오자마자 세비야의 일몰 명소 중 하나인 <메트로폴 파라솔>에 가기 위해 택시를 탔어요. 일몰을 놓치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그날은 뭔가 계속 쫓기는 기분으로 다녔던 것 같아요. 막내가 <Bolt> 앱으로 불렀더니 금방 잡히더군요. 공유 택시라서 그런지 일반 택시보다 더 저렴하고 잡기가 쉬웠어요. 통상 우버라고 하는 대표적인 공유 택시 어플 <UT> 는 왠지 모르겠는데 스페인에서는 활성화가 잘 되지 않더라구요. 아마 eSIM을 깔지 않고 핸드폰 로밍을 했기 때문에 스페인 현지 전화번호가 없어서 그런 거 같았는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어요. 아무튼 막내가 잘 찾아보고 <Bolt> 앱을 미리 설치하고 간 덕분에 우리는 세비야에 있는 동안 밤낮으로 편하게 택시를 이용했답니다.

<메트로폴 파라솔>의 첫인상은 거대한 래티스컷 감자칩들이 하늘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원래는 버섯을 형상화한 건가 봐요. '세비야의 버섯들'이라는 의미의 <Las Setas De Sevilla> 라고 불린다고 해요. 그렇다고 하니 또 거대한 버섯같이 보이기도 하더라구요. 사람 맘이 참 간사하죠?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메트로폴 파라솔> 앞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어요. 만화영화에나 나올 법한 요상한 기구를 들고 퍼포먼스를 하는 분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죠.

일몰 시간이 다 돼서 우리는 표를 사기 위해 매표소부터 찾았어요. 한국에서는 티켓 예매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장에서 구매했는데요 가기 전에 알아봤을 때보다 가격이 많이 올랐더군요. 비수기라서 대기 줄이 길지 않아 다행이었는데 성수기에 오시는 분들은 스페인에 도착하자마자 홈피에서 예매하시거나 일찍 와서 대기하는 것이 좋으실 것 같아요.

매표소 왼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까지 올라가니 이제 막 해가 지고 있는 것이 보이더군요. 10분이라도 더 늦었다면 속상할 뻔했어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본 풍경인데 이 광경만으로도 이미 막내와 저는 '와아~'하고 탄성을 질렀답니다. 우기라서 하늘이 많이 흐렸는데도 노을 지는 풍경이 정말 따뜻하고 아름다웠어요.

그래도 전망대 꼭대기까지 안 가볼 수 없잖아요? 세계 최고의 목조건물이라고 하더니 옥상에 올라가 보니 정말 어마어마하더군요. 거대한 목조 지붕 위를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우리는 전망대로 향했습니다. 사람들이 중간중간 구경하느라 서 있는 동안 멈춰 서지 않고 먼저 부지런히 걸어간 덕에 우리는 전망대에서 좋은 위치를 선점할 수 있었어요.

스페인 여행하는 동안 가는 곳마다 일출은 다 챙겨봤는데 일몰을 구경한 것은 처음이어서 유구한 역사의 도시 세비야가 붉은 노을에 물들어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자주 바라보는 대신 조용히 떨어지는 태양을 같이 바라보는 것으로 감동스러운 순간의 여운을 즐겼습니다. 일출 때의 붉은 빛깔은 뭔가 쨍하고 활활 타오르는 불같은 느낌이었다면 그날 본 노을의 붉은 빛깔은 은은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더군요.

세비야는 무역도시로서의 찬란했던 과거는 사라지고 지금은 관광으로 먹고 사는 도시라고 합니다. 그래서 현대적인 개발은 힘든 도시라고 하네요. 세비야 시민들은 살기 불편할 것 같긴 하더라구요. 하지만 그 덕분에 광활하게 펼쳐진 나즈막하고 고풍스러운 건물들에 붉은 노을이 깔리는 모습을 쓸데없이 키 자랑 하는 성냥갑 같은 건물들의 방해 없이 360도로 마음껏 감상할 수 있으니 우리 같은 관광객들에게 세비야의 일몰 풍경이 특별히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소문난 일몰 명소답게 구경 오신 분들이 많았어요. 덕분에 세비야에 있는 동안 가장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을 만난 것 같아요. 전망대에서 막내가 자리 잡은 곳은 젊은 한국인 커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었는데 속으로 '자리 잘 잡았구나' 했답니다. 여러분들도 다 아시죠? 요즘은 우리나라 젊은 커플들이 모이는 장소가 최고의 포토 스팟이라는 것을요.

전망대를 다 구경하고 티켓값에 포함된 세비야 명소들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려고 상영관에 줄을 섰다가 플라멩코 공연에 늦을 것 같아 아쉽지만 영상 관람은 포기하고 내려왔어요. 내려오기 전 아쉬운 마음에 해가 다 떨어진 풍경도 한 번 더 감상하고 내려왔네요.

그라나다에 갔을 때 숙소 근처에 플라멩코 공연장 겸 레스토랑이 있는 동굴이 있다고 해서 관람할까 했는데 시간에 쫓겨서 포기해야 했던 것이 무척 아쉬웠거든요. 그런데 그라나다에서 만난 가이드님들이 세비야에 가면 꼭 플라멩코 박물관에서 공연을 보라고, 스페인 전역에서 난다 긴다 하는 댄서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권해주셔서 망설임 없이 티켓 예약을 했었답니다.

건물 바깥에는 각종 놀이 기구들도 설치되어 있고 맛집들도 많이 있어서 분위기가 활기찼어요. 시간에 쫓겨서 흥겨운 분위기를 충분히 즐기지 못해서 아쉬웠죠.

<메트로폴 폴리스>에서 <플라멩코 박물관>으로 향하는 길은 골목 골목을 왔다 갔다 하면서 가야 했는데 박물관 근처 골목들은 가로등이 밝지 않아서 살짝 무섭더군요. 구글맵 덕분에 잘 찾아가긴 했는데 저처럼 겨울에 오시는 분들은 알고 오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어두컴컴한 골목을 몇 번 돌자 커다랗고 까만 문 사이로 환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건물이 보였어요. 늦은 시간이라 박물관 전시실은 문을 닫았고 공연장만 문을 열고 있었죠. 좌석 지정제가 아닌 데다 공연장 크기가 작아서 최소한 30분 전에는 도착하는 게 좋다는 후기가 많았는데 역시 가보니 좌석이 작은 무대를 둘러 디귿자로 넉 줄 정도밖에 없더군요. 이미 앞 두 줄은 자리가 차 있어서 우리는 가장 자리 셋쨋줄 정도에 앉았는데 무대가 바로 앞에 있어서 어느 자리에 앉아도 공연을 즐기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을 것 같았어요.

공연은 한 시간 남짓 진행되었는데 내용은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어요. 다만 공연 전체에 대한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커튼콜 사진도 한 장 못 찍고 나온 것이 애석할 따름이에요.

기타 연주자 한 명과 남자 가수 두 명, 여자 댄서 두 명, 남자 댄서 한 명이 나와서 공연을 펼쳤는데 저는 기타 소리가 울리는 순간 벌써 온몸에 전율을 느꼈답니다. 원래 기타 연주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울림이 좋은 공연장 구조 때문인지 기타 연주자의 실력이 좋은 덕분인지 공연장에 울려 퍼지는 기타 소리가 이미 우리들을 집시들의 삶 속으로 멱살 잡고 끌고 들어가는 듯한 느낌의 몰입감을 주었거든요. 대신 두 명의 가수 중 나이가 좀 더 들어 보이는 가수 분은 목 상태가 좋지 않은지 계속 삑사리를 내셨어요. 그래도 귀를 뚫고 폐부를 찌르는, 때론 애절한 듯 때론 처절한 듯한 노랫소리가 댄서들의 열정적인 춤사위와 잘 어우러져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려 주었지요. 댄서들의 실력은 뭐 직접 보시라는 말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네요. 사람을 홀리는 표정들과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선보이는 듯한 춤 솜씨는 말할 것도 없고 어찌나 발 구르는 실력이 빠르고 찰진지 마룻 바닥 울리는 소리가 시종일관 어깨를 들썩이게 해서 춤이 끝날 때마다 환호를 지를 수밖에 없는 공연이었어요.

세비야에 가시는 분들은 꼭 플라멩코 공연을 챙겨 보시길 바랍니다. 플라멩코의 진수를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세비야 시내 곳곳에 플라멩코 의상과 기타, 그리고 공연 소품들 파는 가게들이 많은 이유를 아시게 될 거예요.

공연이 끝난 후에도 마룻바닥 울리는 소리가 계속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막내와 저는 저녁을 먹고 들어갈까 그냥 갈까 의논하면서 세비야의 밤거리를 잠시 걸었어요. 꽤 늦은 시간인데도 일요일 밤이라 그런지 거리에 여전히 먹고 마시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하지만 점심을 너무 늦게 먹어서 그런지 사실 배가 많이 고프진 않았고 피곤하기도 해서 우리는 그냥 슈퍼마켓에서 오렌지 환타와 간단한 간식거리만 사들고 숙소로 돌아와 쉬면서 그동안 미뤄두었던 여행경비 정산을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어요. 침대가 크고 좋아서 그런지 꿀잠을 잤답니다.

다음날 아침 조식을 먹기 위해 뷔페 식당으로 향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음식 종류가 많고 맛있어서 과식을 했어요. 막내는 무려 네접시나 해치웠답니다. '호텔 리뷰가 좋은 이유가 있었구나' 하면서 행복해하더군요.

스페인으로 오기 전 막내와 여행을 계획하면서 앞 선 세 도시에서 가이드투어를 하고 나면 스페인 역사나 문화에 대해서는 어느정도는 알게 될 것이니 마지막 도시인 세비야는 가이드 투어 없이 우리끼리 자유롭게 돌아보자고 얘기했었어요. 물론 오기 전에 막내가 꼭 둘러봐야할 관광지에 대한 정보는 정리해왔지요. 그래서 다른 때보다 아침 시간이 여유로워서 좋았어요. 그라나다에서도 그랬지만 일주일쯤 지나니까 시차적응도 끝났고 체력도 떨어질 대로 떨어져서 아들과 저 둘 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정말 다행이었죠.

여유롭게 아침 식사를 마친 우리는 택시를 불러 미리 공식 홈페이지에서 예약해둔 티켓 입장 시간에 맞춰 세비야 대성당으로 향했어요. 세비야 대성당은 스페인 전체를 놓고봐도 대표적인 명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티켓 예약은 될 수록 일찍 하시길 추천드려요.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페르난도 3세때 세비야를 탈환한 스페인의 카톨릭 세력은 세비야의 한 가운데에 있는 모스크가 마음이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160년 간 그 자리를 지킨 모스크의 대부분을 헐고 세비야의 번영과 부를 자랑할 수 있는 웅장한 규모의 성당을 짓기 시작했다네요. 중세 고딕양식 건축물의 진수로 알려진 성당이지만 그런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입구에서부터 옛 모스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1400년경 건축을 시작해 완공되는 데에는 100년 이상이 걸렸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성당이라고도 하고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지만 대성당 입장 대기줄은 이미 길게 늘어나 있었어요. 예약한 시간보다 20분 정도 일찍 도착했는데도 혹시라도 제 시간에 못들어갈까봐 조바심을 내며 기다리고 있었죠. 그런데 우리 앞에 서 있던 백인 여자 두 분이 담배를 피기 시작하는 거예요. 왠만하면 참으려고 했는데 습해서 담배 냄새가 더 진하게 나니까 기침이 계속 났답니다. 제가 계속 콜록거리니까 눈치가 보이는지 빨리 피고 끄는 것 같기는 했어요.

유럽에 가면 어디서나 자유롭게 담배를 피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돼죠. 이미 공공장소에서는 금연이 당연한 문화가 되어버린 우리나라에 살다가 그런 모습을 보게 되면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어지간하면 그들의 문화를 존중해주고 싶은데 담배 냄새만큼은 정말 참기 어려워서 가끔 피할 데가 없는 데서 흡연자를 만나게 되면 난감하더군요.

다행히 늦지 않게 입장한 우리는 세비야와 대성당의 역사에 대해 알려주는 자료실 같은 곳을 대충 둘러보고 성당 내부로 들어갔는데 들어가면서 둘 다 모자부터 벗었답니다. 경비하는 분들이 많은 성당에 들어가게 되면 모자를 벗어달라는 요청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종교적인 의미가 있겠거니 하고 그럴 때는 바로 벗는데 해외 여행 중 특히 종교적인 건축물들을 방문하실 때는 복장 규정을 미리 알아두고 가시면 좋을 것 같아요. 샌들이나 반바지, 소매없는 상의를 금지하는 곳도 있으니까요.

성당 내부에 들어가자마자 왼쪽으로 <히랄다탑>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는데 탑을 구경하시려면 이때 바로 올라갔다 오시면 좋아요. 계단이 많지 않아서 올라갈만 하지만 그래도 탑이다보니 경사진 길을 제법 올라가야해서 초반에 올라갔다 오는게 체력 안배를 위해 좋은 순서인것 같더라구요.

보통 탑이라고 하면 멋진 전망을 기대하고 올라가시잖아요? <히랄다탑>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을 물론 더할나위없이 멋지지만 안타깝게도 안전을 위해 설치해둔 철조망이 시야를 많이 가려서 제대로된 전망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올라가는 중간 중간 층마다 나있는 창문을 통해 전망을 먼저 감상하고 사진도 찍고 하면서 천천히 올라가시는 것도 좋을 거예요. 성당 외부의 디테일을 감상하기도 여기가 딱이더라고요. 내려오면서 볼 생각으로 창문들을 건너 뛰고 올라가시면 내려오실 때 사람들에 치여 멈춰서서 구경하시기가 쉽지 않으실 거예요.

드디어 꼭대기에 도착하니 28개의 종들이 우리를 반겨주더군요. 원래 이슬람 세력들이 12세기 말 기도시간을 알려주는 용도로 세운 첨탑이었는데 카톨릭 세력이 들어서면서 십자가를 덧붙여 교회 종탑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꼭대기에 믿음을 상징하는 여성상을 세워 풍향계 역할을 하게 했기 때문에 스페인어로 풍향계를 의미하는 '히랄다' 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죠

비가 와서 뿌옇게 보이긴 했지만 뷰가 예쁘긴 하더라구요. 막내와 저는 사람들을 피해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느라 서로 떨어져서 한참을 돌아다녔네요. 내려오면서는 '아까 올라올 때 바깥 구경하면서 올라오기를 잘했다'고 서로 칭찬했죠.

히랄다 탑을 돌아보던 중 눈에 들어온 <마에스트란자 투어장>의 모습인데요, 동물학대 논란 때문에 투우장을 가지고 있는 스페인의 많은 도시들은 요즘 투우경기를 실시하지 않는다는데 세비야는 아직까지도 투우경기를 볼 수 있는 극소수의 도시 중 하나라고 하네요. 시간이 없어서 가보지 못한 것이 아쉬운 장소 중 하나였어요. 투우경기는 4월부터 9월까지만 열린다고 하니 그 때 여행가시는 분들은 구경 가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탑에서 내려와 우리는 본격적으로 성당 내부를 구경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성당답게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솔직히 어디서부터 구경해야할 지 잘 모르겠더군요. 세비야가 그 당시 누렸던 번영의 정도가 어느정도였는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였어요. 황금제단이 있는 주 예배당 말고도 건물 벽쪽으로 온갖 유명한 예술가들의 작품들로 치장된 작은 예배당들이 줄지어 있는 것을 보니 단 한뼘의 빈 공간도 허용하지 않은 내부 장식의 수준에 숨이 막히더라구요.

특히 황금제단은 실제로 보시면 화려함의 정도가 혀를 내두를 정도랍니다. 바티칸의 성베드로 대성당을 구경할 때도 그랬지만 '뭘 이렇게까지 치장을 했단 말이야!'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요. 구경하기는 좋았는데 둘러보면 둘러볼 수록 이건 인간의 욕망으로 지은 것이지 과연 하느님이 이런 화려한 성당을 짓길 원했을까 하는 의문이 자꾸 드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아무튼 세비야의 최고 명소답게 성당 안은 관광객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성수기에 왔다면 가이드투어 없이 구경하기는 힘들었겠다 싶었어요.

사람들이 세비야 대성당에서 제 1순위로 보고싶어하는 것이 콜럼버스의 무덤이라고 하더군요. 원래는 도미니카 공화국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라고 해요. 역시 쉴 새 없이 많이 사람들이 그 앞으로 몰려들었어요.

콜럼버스의 관을 지고 있는 4명의 왕관을 쓴 남자 동상은 스페인이 통일되기 전 4개의 왕국의 왕들을 상징한다는 얘기도 있고 4천사 성인을 상징한다는 얘기도 있는데 가이드투어를 하지 않아서 어떤 게 진실인지는 잘 모르겠더라구요. 관이 공중에 떠 있는 이유도 콜럼버스가 생전에 스페인땅에 묻히지 않겠다는 유언을 남겨서 그렇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 얘기 또한 진실인지 알 수 없었구요. 아무튼 스페인의 대호황 시대를 열어준 인물이라 그런지 무덤을 장식한 동상이 보통 정성으로 만든 작품은 아니다 싶게 멋있었어요.

주예배당과 소예배당의 벽과 천장에 붙은 모든 것이 훌륭한 유물들이었지만 특히 그 중에서도 누가 봐도 보물이구나 싶은 유물들을 모아놓은 보관실이 두 군데가 있었어요. 들어가는 입구의 문만 봐도 위압감이 느껴지죠?

사실 종교가 없다보니 그 보물들의 종교적 의미나 예술적 가치에 대해 알 수 없었지만 그냥 눈으로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억에 남을 만 했습니다. 세비야 대성당의 위세가 어느 정도였는지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네요.

이곳은 성물 보관소인 듯 했는데요 세상의 모든 보석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꼭 들러보셔야할 곳입니다. 성물을 장식한 보석들의 향연에 눈이 즐거워져요.

성상 내부 곳곳에서도 모스크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특히 이슬람 건축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수들도 많이 남아있어서 인상적이었어요.

화려한 조명들과 스테인드 글라스 그리고 모카라베 양식도 생각나는 천장 디테일 또한 감탄을 자아냈는데 다 둘러보고 나니 솔직히 가이드투어를 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살짝 들더라구요. 아름답고 멋지고 굉장하다는 건 알겠는데 의미를 모르고 둘러보니 아쉬움이 많이 남았어요. 감동의 깊이도 덜한 것 같구요.

우리 막내가 열심히 핸드폰을 들여다 보고 있는 모습 보이시죠? 사실은 대성당 내부에 들어서면서부터 막내가 유투브에 올라온 세비야 가이드님들의 세비야 대성당 내부 설명 영상들을 열심히 찾아보더라구요. 가이드의 설명없이 구경하려니 본인도 답답했던 것 같아요. 스페인으로 오기 전에 미리 봐둔 영상도 있었다는데 성당 내부가 너무 넓고 복잡해서 영상들을 봐도 그 속도대로 주요 스팟을 찾아가기가 쉽지 않더군요. 데이타가 느려서 영상이 툭하면 끊기기도하고 또 가이드님마다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장소도 많아서 그걸 일일이 찾아서 들으며 구경하려고 하면 잘못하다가는 성당 안에서 하루를 다 보내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더라구요.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더 정신없기도 했구요.

성당 구경보다 유투브 쳐다보는 시간이 더 많은 아들을 보니 안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그냥 영상은 끄고 우리끼리 눈으로 구경하고 가자. 나중에 돌아가서 찾아봐도 될 것 같다' 했는데 아들 생각은 그게 아니었나봐요. 뭔가 엄마를 위해 애써 영상을 찾아 들려주려는 성의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기분이 거슬렸나봐요. 좀 돌아보다가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파서 그만 보고 나가자고 하니 굳은 얼굴로 따라 나오더군요. 생애 처음으로 본인 주도하에 계획을 짜고 온 해외여행인데 엄마가 참을성을 가지고 하자는대로 따라줬어도 되는 건데 여행 막바지에 접어들어 형편없이 체력이 떨어지니 제 참을성도 바닥이 났던 것 같아요.

그래도 성당 밖으로 나와 비오는 가운데서도 상큼한 분위기를 한껏 자아내고 있는 오렌지 정원에서 서로 인증샷도 찍어주고 맛집도 찾아보면서 분위기는 다시 괜찮아지는 듯 했어요.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오기를 잠시 기다리는 동안 여행을 하면서 자잘하게 쌓였던 감정들을 서로 드러내기 전까지는요.

그 이야기는 여행기 마지막에 한번 풀어볼게요. 어찌됐든 음식이 나오기 전 서로 대화가 잘 돼서 다행히 우리는 편안한 마음으로 밥을 먹을 수 있었어요.

대성당 바로 앞에 있는 <Gusto>라는 식당은 빠에야 맛집이더군요. 스페인에 오면 오징어먹물 빠에야를 먹어봐야한다고 해서 계속 기회를 엿봤지만 딱히 맛있다는 집을 찾지 못해서 못먹고 있었는데 그 집에서 먹은 오징어먹물 빠에야는 정말 맛이 있었어요. 물론 소금을 빼달라고 했고 그래서 간도 딱 좋았죠. 옆테이블을 보니 오징어먹물이 들어가지 않은 그냥 해산물 빠에야를 먹고 있었는 데 그 것도 정말 맛있어보였어요. 세비야에 하루 더 있었다면 해산물 빠에야도 맛보러 다시 갔을 것 같아요. 빠에야 맛집 찾으시는 분들 이 식당에 한번 들러보시길 추천드려요. 종업원들도 매우 친절하셨어요.

세비야의 거리가 다른 도시들에 비해 유독 이국적이고 아름답게 보였던 이유는 가로수가 전부 오렌지나무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바르셀로나나 마드리드에도 간혹 오렌지 나무를 가로수로 쓰는 골목들이 있었지만 그건 극히 일부였고 세비야만큼 오렌지 나무 가로수가 많은 곳은 없었거든요. 세비야의 날씨가 연중 따뜻한 편이다 보니 한겨울에도 주황색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더 예뻤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알록달록 다채로운 색깔의 건물들이 자주 눈에 띄는 것도 좋았어요. 관광지로서 관리가 잘되고 있는 느낌이었네요. 건물들이 낡았지만 관리가 잘되어 있다보니 보기에 흉물스럽거나 하지 않고 아름다운 중세도시에 와있는 기분이 들게 하더군요. 비가 오는 날씨에도 이렇게 예쁜데 해가 쨍한 날은 얼마나 예쁠까요?

호텔로 돌아가는 길 시내와 숙소가 있는 동네를 연결하는 지상 트램을 타보기 위해 세비야 시청사 앞 광장을 지나다가광장 공중에 달린 크리스마스 조명 장식들과 시청사 건물에 장식된 거대한 성탄 구유을 구경했어요. 그 규모를 보고 세비야 사람들 크리스마스에 진심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비는 그쳤지만 아직 하늘이 많이 흐려서 저 거대한 크리스마스 조명들이 밤이 되면 얼마나 아름답게 변할지 잘 감이 오질 않았어요.

그런데 그날 저녁 야경을 보러 다시 시내로 나온 막내와 저는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 아름다운 광경 다음주에 구경시켜드릴게요. 기대해 주세요.

다른 도시에서는 타볼 기회가 없었던 트램 정류장이 숙소 근처에 있어서 호기심에 타봤는데 정류장이 몇개 되지 않아서 한대가 계속 순환하면서 운행되는 듯 했어요. 한번 타는 요금은 1.4유로로 싼 편은 아닌데 그래도 시내와 숙소를 연결하는 대중교통편으로는 가장 편리한 수단이었어요.

트램 정류장 앞에 <마리아 루이사 공원>이 있어서 호텔로 가기 전에 잠깐 들러보았는데요, <스페인 광장>과 바로 이어지는 공원으로 원래 <산텔모 궁전>의 정원으로 쓰이던 땅을 마리아 루이사 공주가 세비야 시에 기부하면서 공원으로 조성되었다고 하더군요. 1929년에 열린 <스페인 아메리카 박람회>를 앞두고 프랑스 조경사 쟝 클로드 포레스티에가 공원을 재단장 하면서 한번 더 업그레이드 된 공원이라고 합니다. 세비야 시민들의 산책 코스로 사랑받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비가 그치자마자 간 거라서 진흙탕이 많아 그렇게 큰 감흥을 느끼진 못했네요.

마트 구경에 진심인 막내 덕분에 숙소 근처에 있는 큰 마트에 들러 또 이것 저것 간식거리를 사들고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야경을 보러 나가기 전에 젖은 옷도 좀 말리고 잠깐 낮잠도 자면서 꿀맛같은 휴식을 취했어요.

다음주 수요일엔 스페인 광장과 시내 야경 투어 이야기로 돌아올게요. 기대해주세요. 여러분 다음주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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