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여행에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여행을 함께 한 가족들과 서로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나는 베니스의 우물 이야기를 들은 것이 좋았다고 했고 남편은 사계 공연을 최고로 꼽았다. 딸의 대답은 간단했다. “틴토레토의 최후의 만찬!”
우리 가족은 베니스 여행 첫날 베니스 야경 투어에 참여했는데, 저녁 다섯시쯤 만나 우리를 이 골목 저 골목 데리고 다니며 설명을 하던 가이드 언니는, 해 그림자가 길어지자 우리 일행을 수상 버스(바포레토)에 태우더니 배로 오분쯤 거리의 마조레 섬으로 데리고 갔다. 선착장 앞에는 작은 돌마당이 있고 성 마조레 성당과 신부님이 사시는 숙소가 다인 작은 섬이었다. 신부님도 퇴근하셔서 인적이 없었고 우리밖에 없는 텅 빈 섬에 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베니스에서 복작복작 있다가 사뭇 새로운 기분이었다.
문이 열려 있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조명은 있지만 어둑어둑했는데 제대 안쪽으로 틴토레토의 최후의 만찬이 걸려있었다. 틴토레토는 베니스 전성기 때 활동하던 화가다. 나야 틴토레토라는 화가를 처음 들어보았지만 딸은 예상치 못하게 만난 유명한 그림에 대하여 매우 감격스러워했다. 그림도 어둡고 성당 안도 어두워서 그림과 성당이 구분되지 않아 보였다.
이 그림은 많은 화가들이 정석으로 알고 따라 했던 레오나드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다른 구도와 분위기라서 흥미롭다. 식탁은 대각선으로 놓여있어서 최후의 만찬의 불안한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다. 만찬에 참여한 예수님과 제자들 외에 음식을 만들고 준비하느냐 부산한 여인들과 대접하는 종들, 사람들 그리고 머리 위의 천사들과 각종 소품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예수님 시대가 아닌 르네상스 시대의 차림이다. 우리가 아는 최후의 만찬이 정적이라면 이 작품은 동적이고 실제적이다. 염색공의 아들이었던 틴토레토는 화가로서 정규 교육울 받지 못했고 무척 빨리 그림을 완성했고 다작을 했기 때문에 당시에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당대의 평가라는 것이 참 별 게 아니다.
딸은 그 작품을 거기서 만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게다가 복작복작한 미술관에서 사람 틈에 끼어 보는 작품이 아니라 해 저무는 고요한 성당에서 감상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했다. 딸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니 미술관이 아닌 그곳에 있었기에 더 감동이 컸던 것 같다.
밖으로 나오니 마죠레 섬 선착장은 베니스 풍광을 배경으로 한 노을 맛집으로 변해 있었다. 해가 지는 한산한 선착장에서 가이드 언니가 배낭에 가져온 베니스산 복숭아 술 벨리니(두 병이나 배낭에 내내 매고 다니셨던 것이다!)도 나눠마시고 사진도 실컷 촬영한 후에 다시 바포레토를 타고 바다를 건너 돌아왔다.
돌아온 베니스는 밤의 옷으로 갈아입고 조명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가이드 언니는 역시 정확한 포토 스폿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몇 군데 야경 스폿을 거쳐 골목을 돌아 성 마르코 광장으로 나오자, 베니스 최고의 야경인 성 마르코 광장의 야경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두칼레 궁전의 주랑과 성 마르코 성당의 야경이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저 멀리부터 확인하고 왔으면 이렇게 놀랍지 않았을 텐데 골목을 돌아 갑자기 눈앞에 펼쳐지니 감동이 컸다. 가이드 언니를 열심히 따라가던 일행이 모두 탄성을 질렀다. 그곳이 투어 마지막 장소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좋은 것을 맨 나중으로 배치해서 감동을 극대화했던 것 같다. 비록 내 발이 움직이기는 했지만 하나의 베니스를 주제로 한 공연을 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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