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사랑하니까

엄마는 엄마인 나도! 사랑한다_우나별

2024.09.03 | 조회 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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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긴 방학이 지났다. 그리고 개학이다.

지난 두 달간 시간이 어떻게 흘러 지나갔는지도 모를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감정이 휘몰아치는 마음속은 여전히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이렇게 마음속이 쿵쾅거릴 때에는 안 그래도 잘 쓰지도 못하는 글이 더 안 써진다. 마음이 쿵쾅거리는 날들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더 많다 보니 이렇게 있다간 글쓰기를 포기할 것 같았다. 그러기는 싫은 마음에 아이들 등교시키자마자 몇 글자 마음에서 꺼내어 컴퓨터에 옮겨 담아본다.

아이들의 학년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아침 시간은 전쟁과도 같다. 방학 동안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을 잘(?) 들여놓은 탓에 등교 시간이 늦은 아이들은 오늘 아침부터 엄마의 잔소리와 짜증이 섞인 말들을 뒤통수에 꼽고 교실로 향했다. 어제도 분명히 9시에 침대에 잠자러 들어간 녀석들인데, 갑자기 목이 마르고 갑자기 무섭고 하는 통에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다가 결국 10시 반이 넘어서 잠이 들었다.

오전 7시 10분.

아이들의 몸은 침대와 하나가 되어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아이 옆에 누워 간지럼을 태워 보기도 하고, 귀찮을 만큼 뽀뽀세례를 퍼붓기도 하지만 굳게 감은 눈을 뜰 생각은 없나 보다. 그래도 그 단내다는 조그만 입으로는 할 말은 다 하는 것을 보면 곧 일어날 희망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제 저녁 둘째가 학교 급식이 맛이 없다고 도시락을 싸달라는 요청을 했다. 급기야 울먹이기까지 한다. 아무렴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점심 식사가 중요할 때다. 이번 학기부터 새로운 업체가 선정되어 급식이 더 좋아졌다는 이메일을 학교에서 받긴 했지만, 어른들 입맛에 맞는 고급스러운(?) 맛이 단순한 입맛을 가진 아이들에게는 점수를 많이 따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얘들아 엄마도 너네 학교에 점심 먹으러 가고 싶다. 아무튼 아이들이 상세하게 원하는 것을 일러준 대로 치즈를 뿌린 바질 페스토 파스타와 함께 먹을 샐러드 박스를 준비하기로 했다. 도시락 준비도 다 끝나가는데, 아이들은 기척이 없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 아이들을 불러본다.

꼬맹이들의 눈은 여전히 굳게 감겨있다. 어쩌면 질끈 감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혹시 눈곱에 딱 붙어서 떼어지지 않는 것은 아닐까? 괜히 엄마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아이들 눈을 벌려본다. 고객님들 기상하는 데 도움이 되라고 척추를 따라 등 마사지도 겸했다. 녀석들은 그런 엄마가 너무 귀찮고 성가시다.

이내 “엄마! 5분 만요!!”라고 소리치며 몸을 휙 돌린다.

오늘 둘 다 체육수업이 있다. 그래서 체육복을 두 아이들 침대에 올려뒀다. 얼른 일어나서 옷 갈아입고 세수하고 나오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원래 1절만 해서는 재미가 없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좀 더 스펙터클한 엄마의 2절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오전 7시 40분.

아이 둘의 점심 도시락과 오전 간식 박스를 다 챙겨두고 시계를 보니 화가 부글부글 올라온다. 어느새 내 목소리에 다정함이 쏙 빠졌다. 그리고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목소리로 아이들 이름에 성까지 붙여서 불러본다. 둘째가 체육복을 입었다기보다는 거의 몸에 대충 걸치고는 아직도 잠이 쏟아지는 얼굴로 주방으로 왔다. 그리고 챙겨준 아침식사를 가지고 거실 테이블로 가 아침을 먹는다. 이 와중에 첫째는 대답도 없다. 다시 한번 불렀더니 왜 또 부르냐는 식으로 나온다. 낮에는 더울 텐데… 긴팔 상의와 긴팔 후드티 체육복을 입고 나왔다. 밤에는 덥다고 웃통을 벗고 자는 녀석이 춥다고 겹겹이 껴입고 나온 모습을 보니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본인은 괜찮다니 내 마음에 썩 들진 않아도 일단 넘어가 보기로 했다. 그렇게 아이들 둘의 아침식사는 시끌벅적하게 시작됐다.

오전 8시 5분.

이제 집을 떠나야 할 시간이다. 아이들은 정말 세수하고, 이 닦고, 머리만 빗으면 된다. 딱 5분이면 끝날 일을 슬로모션으로 하고 있다. 게다가 첫째는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에서 신호를 기다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는데.. 그때 나는 참지 못하고 버럭 했다. 얼른 볼일 보고 나가자는데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시간을 갖는다. 일단 둘째 신발까지 다 신겼는데, 첫째는 감감무소식. 생리현상도 이해해 주지 못하는 아주 인정머리 없는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학교까지 10분이면 가는데 소식 없으면 학교에 가서 볼일을 보라고 재촉했다. 나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러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성공이란다. 장하다 우리 딸!

볼일을 마친 첫째가 허둥지둥 준비를 마치고 신발을 신으려는 보습을 보는데, 아이의 발이 맨발이다. 그걸 본 나의 입에는 잔소리 모터가 드디어 가동되었다. 언니를 기다리는데 지쳐 먼저 현관까지 내려갔다 온 둘째는 비가 온다는 소식을 전하며 뛰어 올라온다. 부슬부슬 비가 오는 월요일 아침. 참 부산하게 시작했다.

매일 또 이렇게 아침마다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일까? 인정사정없이 아이들을 6시 반부터 깨워야 하나? 나는 왜 그때 참지 못하고 또 욱했을까? 잔소리를 좀 하지 말아야 할 텐데.. 아이들 학교 교문을 나설 때마다 항상 후회하고 반성한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이때가 나는 참 부끄럽고, 나도 모르게 아침부터 힘이 빠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비가 오지 않았다. 더웠던 여름의 열기를 이틀간 촉촉하게 잠재워주던 비가 그친 것을 보고 나니 그제야 내 발끝에 걸린 갈색 낙엽들이 보였다. 아니겠지. 설마.. 벌써 가을이라고? 이 길을 걸으며 봄의 신비와 찬란함에 내적 함성을 지르던 때가 엊그제였는데.. 시간이 그렇게 흘렀단 말인가? 갑자기 억울했고, 무서워졌다. 나를 위해 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시간은 너무 야속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신없이 바쁘고, 피곤하고, 무엇인가를 계속하고 있긴 한데, 나는 공허하고 때론 무기력하다. 경력의 단절이란 말이 나에게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언제고 내가 원하면 다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거만한 생각을 하고 살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돌아보니 혼자 회사를 다니며, 공부하고, 운동하며, 휴가 때마다 여행을 다니며 살았던 때가 참 좋았단 생각이 든다. 짧았지만 그 시간이 있어 내가 지금 잘 견뎌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말이다. 나 자신을 사랑하며 저축해온 내 안의 작은 힘들이 다 소진 되어가는 것일까? 정신없이 바쁘지만, 자꾸 내가 게으르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둘째와 방학기간 중 둘이서만 데이트를 할 기회가 있었다. 해 질 녘 해변 근처 놀이터에 있는 그네를 나란히 타면서 아이와 대화를 하다가 울컥해졌던 순간이 있었다. 그래서 ‘엄마가 더 멋져질게~ ’라는 말을 무심코 꺼낸 적이 있었다. 정말 나는 아이들에게 멋진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현실은 그 반대인 것 같아서 항상 마음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아이의 대답을 기대하고 꺼낸 말은 아니었다. 그냥 나의 다짐 정도라고 보면 좋겠다. 아이도 ‘엄마도 멋쟁이가 될 거야~’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일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아이가 가만히 나를 보더니..

“엄만 이미 멋져! 그런데 뭘 더 멋져진다는 거야!?”라며 버럭 한다.

버럭 하는 건 나를 닮아 그런 건가? 이 말을 듣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래도 그때 울지 않고, ‘맞지 엄마는 원래 좀 멋지지~’ 하며 웃어넘기려고 얼마나 이를 꽉 깨물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이렇게 엄마랑 단둘이 있어 행복하다는 아이의 말랑말랑한 눈빛과 조금은 과장된 귀여운 목소리.. 내가 이러려고 너의 엄마가 된 건데.. 뭘 그렇게 큰 것을 찾아 헤매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우리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이제 둘째까지 정말 엄마 손을 많이 타는 시기가 지난 것이다. 그 말은 육아라는 좋은 핑곗거리를 방패 삼아 살던 삶을 이제 내려놔야 할 때라는 뜻처럼 다가온다. 요즘 들어 정말 나는 온전한 나로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내 머릿속을 나를 위한 생각으로 다시 담아보고 싶다. 어쩌면 내 가슴이 뻥 뚫린 것 같다고 느꼈던 이유도 그동안 나를 채웠던 많은 것들이 나를 위한 것은 아니어서 그랬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동안 내가 지금처럼 정말 간절했던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나는 최선보다 차선을 선택하며 살았던 것 같고, 치열했다기 보다 너무 느긋하게 살려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차피 빚지고 다시 사는 삶이라 생각해서 딱 그만큼만 살아 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도 했던 것 같고 말이다. 그런데 나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끓어오르고 싶고, 그 어느 때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유리상자를 깨고 좀 더 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떻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지만 그래야 할 이유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좋은 것 같다. 아이들에게 버럭 하는 에너지를 가져다가 나의 삶을 다시 한번 더 뜨겁게 달구는데 사용해야겠고 말이다.

아이들 등교시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반성치고는 너무 거창한 다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이 글이 어딘가에 박제될 것이란 것도 알고 있고 말이다. 그래서 조금은 조심스럽지만 이것이 더 나를 일어서게 하는 동력으로 작용하기를 바라며 오늘은 그냥 마음속에 묵혀둔 오래된 내 감정들을 조금 털어놔 보았다.

고 박경리 선생님께서 생전에 하셨던 말씀 중에 '제 삶이 평탄했다면 글을 쓰지도 않았겠지요.'라는 말을 떠올렸다. 우연히 돈의문 박물관 마을에 아이들과 들렀다가 토지 완간 30주년 특별전에서 만난 말이다. 가끔 '이렇게 사는 게 의미가 있을까?' 란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바꾸어 보면 우리 삶 속에서 매번 의미를 찾을 필요도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한다. 굴곡진 삶이던 평탄한 삶이던 그냥 나에게 주어진 내 삶을 이어가는 것이 그 누군가에게 큰 가치가 될 수도 있다.

오늘 오전 내 발끝에 차인 때이른 낙엽들을 보면서 나는 마지막 잎새처럼 끝까지 나뭇가지에 버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뜬금없는 발상이다. 이런 일기는 나 혼자만 간직하는 게 나을 것 같지만 그래도 용기 내어 이렇게 공개적으로 띄워본다. 누군가 지금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 어디선가 나 같은 사람도 다시 일어나 보겠다면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고 말이다. 언젠가 또 연이 닿으면 저 나무 위 마지막까지 버티며 있는 그 몇 안 되는 잎새로 만날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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