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방학 전까지만 해도 나뭇가지에 얼굴을 빼꼼히 내미는 새싹들이 수줍게 봄을 알리는가 싶더니 열흘 휴가를 다녀온 후 마주한 집 앞 공원의 풍경은 이전과 사뭇 달랐다. 아니 저 공원 구석에 있던 나무도 꽃나무였나 싶을 정도로 온갖 나무들의 화려한 봄옷 자랑에 공원의 분위기가 한층 뜨겁다. 오랜만에 올려다보는 파란 하늘은 내 콧구멍 개방에 힘을 싣는다. 뒤이어 꽃가루 한숨 크게 들이킨 나의 재채기는 덤이다. 아이들과 함께 한국어 감탄사를 대방출하며 놀이터에 가는 길이었다. 집 앞 냇가에 살던 오리와 백조들은 날이 좋아 그런지 모두 인도 위로 올라와 햇빛 아래서 낮잠을 청하고 있다. 오랜만의 뭍으로 올라와 볼일도 열심히 봤나 보다. 아이들과 함께 오리 똥들을 피해 좁은 오솔길을 지날 때였다.
“오오오오~ 엄마아아아아아아~”
제일 앞서가던 둘째 아이의 목소리다. 엄마의 '마'를 유난히 길게 빼며 감탄하는 걸 보니 본인이 생각해도 무지하게 귀여운 무언가를 발견한 모양이다.
“와~~~ 너무 귀여워요. 엄마, 빨리 와서 이것 좀 보세요!”
이젠 첫째 아이까지 거든다. 마음이 급해졌다. 도대체 뭘 보고 애들이 이리 호들갑인 거야? 오솔길이 끝나가는 지점에 오리 두 마리가 보였다. 안경을 안 써서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는데 그 뒤에 새끼 오리들을 대여섯 마리 정도가 보인다. 알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나 보다. 부스스한 깃털 하며, 뒤뚱뒤뚱 어디로 가는지 정신이 없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마치 우리 아이들 걸음마 떼고 질주본능에 충실하던 어릴 때를 보는 것 같았다.
가만히 오리 가족을 바라보고 있다 보니 새끼 오리들이 멀리 가지 못하게 엄마 오리가 이리저리 새끼들을 막아서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참 인간이나 동물이나 다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귀엽고 신기한 광경을 보고 발길을 멈춘 사람들이 우리 말고 서넛 더 되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엄마 오리가 꽤엑!!!! 하고 우리를 향해 있는 힘껏 소리를 내질렀다. 오리가 무섭게 겁을 주자 아이들이 놀라 나에게 물었다.
“엄마, 오리가 왜 우리한테 저런 소리를 내는 거예요? 원래 꽥꽥~ 귀엽게 울어야 하잖아요?”
사람들이 갑자기 많이 모여드니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자기 새끼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까 엄마 오리는 불안했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쪽을 뚫어져라 보면서 그렇게 경계태세를 취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엄마 오리가 새끼 오리들을 지키려고 하는 것 같으니 오리들 더 불안하게 만들지 말고 얼른 우리도 갈 길을 가보자고 하며 놀이터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직은 어색해 보이지만 그래도 새끼를 본능적으로 보호하려 하는 엄마 오리,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당연한 듯 엄마 오리 곁을 떠나지 않는 새끼 오리들. 어느 봄날 길을 가다 우연히 만난 오리 가족을 보면서 문득 처음 엄마가 되어 우리 첫째 또치를 만난 순간이 떠올랐다.
내가 꿈꿨던 평화로운 출산과 거리가 먼 전쟁 같은 출산이었다. 분만이 임박했을 때 상황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아이를 급하게 꺼냈고, 그 후에도 오랫동안 지혈이 되지 않아 내 정신이 아득해져 갈 때쯤이었던 것 같다. 눈도 아직 뜨지도 못한 또치는 그렇게 나의 품에 안겼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안녕? 반가워”
미드 와이프가 가져다준 햄 샌드위치와 감자칩 한 봉지를 다 비우고 밀크티 한 잔도 마셨다. 저만치 달아나던 정신이 돌아왔다. 내 품에서 여기가 어딘지 두리번거리는 또치와 눈이 마주쳤다.
"너구나... 내 딸..."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영국 병원은 한국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신생아를 깨끗하게 닦아주지도 않았고 기저귀를 갈아주지도 알았다. 당연히 아이를 데려가 수유를 대신해 주지도 않았다. 한국 티브이에서 봤던 신생아실 유리창 너머로 내 아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장면 연출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남편은 또치와 나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다. 보호자 침대도 없는 열악한 병실 의자에 앉아 졸면서 밤을 새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우리의 희망 사항이었다. 날이 밝자 미드 와이프가 나에게 너무 누워있지만 말고 좀 걷고 샤워도 하라고 제안했다.
그래서 샤워하러 일어났다가 쓰러졌다. 몇 시간 뒤에 다른 간호사가 500ml짜리 혈액 2팩을 가지고 나타났다. 방금 냉장고에서 꺼내온 시원한 혈액이란다. 차가운 무언가가 내 손목으로 흘러 들어오는 느낌이 썩 유쾌하지 않았다. 하지만 출혈이 심했던 터라 어쩔 수 없이 수혈은 받아야 했다. 그렇게 한 팔로 수혈받으면서 동시에 또치 모유 수유도 겸했다. 이런 건 사진으로 남길 수도 없는 장면이다. 커튼 뒤에서 나와 남편은 오랜 시간 고군분투했다. 별일 없으면 대부분 출산 당일에 산모와 아이를 퇴원시키는 영국 병원이지만 우리 세 가족은 또치를 만난 후 처음 1주일 동안, 6인실 일반 병실 커튼 뒤에서 서로를 알아갔다.
또치를 만나고 1주일 만에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퇴원하면서 가장 걱정이 되었던 것이 또치 목욕시키기였다. 나와 또치 퇴원시키기 전에 또치 목욕도 한 번쯤은 시켜줄 만도 한데, 그런 호사는 없었다. 문의를 해봤지만 신생아 목욕을 예전엔 시켜줬는데 지금은 그냥 집으로 보낸다고 했다. 그럼 어떻게 시키는지 보여주기라도 하지. 아이를 낳긴 낳았는데 신생아 씻기는 걸 배워본 적이 없다. 한국은 조리원에서 다 해주고, 퇴소 직전에 교육도 시켜준다고 들었다. 아이를 안고 둘이 덩그러니 집에 앉아 있는데 정말 막막했다. 그래도 애를 씻기긴 해야 하는데 우리 둘 다 신생아 씻기는 걸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우리에겐 유튜브 이모님이 24시간 상주하고 계시지 않은가? 우선 급했던 신생아 목욕 영상을 열심히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치가 태어난 지 삼 주가 다 되어서야 유튜브로 보고 배운 신생아 목욕시키는 방법을 또치에게도 적용시켜볼 수 있었다. 둘이 얼마나 긴장하고 두 손을 바들거리며 씻겼던지 아기 욕조에서 불안하게 우리를 쳐다보다 결국 울음을 터뜨린 또치의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자지러지게 울던 또치를 안아들고 나도 많이 울었다. 그때 처음으로 아무런 준비도 없는 이 엄마의 딸로 태어나게 한 것이 미안했다. 아기 목욕도 하나 제대로 시키지 못하는 내가 어쩌자고 엄마가 된 건지, 내가 앞으로 어떻게 이 작은 아기를 키워나가야 할지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가올 내일이 두려워졌다.
나에겐 전문적 조언이 필요했다. NCT( National Childbirth Trust) 산후 교실을 등록을 하고 전문가들을 찾아 나섰다. 더불어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은 엄마들도 만났다. 한국에서 육아책도 여러 권 공수 받고, 도서관과 인터넷을 뒤지며 진짜 엄마가 한 번 되어 보겠다고 부단히 애썼다. 매일 불안했고, 매일 안심했다.
그렇게 나의 불안한 눈빛을 꼬박 7년 8개월을 지켜보던 또치는 지금의 엄마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나는 그때보다 마음이 조금 더 편해졌을까? 지금은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덜 들까? 지금의 나도 여전히 부족한 엄마다. 매일 반성하고, 매일 다시 노력하고, 애쓴다. 가끔은 아까 봤던 오리 엄마처럼 엄한 곳에다 꽥꽥! 거리기도 한다. 언젠가 육아를 힘들어하는 나에게 누가 그런 말을 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3-4학년쯤 되면 키우기 수월해진다고, 그때부터 전문용어로 ‘사람’이 되어간다고 그랬다. 그런데 이제 막 7년 차 엄마가 되어보니 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 키우기가 예전보다 수월하다고 느껴진다면 아이들을 담을 수 있는 엄마의 그릇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다. 정말 부모가 되기 위해서도 부모도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것 같다. 오히려 아이들은 편하고 쉬운 길로 가려는 우리 부모들을 채찍질하고 자극하는 고마운 녀석들이다.
어쩌다 너라는 한 사람이 나의 딸이 되어, 엄마가 너에게 가르쳐 준 것보다 오히려 내가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것들을 마주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내 안 깊은 곳에 숨겨뒀던 수많은 나의 단점들을 싫지만 꺼내볼 수 있게 해주었고, 힘들고 지칠 때 누구보다 나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나를 넘어트리기도 했지만,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가끔 엄마도 힘들 때가 있어서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너 때문에 힘든 적은 없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오늘 새벽, 5년 전 끄적이던 글을 보면서 나는 한참 울었다. 어린 또치를 어린이집 종일반에 넣어두고 복직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 고작 3시간을 잤다. 출근을 하기 위해 새벽 6시 반에 집을 나섰고, 퇴근 후에는 엄마로서 해야 할 일들을 했다. 아이들이 잠들기 전 우유를 마시고 있을 때 견진성사 교리 수업을 받으러 성당으로 향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모두가 잠든 고요함 속으로 들어왔다. 주방에 작은 불을 켜고 나는 홀로 바닥에 앉아 오늘 신랑이 찍어 보내준 아이들 사진을 보며 웃었다. 그렇다, 너희 둘 모두 하느님이 내게 주신 선물. 나의 반짝이는 햇님들. 계속해서 빛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아까 너무 고단했던 나에게 또치가 물었다. “ARE YOU OKAY?” 나조차 나를 생각해 주지 않던 그 순간, 나에게 한 번쯤 물어봤어야 할 그 질문.. 그 필요한 질문을 또치를 통해 들었다. 너희들은 나를 항상 감동시키는 마법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지친 하루의 마지막, 내 마음속 작은 햇님들…. 2018년 10월 4일”
내 사랑에 가르침이 있는지 생각하며 살다가 문득 무언가를 가르쳐야 한다는 욕심이 커지면, 나의 사랑에 갑자기 조건을 내달기 시작했다. 그래서 의도치 않게 조건 없이 사랑해 줘야 할 아이에게 상처를 준 때도 많은 것 같다. 끊임없이 나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마주하고 들여다보는 것을 소홀하지 말아야겠다. 혹여나 미끄러져 다칠까, 잘 못 잡아 아프거나 불편해하지 않을까 염려하며 조심스러워했던 그때, 처음 또치를 목욕시킬 때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동안 지치고 고단한 나에게 위로가 되어준 순간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하늘이 주신 선물이자, 어쩌다 나의 딸로 와준 또치가 언젠가 훨훨 날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기쁘게 손 흔들어 줄 수 있는 그날까지 매일 마음 다해 사랑해 주겠노라고 오늘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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