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삶

사람이 이렇게 쉽게 속다니_월요

2025.02.17 | 조회 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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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2년이 지났으니 무상 보증 기간은 지난 상태구요, 디스플레이의 문제처럼 보여서 액정만 갈면 되는 것 같기는 한데 일단 수리에 들어가 봐야 정확하게 알 것 같습니다. 이게 2년이 지났으니 이제 배터리에 문제가 생길 거예요. 대부분 그 정도 되면 80% 이하로 기능이 떨어집니다. 급격히 용량이 떨어진다거나 뜨거워진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배터리 사용에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애플 센터의 테크니션(기술직 직원)은 가져온 패드의 내용을 보며 무뚝뚝하게 이야기했다. 내 앞에 서 있는 이 직원은 고객을 향해 무한 미소를 발사하는 밝고 즐거워 보이는 애플의 다른 직원과 달라 보였다. 화장실 타일에 핸드폰을 정면으로 떨어뜨려서 먹통을 만든 후, 어렵게 예약을 하고 애플 센터에 와서 상담을 받는 중이었다. 나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 듣고 있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려움이 있었던가? 처음보다는 배터리 용량이 좀 빨리 없어지기는 하는 것 같은데…

“액정을 교제하는 데는 18만 9천원이 듭니다. 곧 배터리도 교환하실 거라면 -그것도 12만원에서 15만원 정도 드니까요 차라리 60만원 정도에 나온 새 제품을 구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어요. 저 제품입니다. (내가 앉아 있는 긴 테이블 중간에 새 제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꼭 그러셔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참고하시라는 겁니다. 이 제품은 수리를 해서 문제가 없다고 하는 경우에… (심각한 얼굴로 다시 패드를 보며) 15만원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냥 액정 수리만 진행하실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배터리를 갈 때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핸드폰의 배터리가 뜨거워지다가 사망하는 일이 반복되어 다른 센터에서 AS를 받은 경험이 있다. 그때는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서 한쪽 구석의 책상 뒤에 앉아있는 직원에게 핸드폰을 맡겼었는데. 지금 앉은 테이블은 누구라도 앉을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직원 개인의 책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공유한다. 마치 까페처럼. 더 환하고 더 젊고 개방적인 분위기였다.

저기, 보험을 들었을 텐데요 라는 나의 말에 직원은 애플 케어에는 등록되어있지 않으니 통신사나 판매처에서 확인해 보시라고 했다. 뭔가에 잔뜩 동의를 위한 사인을 하고 4시간 후에 오라는 통지를 받고 상담 테이블에서 일어났다.

센터 내부는 눈을 잡아끄는 신상품들과 명멸하는 화면으로 가득했다. 센터 내부의 절반 정도 공간에 열 명 남짓 앉을 수 있는 밝은 갈색의 상담 테이블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고 젊은이들은 신상품 앞에서 경탄을 하고 있었고 구입을 진행하는 사람들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나처럼 AS 상담을 하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티셔츠를 입은 직원들이 일대일로 전담 마크를 하고 있었다.

찬란하게 애플 로고가 박혀 있는 센터를 떠나오면서 무척 우울했다. 한 번 놓쳤는데 20만원 가까운 돈이 나가는구나. 게다가 2년이라니, 핸드폰을 바꾼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시간이 왜 이리 빠른 것일까? 보험은 어떻게 확인해야 하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품을 산 통신사에 들렀는데 생각보다 보험은 잘 작동하고 있었다. 70퍼센트를 보상해 주고 나중에 배터리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도 보험 지급 대상이 된다는 것을 확인하자 기분이 많이 나아졌다. (보험은 정말 매우 필요하다!)

무사히 수리된 핸드폰을 받고 저녁에 남편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데 뭔가 이상했다. 보험 자료를 찾아보고 깨달았다. 내 스마트폰은 2년이 지난 제품이 아니었다. 개통한 것이 작년 6월이었다! 직원이 잘못 이야기했던 것이다. 직원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나는 왜 그리 바보 같았던 것일까? 내 생각과 느낌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직원 앞에서 왜 한 번 더 확인을 요구하거나 하지 않았을까? 그저 ‘시간이 그렇게 빠르다고? ‘하면서 나의 생각과 느낌을 수정했던 것이다.

“사람이 참 쉽게 속아.”

남편이 말하며 웃었다.

AI에게 물어보니 사람이 쉽게 속을 수 있는 조건을 신뢰, 감정적 상태, 정보의 부족, 권위, 다수의 동조로 꼽았다. IT 기술이 전무한(정보의 부족) 내가 폰을 놓쳐 의기소침한 상태에서(감정적 상태) 애플 유니폼을 입고 있는(신뢰) 애플의 기술자(권위)의 말을 믿지 누구의 말을 믿겠는가.

<뒤통수의 심리학>에 따르면 ‘고립되어 있는 상황, 외롭게 느끼고, 삶의 중대한 변화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는 사기에 넘어가기 쉽다고 한다. 고립되어 있는 상황… 누구에게 연락을 취할 상황은 아니었다. 외롭게 느끼고… 외롭다기보다는 센터의 젊고 현대적인 분위기에 이질적인 느낌이 들기는 했다. 똑같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젊은 직원들은 모두 서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고객들을 일대일로 맞았다. 나는 내가 너무 나이가 들었고 뒤떨어져있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흠… 삶의 중대한 변화라,,,, 갱년기라고 하면 너무 끼워 맞추는 것일까?

게다가 그 직원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애플 직원들은 판매를 했다고 해서 판매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게다가 고객의 실수로 발생한 고장(그러니까 나처럼 떨어뜨려서 발생한 고장)에는 새 제품이라도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게 1년이 안된 새 제품이 아니라 2년이 넘은 제품이라고 속일 이유는 전혀 없었고 그저 직원이 내 이전 폰으로 착각한 것으로 밖에는 볼 수 없었다.

이 사건(?)을 해석하기 위해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위해) 도서관에서 빌린 <우리는 10분에 세 번 거짓말한다(로버트 펠드먼)>에 따르면 거짓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흔하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속기도 쉽다. 정보에 대한 비판적 사고력은 무디어지고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확인하는 일에 게으르게 된다. 사람은 모든 일에 상대방이 거짓말을 한다고 의심하기보다는 사실을 말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어쨌든 이 사건으로 하나 배웠다. 다음에는 애플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직원이 뭔가 패드를 보며 2년이 지난 핸드폰이라고 할 때 ‘아닌데요 지난 해 개통했는데요.’까지 할 정신은 없어도 내 속에서 드는 의문을 무시하지 말고 ‘뭔가 이상하네요, 그렇게까지는 안된 것 같은데… 다시 확인해 주시겠어요?’라고 요청할 수는 있기를. 내 안에 고개를 드는 의문을 눌러버리지 말고 표현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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