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달력을 넘겼는데, 어느새 얇아진 달력을 보고 있자니 이 365일에는 발이 달린 게 분명하다. 한 해를 돌아보며 마무리하기도 전에 새해가 코앞이다.
‘2025년에는 어떤 재밌는 일들로 한 해를 가득 채워 볼까?’
새해를 떠밀려 맞이하고 싶지 않아 우리 집 남성 둘을 앉혀놓고 이야기했다.
”늘 말로만 외쳐오던 거 있잖아, 특선 집밥. 그거 1월부터 꼭 시작해 보려 해, 어때?!“
특선 집밥. 늘 해먹는 것에서 벗어난, 조금은 더 특별한 집밥을 해 보고 싶었다. 쓱쓱, 투닥투닥 해 먹는 일상의 밥이 아닌 조금은 더 정성이 들어간 집밥. 먹보 남성들에게 물어보면 무엇하랴, 당연히 두 팔 벌려 폴짝 폴짝 환영이지.
”그런데 메뉴는 뭐야? 특별한 집밥이면…슈니첼? 타펠슈피츠*?”
*Schnitzel (슈니첼): 바삭하게 튀긴 얇은 고기 커틀릿 (Breaded and Fried Meat Cutlet)
*Tafelspitz (타펠슈피츠): 오스트리아식 삶은 소고기 요리 (Boiled Beef in Broth, Austrian Style)
내게 집밥이라 하면은, 갓 지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에 구수한 찌개, 고소한 들기름 향이 솔솔 나는 나물이다. 어쩌다 엄마의 특별식이 나올 때면 식탁엔 생선과 조개가 추가되거나, 몇 시간을 우려낸 뽀얀 사골이 나오곤 했다. 그러나 그중에 단연 으뜸은, 먹기 하루 전부터 시간과 정성이 국물에 우려 나오는 고사리 가득한 육개장!
1년에 한 번씩 한국에 가는 날이면, 수첩 한 켠 어느새 길어진 ‘한국에서 꼭 먹고 올 것!’ 목록을 비장하게 다듬고 이것저것 먹는 상상을 하며 좀처럼 다가오지 않는 것 같은 출발일을 기다리곤 했었다. 성냥갑 같은 의자에 꼬깃꼬깃 몸이 구겨져도, 11시간 장거리 비행을 견뎌낼 수 있던 건 바다 위 초록 섬들이 곧 보일 거라는 기대감, 짐을 찾고 나오면 온몸을 감싸는 여름 열기, 도처에서 외쳐대는 바다내음, 비릿한 바닷바람이 사라지면 가까워지는 번잡한 도시, 고개 하나 신호등 하나 넘으면 저 멀리 그리워하던 집. 그리고 현관을 열면 마주하는 엄마 가득한 밥 냄새.
식탁 위 정갈하게 놓여진 엄마 김치, 엄마 나물, 고등어구이, 엄마표 된장국, 소복한 쌀밥. 한바탕 그리움이 식탁을 게걸스럽게 헤집고 나면, 그제야 느껴지는 안도감. 아 집이다. 그 길고 길던 ‘꼭 먹고 올 것’ 목록은 더 이상 찾지도 않게 된다. 나에게 집밥은 타향살이에 그리움이 한 층 짙어진 향수병을 잊게 하는 묘약이자 엄마 품이다.
나에게는 애틋한 이 집밥이 우리 집 오스트리아 남성들에게는 의미가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직 한식‘을 고집하는 집안의 셰프 덕에, 정작 집안의 오스트리아 남성 두 명은 ‘오스트리아식’ 집밥을 ‘집에서’ 먹어보지를 못했겠다는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궁금해졌다. 남편의 집밥은 무엇일까?
‘어떤 음식을 먹으며 자랐어? 엄마 아빠가 해 주시던 특별식은 뭐였어?’ 남편을 앉혀놓고 물어보니 줄줄이 비엔나소시지처럼 나오는 오스트리아 음식들. 학교에서 늘 점심을 먹고 오는 콜린이도 덩달아 신났다. ‘아, 아빠 그거 맛있어. 음 그거 나도 좋아해!’
“한국 사람은 밥심이지!”
타향살이에 ’오직 쌀밥에 김치‘만을 고집해 오던 나는 이 땅의 음식을 굳이 찾지 않았다. 어쩌다 먹게 되는 오스트리아 음식들은 먹고 나면 더부룩 하여 흰밥에 김치만 더 고파지곤 했다. 처음부터 나는 이곳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 결혼을 해도, 아이가 태어나도, 이곳의 문화에 익숙해져도 겉도는 느낌. 현지인들과 일을 해도, 현지 친구를 사귀어도 여전히 존재하는 거리감. 나의 뿌리를 고집할수록 더욱 외로워지는 현실. 딱딱한 빵만큼 내 마음도 푸석푸석해지면서, 여기도 저기도 어울리지 못하는 생활 속에서 나는 마르고 비틀어져 갔다. 매일 마주하는 식탁에서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의 남성들은 식탁 앞에서 늘 즐겁다. 나의 된장찌개와 나물도 환영이지만, 어쩌다 엄마의 한식 독재를 피해 오스트리아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날이면 그것대로 또 행복해하곤 했다. 내가 마음의 문을 닫고 오직 ‘한식’만을 고집할 때, 나의 남성들은 다름을 그저 받아들였던 것 같다. 고집부리지 않고 유연하게, 어느 한 쪽도 치우치지 않고 두 개 다 흔쾌히.
두 남성의 푸짐한 포용력(?)을 보며, 나도 어쩌면 이 땅의 음식으로도 집밥의 따뜻함을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조금 다가가 볼까..?’
그래, 마른 빵에 애정을 듬뿍 발라, 입안에서 천천히 느껴보자. 짜고 느끼한 이 음식을 내 손길로 조금 더 부드럽게 숙성시켜보자. 일상에서 우러나온 밥심으로 이 땅에도 뿌리를 더 깊고 단단하게 내리기 위해 식탁의 통섭을 받아들여 보자! 그리하여 몇 년동안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나의 집밥 프로젝트가 발을 내딛게 되었다. 다름을 새롭게 바라보기. 다름에게 내 한구석을 내어줘 보기. 같이 살아내어 보기.
이렇게 시작된 나의 ‘특별한’집밥, 이름하여 ‘홈 디너’ 프로젝트. ‘디너‘라는 단어에서 오는 무게감을 조-금 고려한다면 ‘홈 디너‘는, 연미복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 격식있는 겉옷을 걸친 집밥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그 대망의 첫 번째 디너로 오스트리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즐겨먹을 대중적인 메뉴를 선정하였고, 재료 준비부터 마지막 간을 맞추기까지 정말 오랜만에 설레는 요리를 했다.
1. Grießnockerlsuppe (그리스노컬수페): 세몰리나 덤플링 수프 (Semolina Dumpling Soup)
식당의 맛은 수프를 통해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제일 쉬울 것 같던 수프는 재료와 각종 향신료 준비며, 담백한 국물을 뽑기까지 역시나 손이 제일 오래갔다. 수프에 들어갈 덤플링만 해도, 밀가루 반죽을 치대고 물에 끓여 충분히 식감이 우러나오도록 식히는 데에 인내가 필요했다. 정작 메인메뉴와 디저트는 끝났는데, 전식인 수프가 여전히 디너의 시작을 뜸 들이고 있다니. 그러나 다섯 시간 어르고 달래 만든 국물은 기다림의 꿀맛을 안겨다 주었다. 끓는 물에 스톡 하나 넣어 휘리릭 만든 수프와 차원이 다른 깊은 맛에 접시가 그새 비워져 나갔다. 메인코스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나에게 메인은 이미 수프였다.
2. Gulasch (굴라쉬): 파프리카 가루를 넣어 만든 소고기 스튜 (Beef Stew with Paprika)
메인 디쉬 굴라쉬는 원래는 헝가리의 전통적인 스튜 요리인데, 19세기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 시기에 유럽 전역으로 멀리 퍼졌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마다 맛이 조금씩 다른데, 원조 헝가리 굴라쉬는 국물요리에 가깝다면, 오스트리아는 장조림같이 입에 더 착 감기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 걸쭉하면서도 달달한 맛의 비밀은 양파에 있는데, 단맛을 극대화하기 위해 한시간 가까이를 볶아줘야 하는, ‘캐러멜라이징’이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에 감칠맛을 더하기 위해서는 고기를 ‘Butterschmalz‘ (clarified butter, 정제버터) 라는 것에 살짝 태우듯 익혀주는 것이 포인트인데, 일반 버터에서 굽는 것보다 훨씬 더 진한 버터 향을 낼 수 있다.
3. Kaiserschmarrn (카이저 슈마렌): 오스트리아식 잘게 찢은 팬케이크 (Shredded Austrian Pancake)
대망의 디저트는 오스트리아식 팬케이크, 카이저 슈마렌.
직역하자면, Kaiser(카이저)는 황제 그리고 Schmarrn(슈마렌)은 잘기잘기 찢은 것/부스러기. 즉, 황제의 부스러기 정도로 해석되는데, 이 역시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중 제국 말에 황제가 즐겨 먹던 음식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정말 간단한 요리 같아 보이지만, 자두 콤포트에 (오스트리아의 늦여름에 자주 보이는 보랏및 자두, 츠베취켄 Zwetschken) 찍어 먹으면 새콤달콤 폭신한 맛에 그릇을 바로 비우게 되는 별미다.
내가 좋아하는 따뜻한 수프와 남편이 즐겨먹는 굴라쉬, 그리고 콜린이 늘 노래를 부르던 카이저 슈마렌까지.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기분좋게 잘 먹었다. 더부룩 하지도 않았고 김치 한 젓가락도 필요하지 않았다.정말로 맛있게, 감사하게 잘 먹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남성들의 외침, ‘지금까지 먹어본 것 중에 최고야!’
이 맛에 요리를 한다. 쓱쓱 비워지는 그릇과 얼굴과 배에 가득한 행복, 바로 집밥을 부르는 주문. 나의 사랑하는 남성들에게 집밥에 대한 추억 하나가 솔솔 쌓여가는 걸 보면서, 나의 식탁 또한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낀다. 너의 집밥과 나의 집밥이 어우러져 포근해진다. 우리가 함께 하는 집밥이 고소한 향을 풍기며 내 마음속에 살포시 자리 잡는다. 나의 집밥 메뉴에 새로운 챕터가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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