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닿는 길

프리미엄으로 해주세요!_목담

2024.03.28 | 조회 1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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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요일들

우리들의 이상적인 시간 기록 일지

오랜만에 미용실에 갔다.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이 일이 나에게는 참 어렵다. 미용실을 가면서 ‘이번에는 이런 머리를 기필코 할 테야’ 하고 간 적이 없다. 내가 원하는 머리 스타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이 뭔지도 잘 모른다. 스스로도 참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서야 비장한 마음으로 미용실엘 가게 되니, 갈 때마다 큰 숙제를 안고 가는 기분이요, 매번 처음 가는 것처럼 낯선 기분이 든다.

딸아이가 동네에 싼 미용실 같은 데만 가니 헤어스타일이 잘 나올 리가 없다며, 돈이 좀 들어도 잘하는 곳을 한번 가보라고 계속 이야기했지만, 그래서 이번에도 갈등을 했지만, 결국은 만만한 동네 미용실에 갔다. 예전에 한 번 그런 마음으로 갔다가 실패한 적이 있고, 결국은 머릿결과 얼굴이 괜찮으면 다 잘 나오고, 그렇지 않으면 돈 들여도 소용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탓이다. 딸아이는 그런 내게 “머릿결과 얼굴이 안되니까 미용실에 가는 것”이라고, “엄마는 머리를 바꾸기 전에 생각을 바꿔야 한다”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래도 나는 일 년에 한두 번이지만, 여러 해 동안 다닌 동네 미용실엘 갔다. 그곳이 마음이 편했다.

“머리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 짧게 커트해서 파마하고 싶은데요..!”

아, 이 얼마나 넓고 넓은 대답인가. 뭐 어쩌라는 것일까. 말해 놓고도 뜨끔했다.

“숏컷인데, 단정한 머리는 별로 안 좋아해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몇 마디를 덧붙였다.

“그런 머리, 수도 없이 많아요! 생각하시는 스타일이 있으세요?”

“아, 그냥.. 남자아이들 머리처럼 짧게 해서 굵게 파마하면 될 것 같은데요...”

“그것도 종류가 많아요. 차라리 생각하시는 이미지를 보여주세요!”

이미지를 고른다고 그대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사진을 골라도 제 얼굴이 안 받쳐주니, 그렇게 안 나오는 거 아닌가요?”

나는 내 처지를 잘 안다며, 웃으며 물었다.

“아니에요. 그래도 사진을 봐야 감이 잡히죠!”

나는 어쩔 수 없이 사진을 골랐다. 미용사는 그건 내가 말하는 대로 하면 너무 짧다며, 적당히 자르고 펌을 해서 머리를 귀 뒤로 넘겨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귀 뒤로 머리 넘기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냥 암말 하지 않았다.

“이런 스타일로 할까요?”

나는 더 이상의 대안도 없고, 더 고르면 안 될 것 같아 “네” 했다.

미용사는 다 하고 나서 필요하면 한 번 더 컷을 해주겠다고 한다. 내가 ‘예스’ 해 준 것에 대한 답례처럼.

스타일을 정하니 가격표를 보여준다. 기본 44,000원, 단백질 55,000원, 프리미엄 66,000원이란다. 동네에서 비교적 저렴한 곳이라 전에 중간 가격으로 했었던 기억이 났다. 나는 단백질과 프리미엄이 무슨 차이가 있는지 물었다. 답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파마약이 다르고 머릿결 손상이 적다는 대답이었다. 사실 대답을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는 결정했다.

“그래요, 그럼 프리미엄으로 해주세요!”

미용사들은 한번 미용하는 동안 3시간 가까운 노동을 한다. 기본 파마의 경우 재료값, 감가상각 등을 제외하면 시간당 1만 원도 안 되는 수준이다. 그렇다고 미용사가 기술을 요하지 않는 일도 아니다. 3시간 오롯이 노동을 하지는 않지만, 계속 서서 작업을 하고, 손님을 응대하며, 신경을 써야 하는 일이다.

얼마 전 수도가 고장 나서 기술자를 불렀었다. 3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수도꼭지 2개를 갈았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재료비는 2만 원도 안되었다. 이 기술자는 15만 원을 달라고 했다. 소위 건설 현장의 기술자들은 최소 일당이 25만원이라고 한다.

거기에 비하면 3시간 노동하는 미용사의 파마 값이 턱없이 부족한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미용 기술과 건설 현장 기술은 얼마만큼 다른 걸까? 그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미용이 주로 여성의 일이라 그런 것은 아닐까? 그 짧은 시간에 기술자 임금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물론 미용사들 간에도 차이가 많다. 딸아이가 한번은 홍대 근처에서 잘 하는 사람에게 펌과 염색을 했는데, 30만 원이 넘는 비용을 썼다. 어쩌면 더 들었는지 모른다. 실력이 좋으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동네의 헤어디자이너는 같은 노동을 하면서 상실감이 클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미용사는 2시간 30분 동안 한눈팔지 않고 잘 해 주었다. 오래도록 손질을 하지 않아 머리가 길었고, 파마기가 없어 생머리에 가까웠는데, 짧고 굵게 꼬불거리는 펌으로 바뀌었다. 얼추 이미지와 비슷한 느낌도 났다. 나는 3시간 만에 5년은 더 젊어졌고, 경쾌하고, 가벼운 모습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프리미엄 빨이라 그런가? 완전 마음에 들었다. G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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