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즌 1: 나의 시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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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6. 덕질의 시작
나는 두 스포츠 팀의 팬이다. 야구에서 한 팀, 축구에서 한 팀. 안타깝게도 그들은 성적이 좋지 않다. 공교롭게도 두 팀 모두 원래는 성적이 좋았는데 내가 응원하기 시작하니 내리막을 걸었다. 요즘은 선수들도 지는 경기가 더 익숙해 보인다. 늘 ‘이번에는 이기겠지’하는 기대감으로 보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기대를 배반한다.
응원하는 팀의 패배를 보는 건 힘든 일이다. 내가 진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패배감을 계속 들게 하는 대상을 응원하고 앉아있는 것이다. 따지고보면 그들이 이긴다고 내게 좋을 것도 없다. 이기면 좋은 건 그들 뿐이다. 우승한다고 내게 콩고물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내 경력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니까.
그럼에도 매번 지는 그들의 팬을 여전히 자처하는 스스로를 보면, 앞으로도 자처할 나를 보면 좀 신기하다. 나쁜 기분만 징하게 받고 있는데, 시키는 사람도 없는데 계속 응원을 하겠다며 에너지를 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에게 어떤 마음을 주고 있다.
응원하는 팀이 잘할 때는 더없이 순수한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승리했다는 사실 만으로 행복감을 느끼고 선수들이 웃는 걸 보고 흐뭇해하기도 한다. 심지어 돈을 쓰기도 했다. 최근에 리그 꼴찌를 달리고 있는 야구 팀의 윈드브레이커를 샀다. 돈을 쓰고 팀의 이름이 박힌 옷을 입는다는 건 내 정체성에 그들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단순히 경기만 보는 게 아니라 선수 한 명 한 명의 일상을 담은 유튜브를 찾아보기도 한다. 선수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웃음을 짓고 슬픈 일이 생기면 같이 마음 아파한다. 구단의 역사나 어떤 스토리에 눈물짓고 감동받거나 기분이 웅장해지는 걸 느낀다.
그런 마음이 너무 소중해서 그런 건지, 응원하는 팀이 지면 화가 나기도 한다. 선수들을 향해 비난을 보내거나, ‘해체해라’라며 심한 말을 뱉는다거나(물론 선수들에게 닿을만큼 직접적으로 하진 않는다…), 엄한데 화풀이를 하기도 한다. 그럴때면 이 모든 게 결국 나를 위한 감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만큼 순수한 마음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응원하는 일을 덕질이라고 할 수 있다면, 사실 덕질이란 꽤나 불리한 일이다.
마음을 주는 일이란 언제나 그렇다.
서른 다섯해를 살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가 그거다. 타인의 사랑 가득한 마음을 배반하는 일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일 만큼 자주 일어난다. 응원하는 대상이, 내가 좋아하던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그들을 향해 보내는 마음에도 얼마 간의 화답을 해준다면 좋겠지만 그게 어긋나는 일은 많다. 성적이 떨어지든, 다른 사고를 치든, 내가 좋아했던 모습을 잃어버리든, 그런 일이 일어날 위험은 스포츠팀이 아니어도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그렇게 타인에게 마음을 주려고 하는가. 주는 쪽은 언제나 불리한 위치를 가짐에도 말이다. 그 과정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 감정이 가장 순수한 형태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경기를 위한 준비라는 험난한 과정을 뚫고 온 표정을 만날 때의 벅참,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얻는 걸 목도했을 때의 환희, 그 모든 이야기가 가져다주는 카타르시스 같은 것들 말이다.
“어쩌다 그 팀을 응원하게 됐어?”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이유랄게 딱히 없다. 우연히 어느 날, 어쩌다 본 경기, 어쩌다 눈에 든 선수, 그냥 그랬다. 마음은 그렇게 시작되기도 한다. 한 번 마음이 시작된 이래 최선을 다해 그 팀을 좋아하려고 노력했다.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이 팀에게 내가 마음을 듬뿍 줄 수록, 내게도 어떤 행복이 찾아오리라는 걸 말이다. 그때부터는 사실, 퍼포먼스나 성적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물론 성적에 따라 화를 내기도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지만, 정말로 그 팀이 그 팀으로서 존재하고 움직인다는 자체가 중요했다.
팀 성적이 바닥을 치는 요즘은 이런 질문을 받기도 한다. “‘그렇게 스트레스 받을거면 잘하는 팀을 좋아하지 그래.” 나는 “한 번 팬이면 영원한 팬이어야 해”라며 어줍잖은 신념을 내세운다. 그치만 진심이다. 나는 내가 준 마음이 너무 소중해서, 그 마음을 회수할 생각이 없다. 어떻게든 지키고 싶다. 비록 때로 스트레스를 가져다주고 화를 내게 만들더라도 누군가를 응원하는 마음은 그 자체로 나를 살게 만들기도 하기 때문에.
서른 다섯의 내가 지금의 모습으로 당당히 서 있을 수 있도록 도와준 마음들을 떠올려본다. 놀랍게도 나를 향한 일방적인 사랑이 많았다. 부모님의 보호, 멘토의 케어, 아내의 사랑… 손해를 보더라도 멈추지 않았던 것들. 물론 나도 그들에게 마음을 보내지만, 종종 그 마음이 옅어지더라도 언제나 나를 향할 마음들. 그것들이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내가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탱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그 마음을 헤아려보려고 한다. 생각만으로 숨이 막히고 눈물이 날 정도로 깊다. 비교도 안 될만큼 깊지만, 내가 그 팀들을 응원하는 마음과 닮아있다.
문득 거리에서 저 많은 사람들은 이 험한 세상을 어떤 힘으로 살아가는 걸까,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무엇에 지탱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한 명 한 명의 상대방에 대한 덕질 가득한 마음이 거미줄처럼 촘촘히 얽혀서 돌아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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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나날

마음이 복잡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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