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오전 어느 날_우연한 하루_지은이

2023.10.26 | 조회 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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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매주 화요일, 아파트 주차장 한 가운데엔 작은 시장이 열린다. 열 발걸음 남짓한 공간 사이에 빨강, 파랑 노랑의 텐트가 들어서면 그 안에 채소와 생선, 먹을거리들이 채워진다.

지난 봄 점심 즈음이었다. 평소라면 회사 근처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였지만, 그날은 재택을 하는 날이라 엄마의 팔짱을 꼬옥 끼고 아파트 단지 내 장터로 걸어 나갔다. 식재료를 준비하기 위해 나가는 걸음이었지만, 마실을 나가는 기분이었다.

장터에는 커다란 텐트가 빼곡했다. 초록 텐트 속에는 푸릇푸릇 채소가, 진주황 천막 안에는 갓 튀겨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빨간 닭강정이 '나를 먹어주세요'라 속삭이고 있었다. 약 십 오분 정도 흘렀을까, 텐트 곳곳을 누비며 양손 가득 까만 비닐 봉다리를 쥔 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진녹색의 작은 텐트를 막 지나친 순간, 함께 걷던 엄마가 나의 손을 붙잡았다. "우리도 초콜릿 사 먹을까?"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수제 초콜릿을 파는 1인 상점이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직접 만든 수제 초콜릿입니다. 한번 드셔 보시겠어요?" 진초록 야상을 입은 청년이 수줍지만 노력하는 표정에 용기 낸 목소리를 더해 초콜릿이 두 개씩 꽂힌 이쑤시개를 우리에게 건넸다. 어차피 구매할 마음으로 들어선 곳이었지만 미소를 머금고 초콜릿 조각 하나가 아니라 두 개씩이나 손에 쥐여주는 사장님을 보며 '와 아직도 이렇게 인심 좋은 분이 있었네‘라는 마음이 들었다.

출처: Unsplash
출처: Unsplash

작은 초콜릿 두 알이 입에 들어가자 쫀득한 질감이 한번, 달콤함이 입안에서 두번, 그리고 사르르 녹아내렸다. 평소 일본 로이스 초콜릿을 좋아하던 나는 이미 한국에서 철수해 먹기 어려워진 그 맛을 가끔 생각하곤 했다. 사장님이 건넨 초콜릿 두 알은 그 아쉬움을 달래려는 듯 내 입속에서 달달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달콤 쫀득한 초콜릿을 한입 먹고 고개를 들어 청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삼십 대 초반 정도일까? 아직 추위가 살짝 담긴 찬 공기를 온몸으로 맞아서 였을까, 코끝이 빨갛던 그는 살짝 살짝 우리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엄마는 "일본 것이랑 비슷하네요, 하나 주세요."라 말하며 초콜릿 값을 계산하기 위해 지갑을 열었다. 그 청년은 엄마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갑자기 환하게 미소를 지었고, 다시 수줍은 표정을 머금은 채 약간 들떠 있지만 읊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맛있게 드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연구하고 직접 만들었는데 아직 로이스보다는 많이 부족합니다. 앞으로 더 잘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를 차례로 내뱉았다.

'연구를 하면서 만들어 간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 얼굴을 자세히 관찰했다. 단발쯤 되는 길이의 머리였을까? 하나로 묶은 청년의 까만 머리칼 사이로 하얗게 센 머리카락 몇 가닥이 눈에 들어왔다. ‘삼십 대 초반 정도의 얼굴인데 벌써 새치가 보이네?’ 하얀 머리칼을 보며 그의 하루를 상상해 보았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장터를 돌아다니며 여러 손님을 만나고, 까만 밤이 되면 하루 내 들은 후기를 모아 더 나은 초콜릿을 만들려고 잠을 줄여가며 연구를 할까? 그렇게 긴 하루가 쌓여 나이보다 빨리 머리가 하얗게 세고 있었던 걸까?' 상상을 하는 도중 그는 보냉 포장까지 꼼꼼하게 마무리한 만원짜리 수제 초콜릿을 "오늘 하루 행복하세요." 라는 말과 함께 건네 주었다.

"행복하세요"란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의 환한 표정, 진심이 담긴 목소리, 달달한 초콜릿이 더해진 덕분이었을까, 하루가 진짜 행복해질 것만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에게 "갑자기 초콜릿을 사자고 한 이유가 뭐야?"라고 질문을 했다. 엄마는 초콜릿 청년은 추울 때나 더울 때나 사계절 내내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시장 한 가운데 홀로 서 초콜릿을 판다고 했다. 거기에 매번 밝은 목소리로 사람들을 대하며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을 쭉 지켜봤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은 초콜릿이 맛이 있든 없든 꼭 사주고 싶었다 말해주었다.

집에 도착해 포장을 열어보았다. 눈 앞에 놓인 것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누군가의 긴 하루 속 에너지, 사계절 내내 노력한 시간이 듬뿍 녹여진 초콜릿이었다. 그의 초콜릿이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면 좋겠다. “행복하세요를 전하는 초콜릿 사장님에게도 달콤한 행복이 가득하면 좋겠다.

다음엔 여러 개를 사서 주변 사람들과 같이 나눠 먹어야지를 생각하며 달콤한 초콜릿 한 알을 입에 머금었다.


* 글쓴이 - 지은이

우연히 만난 이들과 함께 만든 순간을 기록합니다. 감정을 글로 풀어내는 것을 좋아하며 <세상의 모든 청년>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해당 글은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문화>에 연재되고 있는 글입니다. <세상의 모든 문화>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매일(주중)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뉴스레터로,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가는 무료 레터 콘텐츠입니다.

우연한 하루 (출처: Unsplash)
우연한 하루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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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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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뭉구

    0
    about 1 year 전

    따뜻한 글 감사합니다. :)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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