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심리학자의 고백

상대의 거절을 이해하는 법_어느 심리학자의 고백_이지안

2024.04.15 | 조회 1.42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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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우리와 3년째 함께 지내고 있는 반려견 쿠디는 무릎 위에 올라오는 것을 좋아한다. 의자에 앉아있는 나를 한참 올려다보고 있다가 올라와라는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무릎 위로 점프한다. 덩치는 중형견에 가깝지만 스스로 소형견이라 착각하는 그는 긴 허리와 다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떨어질 듯 엉거주춤하게 있다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확인하면 내려간다. 간혹 일에 집중해야 할 때는 단호하게 안돼하고 올라오지 못하게 하는데, 그럴 때면 낑 소리를 한 번 내고 혼자 장난감 공을 가지고 놀거나 잠을 청한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면 언제 퇴짜를 맞았냐는 듯 살랑살랑 곁으로 다가와 빤히 올려다본다.

긴 허리가 삐져나오지만 엄마 무릎이 좋은 쿠디
긴 허리가 삐져나오지만 엄마 무릎이 좋은 쿠디

쿠디가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놀아달라는 제안을 거절할 때 한참 더 생각해야 하지 않았을까. 어떻게 거절해야 기분이 덜 상할지 여러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면서. 하지만 쿠디는 거절했다고 해서 내가 그를 미워한다거나 일부러 피하려 한다고 의심하지 않는다. 다음날이 되도록 서운함을 품고 있지도 않는다. 단지 지금 엄마의 무릎에 올라갈 수 없다는 사실을 가감 없이 받아들이고 제 할 일을 찾아간다.

사람에게 있는 해석하고 추론하는 고유한 능력 덕분에 우리 삶은 풍요롭지만 그만큼 피곤해지기도 한다. 특히 함께 시간을 보내자거나 도움을 구하는 요청을 거절당할 때 불안한 생각은 펑 하는 폭발음과 함께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다. ‘내가 못마땅한가’, ‘나한테 화가 난 일이 있을까’하고 해석하기 시작하면서 괴로워지고 만다.

 


가끔 우리는 유독 나에게만 싸늘한 표정을 짓거나 날카롭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난다. 무시하자고 굳게 결심해 놓고서도 막상 내 이야기에 표정이 굳는 것을 볼 때 내 마음도 덩달아 얼어붙는다. 저 사람이 나를 별로라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는 두려움은 잠시 떠올리기만 해도 살이 베인 듯 아프다.

거절을 당하는 순간 우리 마음은 신체적 고통과 비슷한 통증을 경험한다고 한다. 거절을 당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영역은 몸이 고통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부위와 비슷하다. 우리는 모두 타인에게 이해받고 관계에 속하고 싶기 때문이다.

유난히 거절이 힘겨운 사람들이 있다. 상대가 '나'라는 사람 자체를 거절했다고 해석할 때, 거절의 고통은 걷잡을 수 없어진다. 이런 사람들은 상대가 거절한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으려 한다. 자기 잘못에 집중하여 당시의 상황을 되짚어보면서 상대가 싫어했을 법한 행동을 기어이 짚어내고 스스로를 탓하는 벌을 내린다. 오히려 그편이 안심이 되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거절을 피할 수 있을 거라는 묘한 통제감마저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감정이 정리되는 것은 아니어서 거절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 만큼 자신에 대한 화살은 뾰족해지고 상대에 대한 감정의 골도 깊어지게 된다.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신뢰로운 관계를 맺어본 적이 드물거나 심하게 거부당한 사건 때문에 타인에 대한 믿음이 희미해졌을 것이다. 또는 겉으로 보이는 수줍은 모습과 달리 나는 상처 받아서도, 거절 받아서도 안 되는 사람이다는 터질 듯 부풀어진 자기감이 있을 수도 있다. 그 아래에는 깨지기 쉬운 취약한 자존감이 근근이 버티고 있다. 타인의 평가에 따라 나의 가치가 좌지우지된다고 믿기 때문에 타인의 거절이 매우 중요한 메시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더욱 레이더를 풀가동하고 미묘한 표정이나 애매한 대답도 거절의 사인이라 해석하게 된다. 최대한 가드를 높이 세워 거절의 위험을 대비하려는 것이다.

자기 존재가 거부당했다는 분노는 어떻게든 드러나기 마련이어서, 상대에게 은근히 화가 난 티를 내거나 상대를 탓하는 말투가 삐져나오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 긴장감 때문에 아예 관계에 어느 정도 선을 그어버리거나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고 숨기기도 한다. 그래서 외로워지고 만다.

이미지출처_I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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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가장 두려운 상황은 상대가 나를 싫어하거나 존중하지 않아서인 경우다. 만일 그런 이유로 거절하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그를 관계의 바운더리 바깥으로 밀어낼 필요가 있다. 미움이라는 것은 단지 나의 행동 때문에 생기는 것은 아니라서 내가 어떻게 행동하든 상대의 태도를 바꾸기는 어렵다.

지난 관계에서의 어떤 경험 때문에 내가 싫어졌을 수 있다. 예전에 가까운 이에게서 나무라는 듯한 비난을 자주 받았던 사람이라면 비슷한 말투를 쓰는 사람만 봐도 경계하게 된다. 관계에서 크고 작은 생채기를 경험하면서 이러이러한 사람은 힘들더라는 자기만의 울타리가 생기고 그 선을 넘어올 거 같은 사람에게 가장 험악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심지어 상대의 능력이나 태도 때문에 열등하다고 느끼고 있는 자신의 치부가 자극될 때 그 사람이 미워지기도 한다. 모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다. 그것이 나에 대한 거절의 화살이 되어 날아들 수 있다.

물론 이런 관계가 반복된다면 비슷한 관계 패턴을 만들어내는 나의 어떠함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는 있다. 어느 쪽에서 먼저 시작되어 만들어진 패턴이든, 이 패턴을 스스로 교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들과는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만나는 거절은 라는 사람에 대한 거절이라기보다 나의 제안이 그 순간 상대의 욕구와 맞지 않아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도시라 독서 모임이 없어 늘 안타까워하던 K와 후배 D는 작정하고 멤버를 모집하여 모임을 시작했다. 모임이 늦게 끝나는 날은 K가 회식을 제안하곤 했다. 그런데 D는 자주 불편한 기색을 내보이며 회식 자리에 빠졌다. 이런 일이 여러 번 쌓이자 KD가 모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해졌다. 나중에는 D가 자신을 피한다는 의심마저 들었다. 한편 D는 거절하면서도 미안해지곤 했다. 사람들과 있을 때 빨리 소진되는 D는 한시라도 바삐 집으로 가서 긴장을 풀고 싶었다. 이 때의 D의 거절은 그 순간의 각자가 품은 욕구가 만난 결과일 뿐이다. KD와 함께 있는 시간을 통해 친밀감과 소속감을 얻고 싶었을 테고, D는 혼자만의 쉼이 필요했다.

이미지출처_I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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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거절을 존중한다는 것은 타인의 욕구와 바운더리, 타인의 선택권을 모두 존중한다는 것과 같다. 함께 있고 싶은 내 바람을 무시하거나 일부러 마음 상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라, 그 시간에 더 우선으로 두고 싶은 다른 것이 있을 뿐이다. 어떤 사람은 모임에 끼기보다 혼자 있고 싶은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지금 당장 시작하기보다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그것을 존중하는 것이다.

거절이 고통스럽다면 그 순간 내 마음이 ‘여기 다쳤어’라고 이야기하는 곳을 살펴봐주면 좋겠다. 상대가 그러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했을 때 나는 왜 그렇게 서운했던 걸까. 나를 가까운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라는 영원히 알 수도 없고 내가 바꿀 수도 없는 상대의 의도를 추측하기보다는 나는 저 사람과 가까운 사람이 되고 싶구나하는 내 욕구를 바라봐주는 것이다. 거절이 아플수록 나의 바람이 강렬한 것일테다. 그 욕구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것을 특정한 누군가를 통해서만 채우려는 것이 갈등을 만들어내긴 하지만 말이다. 나의 바람은 나의 바람일 뿐이다. 상대가 그 바람을 들어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간혹 의도적이고 공격적으로 거절하는 사람을 만나겠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거절에 특별한 악의가 있다기보다는 자기 욕구를 알아달라는 부탁일 뿐이다. 실은 상대도 거절을 위해 큰 용기를 내었을지 모른다. 또 다른 거절을 피하기 위해 관계에서 물러나지는 말았으면 한다. 오히려 거절을 아무렇지 않은 척 받아들여 보기도 하고, 내 존재를 거절했다는 섣부른 해석을 멈추고, 지금 나와는 어긋났지만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상대의 욕구와 두려움과 기대를 찾아보면 좋겠다. 상대의 거절을 그의 욕구로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관계는 더 안전하게 오래갈 수 있을 것이다.


* 참고문헌

Eisenberger, N. I., Lieberman, M. D., & Williams, K. D. (2003). Does rejection hurt? An FMRI study of social exclusion. Science, 302(5643), 290292.


 

* 글쓴이_이지안

여전히 마음 공부가 가장 어려운 심리학자입니다. <나를 돌보는 다정한 시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를 공저로 출간하였고, 심리학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며 상담을 합니다.  

캄캄한 마음 속을 헤맬 때 심리학이 이정표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같은 고민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닿길 바라며, 심리학을 통과하며 성장한 이야기,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일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상담 블로그 https://blog.naver.com/hello_kirin

인스타그램 @kirin_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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