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가을 어느 날, 자연재해 수준의 폭풍을 만났다.
추석의 마지막 날, 언니와 대만여행으로 연휴를 꽉 채우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으로 가는 길이었다. 대만에 도착한 날엔 도로에 차들이 꽉 채워져 있었지만, 그날은 유난히 도로가 텅 빈 것 같았다. 이상하다 보다는 ‘면세점을 한바퀴 더 돌고 비행기를 탈 수 있겠다’라는 생각으로 들뜬 채 공항에 도착했다.
수속을 하려 카운터로 가는데, 분위기가 이상했다. 분명 사람들로 북적거려야 하는 내부가 휑하니 비어 있었다. 항공사 직원은 오늘 비행기는 모두 결항되었고, 곧 엄청난 태풍이 도심에 다다를 테니 얼른 숙소로 돌아가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덧붙여 항공사에서는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으니, 연락이 올 때까지 안전한 곳에서 잘 대피하고 있으라는 말도 따라왔다.
이야기를 듣자 마자 머릿속이 하얀 백지처럼 변해 버렸다. 당시엔 인터넷도 지금처럼 원활하지 않아 태풍이 온다는 소식이나,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공항에 와서야 알았는데, 진짜 문제는 수중엔 지폐 한 장이 없었다. 다행히 카드가 있어 부랴부랴 ATM 기기로 달려가 돈을 뽑아보려 했다. 하지만 모니터에 보이는 글자는 ‘에러’라는 글자였다. 지갑에 있는 모든 카드를 꺼내 여러번 시도했지만 계속 먹통이었다. ‘어떡하지?’ 언니와 머리를 맞대 찾아낸 방법은 딱 한가지였다. 묵었던 숙소 주인에게 사정을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휴대폰의 배터리는 충분했고, 숙소 주인에게 부탁 문자를 보내자 마자 바로 답변이 돌아왔다.
집주인은 쩔쩔매던 그 상황에 동아줄을 내려 주었다.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한국에 돌아가서 꼭 갚을 테니 하루치의 숙박비와 약간의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당연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휴 살았다’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끝이 아니었다. 염치없어 보일까 물어보기 어려웠던 한 가지 부탁을 조심스레 꺼냈다. “죄송하지만, 택시비도 부족한데, 혹시 시간 맞춰 나와서 기다려 주실 수 있나요?” 지갑을 탈탈 털어도 이미 짤랑 거리는 동전들만 남아 숙소로 돌아갈 택시비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 문장을 손에 땀이 날 때까지 휴대폰을 꼭 쥐고 썼다 지웠다를 수십 번 반복했다. ‘에라 모르겠다’. 전송 버튼을 누르자 곧이어 답변이 돌아왔다. OK.
숙소로 돌아가는 길부터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한국의 태풍을 여러 번 겪어본 지라 ‘심해 봐야 우산이 뒤집힐 정도 겠지?’라는 생각을 하려는 찰나 택시는 숙소에 다다랐다. 다시 만난 집주인은 흔쾌히 숙소의 문을 열어주었고, 돈 봉투를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오늘은 절대로 밖에 나가고 싶어도 나가면 안 됩니다.” 처음엔 그 말이 무엇인지 몰랐다.
막상 숙소에서 다시 짐을 풀고 나니 허기가 몰려왔다. 마트에서는 신용카드를 쓸 수 있었으니 잠깐 가서 먹을 것을 좀 사올까? 버스를 타면 약 20분 정도의 거리였기에 금방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언니와 채비를 하고 문밖을 나선 후 한 블록을 지나갈 즈음이었다.
갑자기 휙 하는 소리의 바람이 불었는데 털썩,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바닥을 향해 툭 떨어졌다. 정확히 표현하면, 바람을 맞고 넘어졌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순간이었다. 넘어지던 나를 바라본 언니는 눈이 휘둥그레졌고 손으로 입을 막으며 비명을 막고 있었다. 몇 초 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약속이라도 한 듯 가던 길을 멈추고 숙소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열 걸음이 지날 즈음이었을까, 우리 옆으로 자전거를 타던 중년 여성이 조금 전 나처럼 넘어져 버렸다. 사람만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몸 위로 바람의 무게를 잔뜩 실은 자전거가 쿵 하고 함께 떨어졌다. 가던 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그녀는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끙끙대고 있었다. 언니는 그녀 옆에서 괜찮은 지 살펴보았고, 나는 도로 방향으로 나와 “도와주세요!”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저 멀리 까지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시간을 그냥 흘려 보낼 수는 없었다. 119에 연락해 안되는 중국어를 섞어가며 빨리 구조요원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장소를 말해야 할 시점에 지나가던 사람이 우리 쪽으로 왔고, 사고가 난 장소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얼마 후 구급차가 도착해 그녀는 안전하게 병원으로 떠났다.
언니와 나는 그제서야 현실을 실감했다. 쿵쾅거리던 심장을 겨우 부여잡고 숙소에 돌아와 TV를 켜니 영화에서나 보던 이미지가 쏟아졌다. 건물의 유리창이 와르르 쏟아지거나, 가로수는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부러지고 있었다. 나처럼 바람에 넘어지거나 빗물에 낙엽처럼 쓸려 내려가는 사람들도 보였다. 오전부터 겪은 일들을 순서대로 떠올려 보니 나 또한 자연 재해의 한 가운데 서 있었다. 우산이 뒤집히는 수준이 아니라 사람이 날아갈 정도의 태풍 속 어느 곳에서 살아남은 사람 같았다.
그제서야 오전에 집주인이 말해준 절대 나가면 안된다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 말을 들었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숙소 앞에서 넘어졌으니, 더 멀리 가지 않았고, 그 덕분에 다친 분을 구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다행이다’라는 마음도 따라왔다.
어느 새 창밖은 까만 어둠이 내려왔지만, 유리창을 때리는 빗소리는 그대로였다. 우리는 남은 밤시간 동안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할 수는 없었다. 오늘 밤 동안 바람이 잠잠해져 누군가 더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함을 가득 안은 채 내일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잠을 청했다. 긴 하루는 그렇게 끝이 났다.
다음 날 눈을 떠 보니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하늘엔 햇살이 가득했다. 하지만 공항으로 돌아가는 길에 눈에 들어오는 장면들은 어제 뉴스에 나오던 여파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무섭기도 했고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어 다행이라는 마음이 교차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폭풍우를 넘어 집으로 돌아왔고, 얼마 후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그때의 일은 기억 한 구석에 희미하게 남게 되었다.
하지만, 가끔 뉴스 속에서 재해 사건을 보게 되면 막막함 한 가운데 있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폭풍우 치던 그날, 집주인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구급차에 실려갔던 아주머니는 지금 잘 지내고 계실까, 꼬리를 무는 생각이 떠오르지만, 늘 결론은 하나로 이어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조그만 출구는 결국 사람들이 서로 건네는 손길로 만들어 졌고, 다음날은 꼭 온다는 걸 말이다.
다행히 아직 까지는 그때처럼 큰 위험을 다시 만난 적은 없다. 하지만, 가끔은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내가 큰 일을 겪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는 한걸음 더 가까이 가보려 한다. 누군가 함께 라면 그 순간도 조금 더 빨리 지나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 글쓴이 - 지은이
우연히 만난 이들과 함께 만든 순간을 기록합니다.감정을 글로 풀어내면 좋은 건 알겠는데, 좋은 걸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하지?' 고민 하다 '글쓰기'가 정서에 미치는 영향을 직접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청년>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