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란하거나 울적해질 때, 우리는 당황하고 무언가 잘못돼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다시 원래대로 되돌려놓으려고 한다. 여기서 ‘원래’는 평온한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에게 마음은 본래 평온하거나 행복해야 하고 불쾌감은 없어야 한다는 환상이 어느 정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마음은 언제든 쉽게 고통스러워지며, 오히려 불편이 없는 상태가 드물다.
이는 뇌가 열심히 일해 주는 덕분인데, 뇌는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위험한 상황을 인지한다. 깜깜한 밤길을 걷다가 길모퉁이에서 무언가가 나타났을 때 흠칫 놀라 걸음을 멈추는 것처럼, 어떤 상황인지 판단하기도 전에 편도체는 미리 위험을 감지하고 본능적으로 우리를 준비시킨다. 실제로는 지나가던 고양이 같이 그리 위험한 대상이 아닐 수도 있지만, 우리 몸은 마음을 놓았다가 해를 입었을 때의 아찔함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알람을 울려댄다.
학자들은 뇌가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진화해 왔다고 설명한다. 생존을 위하여 뇌는 끊임없이 부정적 정보를 스캐닝해서 무언가 잘못되어 있거나 앞으로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린다. 그러다 보니 마음은 부정적인 쪽으로 쉽게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더 강하게 반응하고 영향을 많이 받는 이러한 경향을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이라고 한다.
우리는 웃는 얼굴보다는 슬픈 얼굴에, 슬픈 표정보다는 두려워하거나 화난 표정에 눈길이 더 가고, 타인의 친절한 행동보다는 나쁜 행동에 더 집중하며, 부정적인 사건은 긍정적인 사건보다 더 오래 기억한다. 돌 전후의 아기에게도 뱀 그림과 꽃 그림을 함께 보여 준 실험에서 아기는 뱀 그림에 더 초점을 맞췄고, 행복한 표정과 화난 표정을 동시에 제시했을 때 화난 표정에 더 빨리 주의를 기울였다고 한다.
그러므로 한참 친구와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에 친구의 울적한 눈빛이 마음에 남는다거나, 상사의 칭찬을 들으면서도 언뜻 스친 언짢은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거나, 잘 해낸 업무보다 실패한 업무 하나가 더 마음 쓰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기분이 우울하거나 불안하면 이러한 경향성이 더 심해지기도 한다. ‘저 사람 표정이 왜 어둡지? 내가 뭘 잘못한 걸까’라고 해석하는 단계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미 표정이 눈에 들어온 시점부터 부정적인 단서에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심지어 무표정에서도 어떻게든 부정적인 신호를 찾아내기도 한다. 그만큼 뇌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의미일 테다.
우리는 무수한 정서적인 위협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하던 일이 실패해서 자존감에 타격을 입을 수도 있고, 친구가 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고, 상사가 내 업무방식에 불만이 있을지도 모른다. 정서적 데미지를 입을 수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타인의 굳은 표정이나 애매한 대답, 일이 잘못될 가능성과 같은 단서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시도 때도 없는 ‘혹시나’ 하는 알람 속에서 고요한 마음을 지키기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은 동그란 유리로 된 스노 글로브 안의 작은 눈 조각처럼 하루에도 여러 번 뒤집히고 또 구른다.
대학 시절 나의 스노 글로브는 자주 흔들렸다. 작은 동네와 학교에 한정되었던 세계가 갑자기 무한대로 넓어진 것 같아 수시로 불안에 휘청였다. 미래의 가능성에 들뜨기도 했지만 인생의 향방을 가르는 중요한 결정 앞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될까 두려움이 더 컸다.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rik H. Erikson)이 말한 대로, 초기 성인기의 과업인 ‘친밀한 관계’에 속하기 위해 마음이 부대끼는 날이 많았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이어졌다. ‘나는 누구인가’라고 거창하게 질문했지만 실은 ‘내 성격은 왜 이 모양이지’라는 번민이었다. 그뿐 아니다. 부모로부터의 정서적, 경제적 독립이라는 엄중한 과제 앞에서 나는 또 얼마나 괴로웠던지. 그전까지 유예했던 모든 갈등과 괴로움이 20대 초반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폭발하듯 몰아쳤다.
학교에 기도실이 있었다. 공강 시간에 짬이 나면 억지로 나를 그 속으로 밀어 넣곤 했다. 기도실을 가지 않는 날은 아직 꺼지지 않은 숯을 불쏘시개로 들쑤신 듯 불안감이나 수치심, 분노와 같은 감정이 화르르 타올랐다. 그나마 기도실에서, 절대자 앞에서 마음을 짚어보고 토로한 날은 불길이 잠잠해졌다.
후에 나는 그나마 당시의 내가 하루에 한 번은 진정 시스템을 가동했음을 알게 되었다. 자비중심치료의 창시자인 폴 길버트(Paul R. Gilbert) 교수는 우리에게는 추동(drive), 위협(threat), 진정(soothing)이라는 세 가지 정서 시스템이 있어서, 이를 바꿔가며 감정과 행동을 조절한다고 보았다.
추동(자원추구) 시스템은 필요한 것을 얻거나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목표에 집중하고 동기가 생기게 만든다. 이 시스템 덕분에 우리는 헬스장에 가고, 새로운 취미를 만들고, 원하는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 위협(자기보호) 시스템은 상처를 받거나 다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인지 재빠르게 파악해서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불안, 슬픔, 수치심, 분노, 혐오감과 같은 감정을 일으켜 생존을 도모한다. 진정(친화) 시스템은 우리를 진정시키고 쉬고 돌보는 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며, 편안함과 연결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 시스템 모드에서는 옥시토신과 같은 고통을 줄이고 기분이 좋아지는 신경전달물질이 나온다.
세 가지 시스템이 균형을 잃으면 스트레스와 감정적 소진이 심해지는데, 보통 우리는 추동과 위협 시스템에 치우쳐 살아간다. 위협이나 추동 시스템 속에서는 긴장을 늦출 수 없기 때문에, 삶이 치열해질수록 회복을 돕는 진정 시스템이 더더욱 필요하다. 진정 시스템은 위협 시스템의 두려움, 불안, 분노를 가라앉히고, 추동 시스템으로 이루려고 했던 것이 잘 안됐을 때 괜찮다고 다독여 줄 수 있다.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기, 스스로 안아주기, 같이 사는 동물을 쓰다듬기, 심호흡이나 몸을 이완시키는 스트레칭, 명상이나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진정 시스템의 스위치를 켜볼 수 있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진정 시스템 모드에서는 타인이 나를 나쁘게 보거나 비난할 거라는 의심이 평소보다 줄어든다고 한다. 몸과 마음이 느긋해질 때, 부정적으로 치우쳤던 편향이 균형을 잡게 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부정적 단서에 피로해진 스스로를 돌볼 수 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불안과 수치심, 좌절감의 다리를 건너갔다 왔을, 괜찮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사는 나를 위한 배려다.
<참고문헌>
존 티어니, 로이 F. 바우마이스터. (2020). 부정성 편향: 어떻게 이용하고 극복할 것인가. 정태연, 신기원 역. 에코리브르.
폴 길버트, 초덴. (2020). 마음챙김과 자비. 조현주, 박성현, 김병전, 노승혜 역. 학지사.
Fadi, S., Samawi. (2020). The effect of a relaxation-based training on reducing the level of suspicious thinking among warned students. Cypriot Journal of Educational Sciences, 15(6):1519-1534.
LoBue, V., & DeLoache, J. S. (2010). Superior detection of threat-relevant stimuli in infancy. Developmental science, 13(1), 221–228.
글쓴이_이지안
여전히 마음 공부가 가장 어려운 심리학자입니다. 최근 <성격 좋다는 말에 가려진 것들>을 출간하였고, <나를 돌보는 다정한 시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를 공저하였습니다. 심리학 관련 연구소에서 일하며 상담을 합니다.
캄캄한 마음 속을 헤맬 때 심리학이 이정표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같은 고민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닿길 바라며, 심리학을 통과하며 성장한 이야기,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일상 이야기를 전합니다.
페이스북 이지안 Facebook
인스타그램 @kirin_here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