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항암 생활

날카로운 첫항암의 기억-구경희

다시, 봄날 햇살 속으로

2024.10.01 | 조회 8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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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첫 항암 주사를 맞으러 가는 날이 되었다.잠을 설친 건 당연했다. 내가 아무리 간이 크다고 해도 항암 주사를 맞는 것은 겁이 났다. 마치 호랑이 입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아침 8시까지 아산 병원에 가서 채혈하고 백혈구, 호중구 수치 등 혈액 상태를 검사한 후에 종양내과 의사 선생님을 만나야 했다. 7시도 되지 않은 이른 아침에 모든 식구, 애랑 애 아빠까지 일어나서 휴가라도 떠나듯이 올림픽 대로를 달려 아산 병원에 갔다.

이른 아침에도 채혈실 앞은 북새통이었다. 코비드 시절이었기에 딸애는 병원에 들어오지 못했다. 혈관이 약하고 잘 보이지 않아서 두세 번을 찌른 후에야 채혈할 수 있었다. 혈관도 주인 닮아서 겁이 많아 이리저리 도망을 다녔고 주사 후 혈관이 터진 부분은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8시에 채혈을 마치고 10시 진료를 볼 때까지 병원 마당에 앉아있었다. 아산 병원 마당은 나무가 넉넉해서 마음을 달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주사를 맞을 수는 있겠지?” 나는 함께 진료를 기다리던 애 아빠에게 물었다. 그 사람이라고 무엇을 알까마는 무게 없는 말이라도 괜찮을 거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초조하기는 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치료가 안 되면 복잡해질 테니까. 9시쯤 미리 종양내과 앞으로 가서 혈압과 키, 몸무게를 재고 진료를 기다렸다. 진료는 밀리는 법이 거의 없었다. 환자들은 무표정하게 진료대기판을 바라보고 있었고 간호사들은 이런저런 설명을 하느라 바빴다. 그 와중에 나는 사람들이 무슨 신발을 신었는지 어떤 색의 겉옷을 입었는지를 보았다. 그렇게라도 세상 속에 어울리고 싶었다. 나는 주로 빨강이나 초록 니트를 입고 운동복 바지를 입고 갔다. 당시에는 어떤 옷이든 무겁게 느껴져서 요가할 때 입는 얇은 운동복만 입고 다녔다. 첫 혈액검사는 통과였다. 당일 2시에 항암 주사를 맞기로 했고 1시쯤에 안정제 한 알을 미리 먹으라고 처방을 받았다. 애 아빠가 약을 사왔고 딸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나는 다시 집으로 실려 왔다.

12시쯤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온 식구들은 각자의 방에 누웠다. 모두 긴장했다. 억지로 점심을 먹고 병원에서 준 안정제를 먹었다. 수면제 한 번 먹은 적이 없어서인지 약효가 바로 전해졌다. 내시경 검사를 하기 전에 살짝 마취가 들락 말락 하는 묘한 기분이 느껴졌다. 안정제를 먹고 대망의 항암 주사를 맞기 위해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서관 5층에 있는 주사실로 올라갔다.

병원에서 처방 받은 진정제
병원에서 처방 받은 진정제

5층 주사실 앞에서 또 한번 원망이 올라왔다. 내가 왜 이런 주사를 맞으러 낯설고 낯선 장소에 홀로 있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자, 주사를 꽂기도 전에 울렁거림과 서글픔이 밀려왔다. 하지만 울지는 않았다. 그러면 답이 없을 것 같았다. 주사실은 대략 네 명에서 여섯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었고 내가 들어간 곳은 이미 세 명의 환자가 주사를 맞고 있었다. 진정제를 먹고 왔음에도 간호사는 진정제를 또 주사했고, 이어서, 드디어 옥살리플라틴이 내 혈관 속으로 들어왔다.

차갑고 아프고 찌릿했다. 진정제 덕분인지 준비해 간 코미디 프로그램아는 형님을 볼 틈도 없이 잠이 들었다. 주사를 맞던 왼쪽 팔이 아려서 잠이 깼는데 이미 두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고 주사는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잠이 깨고 10분쯤 지나자, 간호사가 다 끝났다며 주사관을 제거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하고 작은 비명을 질렀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주사를 맞은 팔이 거의 마비가 되었고 마치 드라이아이스를 쥐고 있는 듯 팔 전체가 끊어질 듯 시렸다. 겉옷을 입어야 했지만 옷자락이 스칠 때마다 칼로 팔을 긁는 것 같아서 옷을 다른 쪽 손에 들고 병실을 나왔다. 어지러웠고 추웠다. 앞으로 왼쪽 팔을 쓸 수는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기운에 취해 하늘이 빙빙 돌았고 부축하던 애 아빠는 나를 잠시 병원 소파에 앉혀두고 먹는 항암 약젤로다를 사러 달려갔다. 주사 맞기가 끝나기를 밖에서 기다리던 딸아이는 차를 가지고 아산 병원 서관 앞으로 왔고 잠시 후 수납까지 다 마친 애 아빠를 만나 세 식구는 집으로 돌아왔다. 발키리 작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일사불란했다. 대략 6시쯤 된 올림픽 도로는 꽉 막혔고 나는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오늘의, 이 과정을 우리는, 세 사람이 다 같이 움직였으므로 우리라고 표현하는 게 옳은데, 앞으로 일곱 번을 더 해야 했다. 이른 아침부터 병원으로, 채혈하고, 진료 보고, 집으로, 다시 병원으로, 주사 맞고, 다시 집으로.

먹는 항암제 젤로다
먹는 항암제 젤로다

그날 저녁부터 먹는 항암제 젤로다를 먹었다. 생긴 건 분홍색으로 동그란 게 예뻤지만, 이 약의 독성도 만만치 않았다. 검색한 바로는 손발톱이 새카맣게 되거나 피부가 얇아져서 벗겨지거나 구내염이 생기는 부작용이 있다고 들었다. 식구들은 저녁까지 병원에 다니느라 일찌감치 잠들었고 온종일 잠들다 깨기를 반복한 나는 옥살리플라틴의 강력한 독성 부작용인 팔 저림, 시림, 어지러움, 혀에 갑자기 잔뜩 생긴 백태 등을 어떻게 극복하나 혼자 고민했다.

난생처음으로 경험하는 희한한 통증이었다. 그렇지만 하나하나 다 말하기가 싫었다. 식구들도 내가 여기도 이상하다 아프다 무섭다는 이런 얘기를 하면 도망갈 것 같았다. 어지간히는 참고 진짜 견딜 수 없는 것만 얘기해야겠다고 결심하고 그날 밤, 항암에 대해 검색하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 그 날밤의 검색 이후 나는 다시는 암 생존율 따위는 검색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인터넷의 정보는 잔인했다. 암에 관한 자료는 크게 두 종류가 있었는데 의사나 연구원들의 자료와 정보를 가장한 건강식품 업체의 광고가 대부분이었다. 의사들의 논문은 암호 같아서 이해가 어려웠고 건강식품 회사들은 환자들에게 절망을 던지고 약을 파는 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항암 주사를 맞은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먹는 항암 약 젤로다를, 아침저녁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밤새 잠을 못 자서 피곤했지만 밥을 먹어야 했다. 왼쪽 팔은 여전히 드라이 아이스를 두른 듯해서 5월 말, 따뜻한 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캐시미어 니트를 조심스레 팔에 둘렀다.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화들짝 놀랄 만큼 아팠기에 어떤 것에도 닿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했다. 냉장고를 직접 열 수도 없었다.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면 뼈까지 통증이 느껴졌다

자주 먹은 연근
자주 먹은 연근

다음 날 아침식사로 전복죽인지 된장국인지를 먹었다. 입안은 굵은소금을 한 주먹 집어넣은 것 같았는데 그런 상황에서 무엇을 먹기가 무척 곤혹스러웠다. 먹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일 줄 몰랐다. 모든 음식에서 약 냄새가 났다. 삼키기가 어려웠지만 젤로다를 먹어야 해서 억지로 삼켰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았지만 꾸역꾸역 삼켰는데 식탁에 앉아서도 머리가 뱅글뱅글 도는 기분이었다.

과연 멀쩡해질 날이 오기는 오는 걸까. 약통에는 14일 치 아침 저녁 분의 분홍색 젤로다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첫 항암 주사를 맞은 다음 날, 첫 아침 식사와 약까지 먹었다. 그 무섭다던 항암 부작용으로 구토와 어지러움이 밀려왔지만, 나는 운동복을 입고, 왼쪽 팔은 니트로 감싼 채 밖으로 나왔다. 아주 느린 걸음으로 집 뒤에 있는 서달산 자락으로 향했다

매일 올랐던 서달산
매일 올랐던 서달산

그렇게 나는 다시 봄날 햇살 속으로 들어섰다.

**항암 치료 시 준비하면 좋은 것

1.         옥살리플라틴 계열 주사라면 따뜻한 천이나 핫팩을 준비해서 주사 맞은 후 덮어준다.

2.         항암 주사를 맞을 때 코미디 프로그램 시청이 도움이 되었다. 재미있는 영상이 정신적으로 도움이 된다.

3.         젤로다 같은 먹는 항암약은 구내염과 손톱 발톱을 까맣게 태우기도 한다. 혀를 마르게 하기도 하니까 미지근한 물을 자주 마신다.

4.         항암중에는 치과 시술이 어렵다. 환자용 부드러운 칫솔을 이용해서 이를 평소보다 꼼꼼히 닦는다. 입안에 상처가 나기 쉬우니 조심한다.

 

글쓴이: 구경희 

미술대학입시 전문 컨설턴트이다. 인생 이야기를 즐겨 읽다가 글쓰기의 바다에 빠져들었다. 자유로운 영혼의 아이를 키우며 자신까지 해방된 운 좋은 사람이기도 하다.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고 한때 바위타기를 꿈꾸었다. 요가, 글쓰기, 그림 그리기를 인생의 동반자로 삼고 있다

브런치 https://brunch.co.kr/@cesil1004

코너명 소개: 슬기로운 항암 생활: 

암에 걸렸다. 대장암 3기였다. 명랑을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눈물 흘린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완치까지 1년 반이 남았다. 요가도 하고 수영도 하고 해외여행도 하고 출근도 한다. 아직, 절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희망을 얘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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