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암에 걸린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무엇을 먹을까?’였다. 고기는 먹어도 되는지, 야채를 날것으로 먹어도 되는지, 비타민은 먹어도 되는지 등 몸 속으로 들어가는 식품들이 몸 안에서 제 가능을 다해 조금이라도 병세가 낫기를 소망하는 마음들이 간절했다.
대장 수술 직후 한 달간은 저잔사식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 이름도 생소한 저잔사식이란 장에 머무르는 음식물을 최대한 적게 하는 식사법이다. 식이섬유는 장을 많이 움직이게 하는데 수술 이후 예민해진 장은 최대한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저잔사식은 식이섬유, 견과류, 기름 진 음식 등을 제외한 식사이다. 병원에서 저잔사식 메뉴를 주기도 하는데 흰밥류, 흰 살 생선, 두부, 계란, 된장국물, 카스텔라 등이 해당되었다. 식탁에 차려진 ‘허연 음식’들을 보면 입 맛이 달아날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이 음식들이 나를 살린다는 생각으로 감사하게 먹었다.
저잔사식을 할 때는 아무리 몸에 좋은 식품이라도 미역, 김, 토마토, 나물 등은 금물이다. 당장은, 자르고 이어 붙인 장이 잘 아물어야 하기 때문에 장운동을 자극하는 식품은 먹지 말아야 한다. 한 달가량 저잔사식을 하며 하얗고 고운 음식들만 먹었더니 피부가 아주 맑아져서 암에 걸렸지만 피부 미인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하고 다녔다.
대장암 3기로 장을 30센티미터 잘라내는 수술을 했다. 소화기 암은 다른 암들보다 먹는 것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데 특히 대장암은 수술이후에는 장이 제대로 자리 잡도록 관리를 잘 해야 한다. 암에 걸렸다는 소문이 주변에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먹어라, 저렇게 먹어라고 조언을 많이 주었는데 그 중에는 나에게 맞는 방법도 있었고 안 맞는 방법도 있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잘 맞았던 음식이나 조리법이 나에게는 맞지 않을 수가 있으니, 환자는 자신의 병을 잘 이해하고 자기 몸에 적절한 방법을 꼼꼼하게 찾아 적용해야 한다.
음식과의 전쟁은 항암치료를 시작하고부터 시작되었다. 무엇을 먹어도 제맛이 나지 않았고 비위가 약한 나는 계속 울렁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간이 세거나 달고 매운 음식으로 입맛을 돋울 수 있겠지만 암에 걸린 사람이니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그러지도 못했다. 항암 주사로 부작용으로 한 쪽 팔을 쓸 수가 없었고 손이 시려 냉장고 문을 여닫지도 어려워 식사를 챙기기가 너무 어려웠다. 연로하신 엄마가 충격받으실까 봐 병이 난 사실을 비밀로 했더니 여러모로 아쉬운 상황이 많았다. 외로움을 느낄 사이도 없이 살 궁리를 해야 했다.
주변 지인들에게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식사 준비가 쉽지 않다고 소문을 내고 무엇을 먹어야 할지, 어떻게 먹어야 할지를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사회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암을 앓은 적이 있거나 가족들이 암 투병 중이었다. 인터넷의 정보들은 믿을 수가 없었다. 죽을지 살지 덜덜 떨면서 잠 못 이루고 검색을 해 보면 결국은 90% 이상이 ‘검증되지 않은 약’을 먹으라는 일종의 광고였고 나머지들도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아마 지금도 많은 암 환우들이 이런 정보를 믿고 갖가지 검증되지 않은 약이나 식품을 비싼 돈을 주고 먹을 것을 생각하면 화도 나고 안타깝고 슬프다.
소문을 낸 작전은 효과가 있었다. 전국 최고의 자연농 농부들과 연결이 되었고 제철에 맞는 식재료를 배송 받았다. 한살림 식재료와 자연농 재료를 사용해서 음식을 만드시는 분과도 연결이 되어 각종 국, 볶음, 백김치, 특별 음식 등을 택배로 받았고 나는 집에서 현미, 녹두, 찹쌀, 조등을 번갈아 넣고 잡곡밥만 지었다. 소금, 간장, 된장 등도 자면 농에서 만든 것으로 다 바꾸었다.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은 소고기나 돼지고기 등도 한 달에 두세 번은 먹었고 신선한 계란도 주문해서 매일 한 알씩 먹었다. 숯불에 구운 직화구이 고기는 가능한 먹지 않았고 집에서 고기를 요리할 때는 주로 삶는 조리법을 썼다. 한 달에 한두 번은 집 근처 한살림에 가서 자연농에서 미처 구할 수 없는 재료들을 사 왔다. 항암 주사인 옥살리 플라틴을 맞은 삼 일 정도는 도저히 입맛이 돌지 않아서 한살림 누룽지와 맑은 된장국을 함께 먹었는데 신기한 일은 아무리 울렁증이 심해도 된장 국물은 마실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외국 여행을 갈 때마다 누룽지와 된장 병을 반드시 챙긴다.
가끔 암 환자들이 유기농이나 자연농 식재료를 찾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굳이 유기농 안 먹어도 된다는 주장이며 과학적인 성분분석 표 등도 함께 제시하곤 한다. 나의 생각은 이렇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무엇을 먹고 안 먹을지는 본인이 수없이 고민해서 선택하는 것이며 누가 봐도 유기농이나 자영농 식재료들이 건강한 재료들이기에 상황만 된다면 아주아주 미세하더라도 건강에 좋은 식품을 찾아 먹는 게 좋다는, 어쨌든 후회가 없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다.
회 차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항암 주사를 맞고 삼 일에서 오 일이 지나면 약간 어지럽기는 해도 집 뒤에 있는 낮은 산을 오를 정도의 기력이 생겼다. 일 주일째가 되면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면역력이 약한 상태였으므로 마스크를 반드시 끼고 날씨에 비해 따뜻한 옷을 챙기고 내가 먹을 수 있는 약간의 간식을 따로 챙겨 다녔다. 항암 치료를 할 당시에 가장 자주 만났던 친구들은 지나치게 가깝지도 멀지도 않는 친구들이었는데 산을 좋아하지만 자주 올라갈 수 없는 우리들 상황을 빗대어 <산에 가지 않는 산악회>라는 명칭으로 만났다. 암이라는 엄청난 병명 앞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안아 준 친구들 덕분에 나는 잠시나마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커피를 너무 마시고 싶었다. 나는 평소에 술 담배는 하지 않지만 커피만큼은 하루에 두 잔씩 꼬박꼬박 보약 먹듯 마셨기에 커피를 마셔도 되는지 말아야 하는 자기가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검진을 갔을 때 담당의에게 물어보았더니 수면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한 잔쯤은 마셔도 된다고 했다. 친구들과 재잘거리고 향기 좋은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는 다음 주에 항암치료를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찾아갔다. 오전 열 한시쯤, 집 뒷동산에 있는 커다란 나무 그늘에서 바람 소리를 듣는다거나 가사가 좋은 노래를 찾아 불러보거나 삶의 중심에서 약간 비껴간 작가들의 글을 읽거나 그림을 보러 다니곤 했다. 혼자 외출하고 혼자 커피를 마시는 시간조차 황홀해서 반드시 병을 치유하고 삶을 제대로 누려 보겠다고 수없이 수없이 되뇌었다.
암환우들에게 추천하는 식사법
1. 가능한 골고루 제철 음식을 드시면 좋겠습니다.
2. 지나친 채식이나 생식은 영양실조의 원인이 될 수 있으니 반드시 담당의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3. 설탕이 많이 든 음식은 덜먹는 게 좋겠습니다.
4. 수면을 방해하지 않는 한 하루 한 잔 정도의 커피는 마셔도 된다고 합니다. 에스프레소보다는 드립 커피로 마셨습니다.
5. 항암치료 후 울렁거림이 심하면 누룽지를 푹 끓여 먹거나 연한 된장국물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6. 가능한 식재료는 유기농이나 자연농 식재료를 쓰시면 좋겠습니다.
7. 생강이나 아로니아등 면역을 올리는 식품을 자주 먹는 것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8. 생선회나 굴 같은 날 음식은 가능한 먹지 않았습니다. 건강한 사람들도 가끔 탈이 나니까 굳이 찾아 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9. 성분이 불 분명한 영양제나 건강 식품등을 조심해야 합니다. 모든 치료는 담당 의사와 솔직하게 소통하며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10. 상식적으로 좋은 식품들, 생강 케일 살코기 두부 아로니아 블루베리 비트 토마토 등을 제 철에 챙겨 먹습니다.
글쓴이: 구경희
미술대학입시 전문 컨설턴트이다. 인생 이야기를 즐겨 읽다가 글쓰기의 바다에 빠져들었다. 자유로운 영혼의 아이를 키우며 자신까지 해방된 운 좋은 사람이기도 하다.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고 한때 바위타기를 꿈꾸었다. 요가, 글쓰기, 그림 그리기를 인생의 동반자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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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너명 소개: 슬기로운 항암 생활:
암에 걸렸다. 대장암 3기였다. 명랑을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눈물 흘린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완치까지 1년 반이 남았다. 요가도 하고 수영도 하고 해외여행도 하고 출근도 한다. 아직, 절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 안에서 찾을 수 있는 희망을 얘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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