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나는 개인적으로 알고 지낸 건축가가 한 명도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도 세상 모든 직업인을 알면서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내게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랄 게 생겨났다. 독서 모임이나 글쓰기 모임을 하면서였다. 그런 모임들을 계기로, 요즘에는 참으로 다양한 직업인들을 만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가 아는 건축가는 단 한 명이다. 한참 건축가의 일에 대해 듣던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하자, 그가 대답했다.
“원래 일반적인 사람들이 건축가를 만날 일은 잘 없죠. 건축이란 인생에서 이례적인 일이니까요. 그러니까 인생에 한 번쯤, 자기 집이든 사업체든 그 무언가를 건축하려고 할 때, 인생의 정말 큰 꿈을 가지고 만나게 되는 게 건축가인 셈이죠.”
그는 내가 유일하게 알게 되어 어느덧 몇 년째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전이서 건축가였다. 나는 인터뷰 프로젝트를 처음 구상할 때부터 그와 한 번쯤 인터뷰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었다. 그 이유는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건축가여서만은 아니었다.
그는 최근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로 평가받은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2023’ 건축부문에서 최고상(Gold Trophy)을 수상했다. 그런데 수상한 그 건축물이 흥미롭다. 건축물 이름은 ‘누리봄 다함께 키움센터’라는, 아이들을 위한 일종의 아동복지시설인 공공건축물이다(이 건축물은 대한민국공간문화대상을 동시에 수상하기도 했다). 그 이전에도 나는 그와 함께 했던 <세상의 모든 청년> 프로젝트에서 그가 보호종료아동(자립준비청년)이 사는 시설에 대해 예리하고도 따뜻한 시선을 보여주었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모르면 몰라도, 그의 건축에는 사람을 위한, 아이들을 위한, 세상을 위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터뷰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그것 때문만도 아니었다. 그는 자기만의 건축사무소를 차리고 20여 년째 운영해오고 있으면서, 대학에서 겸임교수로서 건축학도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두 아이를 키운 어머니였고, 한때는 암 투병을 하면서도 일을 손에서 놓지 않은 열정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 모든 건 내게 참으로 이례적인 일로 느껴졌다. 여전히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어느 시대에는 여성이 수십 년간 아이를 키우면서도 자기만의 경력과 성취를 이어온다는 게 더욱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째서인지 그 마음을 꼭 듣고 싶다고,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살아가면서 세상의 어떤 마음은 반드시 들어야만 한다. 나는 그 마음이란 마냥 ‘순탄한 마음’ 보다는 많은 장애물과 어려움을 어떻게든 이겨낸 일종의 ‘치열한 마음’이라고 느낀다.
“일이든 육아든, 저는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전부 다 그저 내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다 잘할 방법’을 찾았죠. 그래서 다 하면서 살았어요.”
건축을 짝사랑하는 마음
“저에게 건축은 짝사랑 같아요.”
전이서 건축가에게 건축이란 무엇인지 물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했던 말이다. 나는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해나가는 어떠한 사람에게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이미 ‘자기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전이서 건축가에게 건축이란, 아직도 더 답을 찾아야 하는 그 무언가처럼 느껴졌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건축물에 대해 무언가를 ‘느꼈던’ 순간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당시에는 서울에 그다지 근사한 건축물들이 많지 않은 시대였는데, 서울 시내의 몇 개 건축물을 보고, 순간 마음이 열리듯 무척 큰 감동을 받았어요. 그리고 어쩐지 저 몇 개의 건축물들은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닐까, 생각했죠. 당시에는 인터넷도 없었고 사실 바로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시대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정말 한 건축가의 건물들이 맞았어요.”
돌이켜 보면, 나는 어릴 적에 특정 건물을 보고 그렇게까지 감동을 받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물론, 멋지다 싶은 건축물을 보긴 했지만, 미적으로 압도되거나 큰 감동을 느낀 적은 크게 기억나지 않았다. 그보다 내가 크게 감동한 건 주로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니까 글을 쓰는 사람은 글에, 음악을 만드는 사람은 음악에, 건축을 하는 사람은 건축에 감동받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데 나는 건축에 감동받은 한 소녀를 떠올리는 게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때부터 10대 내내 막연히 건축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사실, 부모님은 제 마음을 전혀 모르셨기에, 덜컥 건축학과에 가겠다고 하셨을 때 엄청 반대를 하셨죠. 건축 같이 험한 일은 여자가 하는 게 아니다, 부터 해서 여자는 여대를 나와 부잣집에 시집을 가는 게 최고다, 같은 생각을 갖고 계셨죠. 결국에는 경제학과를 가긴 했지만, 저는 몰래 대학시절 내내 건축 공부를 했어요.”
부모님 때문에 꿈을 꺾는 게 아니라, 다른 학과를 가서도 몰래 건축 공부를 할 정도의 열정이라는 게 영화나 소설에서의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마음의 힘이 정말이지 궁금했다. 그렇게까지 건축을 하고 싶은 마음, 그것에 대단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조금’ 집요하게 물었다. 그러나 전이서 건축가는 웃으면서 다시 중학생 때 이야기로 되돌아가곤 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사실, 청춘 시절 우리를 사로잡는 마음에는 거창한 이유가 필요 없다. 단 한 순간이면 된다. 도시를 돌아다니다가, 나를 사로잡는 어느 건축물 앞에서의 황홀함, 그와 같은 한 순간의 힘이 우리 삶을 이끌어 간다.
“저는 아직도 건축을 짝사랑하는 것 같아요. 뭐랄까, 저 멀리서 손짓하는데 계속 저에게 답을 안 주는 것 같달까요. 남자는 한 번도 짝사랑해본 적 없는데, 건축은 아직도 짝사랑 중이에요.”
현실을 이겨내는 마음
“한때는 마치 하느님이 건축은 내가 가지 말아야 할 길이라고 계속 사인을 주는데도 스스로 고집부리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어릴 적 본 건축물을 좇아 건축가의 길을 택하는 삶이란, 참으로 낭만적이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전이서 건축가가 겪어온 삶은 현실 그 자체이기도 했다. 그는 대학 시절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전공과 무관하게 건축 공부를 이어갔다. 그렇게 졸업을 할 때 택한 곳도 경제학과 관련된 회사가 아닌, 건축설계사무소였다.
“처음 들어간 건축설계사무소에서 8년 정도를 일했어요. 그 뒤에도 계속 일을 했는데, 일을 하면서도 승진 등에서 불이익을 당할 때가 많았어요. 학부를 건축학과를 안나오다 보니, 성골도 진골도 못되는 육두품 같았달까요. 이후 건축학과 대학원을 다니면서 아이도 낳고, 13년 정도 실무에서 일을 했죠.”
당시에는 아이 문제를 회사에 이야기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 시대 일하는 여자들은 ‘미친년 널뛰듯 살았다’고들 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커나가면서는 주변에 일하는 여성 동료들도 거의 남지 않았다. 그는 13년 정도의 실무를 끝내고, 건축가로서는 다소 늦게 자기만의 사무소인 ‘전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를 차렸다.
“여자 후배들이 저에게 종종 여성 선배 건축가의 롤 모델이다, 같은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사실 제가 그렇게 잘한 건 없어요. 그냥 살아남은 거죠. 생존하기가 되게 어렵고, 생존한 것만으로도 누군가는 롤 모델로 여길 수도 있는 그런 나이가 되었구나, 싶어요.”
그는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면서도 계속 ‘하느님이 일을 그만두라는 사인’을 주는 것처럼 느꼈다고 했다. 일을 따내는 것도 쉽지 않고, 학부를 전공하지 않았다는 점이 걸림돌이 되어 건축계에서 입지를 쌓아가기가 어려운 순간들이 계속 있었다. 어떤 탈락이나 거절의 순간들을 거치면서, ‘내가 좋아한다고 계속하는 게 맞는 건가?’와 같은 생각을 계속했다.
“내가 좋아한다고 계속하는 게 맞는 건가? 일을 해오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죽을 만큼 열심히 하는데도 계속 답이 오지 않는 느낌이었달까요. 그런데 그렇게 버텨온 세월도 어느덧 30년이 넘었네요.”
그러다 5년 전, 전이서 건축가에게 암이 발견되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겨우 2주 뒤의 일이었다고 한다. 그는 드디어 일을 완전히 그만두어야 할 때인가 고민했다. 하느님이 드디어 결정적인 사인을 준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암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일을 그만두고 싶진 않았어요. 그때 일을 그만두면 그냥 은퇴가 되어버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기엔 너무 이른 나이인데, 나는 아직 답을 못 찾았고, 답을 못 들었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그때 즈음에는 비로소 공공건축 분야에서 좀 입지를 쌓아갈 때였고, 의뢰도 들어오고, 결과도 나오던 때였거든요. 그래서 암은 암이고, 일은 일대로 하는 데까지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암을 완전히 치료하는 데는 2년 정도가 걸렸다. 몸이 그 이전처럼 회복된 건 4년여가 지나서였다. 그동안 그는 계속 일을 했다. 하느님의 사인을 의심하면서, 그 무언가에 ‘도달’하고자 했다. 자기가 삶과 마음, 온 몸을 들여놓은 이 건축이라는 분야에 그 어떤 ‘답’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다음 해, 그는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2023’ 건축부문에서 최고상(Gold Trophy)을 수상했다.
건축을 이어가는 마음
무슨 일이든 그 일을 하기 전과 일을 하고 나서 알게 되는 풍경은 다르다. 흔히 사람들은 이를 ‘현실과 이상의 괴리’라고 부르곤 한다. 그런데 때로 이런 이야기는 ‘꿈을 꿀 필요가 없다’라든지 ‘꿈을 포기해도 좋다’라는 체념으로 이어질 때도 적지 않다. 그러나 누군가는 현실과 이상이 다르기 때문에, 집요하게 그 틈을 좁혀가려고 애쓰기도 하고, 현실을 마주하며 이상을 더 정교하게 수정해가기도 한다.
“건축가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요즘 저는 일종의 공공건축가로 일하고 있어요. 건축 자체에는 공공성이 있어요. 건축학과에서 학생들이 설계를 할 때 교수들이 항상 요구하는 게 바로 공공성이기도 하죠. 보통은 잘 모를 수 있는데, 학생들은 그것 때문에 되게 힘들어하기도 해요. 사회에는 무수한 결핍과 문제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 결핍을 어떻게 건축이 해결하거나 완화시킬 수 있을지를 항상 고민합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속으로 깜짝 놀랐다. 그 이야기만 듣고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대부분의 공간은 자연 상태의 공간이 아니라, 건축과 설계가 개입한 인공적인 공간이다. 우리가 사회에서 겪는 외로움, 갑갑함, 신체적인 어려움, 여러 감정과 결핍들은 우리가 어떤 공간에 들어서는지에 따라 때론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저는 사회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건축이 대신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요. 건축은 그런 결핍을 해결하기를 늘 요구받죠. 특히, 저는 학교 공간을 설계하면서 정말 많은 고민을 해요. 저는 대학생 이전의 아이들이 성장할 때는 국가가 절대적으로 해줘야할 게 있다고 믿어요. 아이들이 좋은 공간에서 좋은 마음으로 혜택을 받고 자란다면, 그 아이들이 그 혜택을 커서 사회에 환원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학교 공간, 교육 공간 같은 것들이 정말로 좋은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 세계 어디든 낙후된 마을에 그런 공간, 센터 하나만 잘 들어가도 아이들을 행복하게 커요.”
서울교육청은 2017년부터 ‘학교 공간 재구조화’ 사업의 하나로 ‘꿈을 담은 교실(꿈담교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전이서 건축가도 일종의 교실 리모델링 사업인 ‘꿈담교실’에 참여한다. 아이들은 집에 가기 싫다고 할 정도로 이런 공간을 좋아한다. ‘iF 디자인 어워드 2023’를 수상한 ‘누리봄 다함께 키움센터’도 마찬가지다. 방과 후 초등학생 등을 위한 이 공간에 방문한 심사위원들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책을 읽고 공간을 사랑하는 모습에 감명받았다고 한다.
“건축가가 되기 전에는 건축의 ‘공공성’ 같은 건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그러나 막상 건축을 하려고 하니, 이 개념을 결코 놓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죠. 어릴 적엔 막연히 아름다운 건축을 하고 싶었다면, 지금은 ‘좋은 건축’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 기준에서는 여전히 부족한 느낌이에요. 더 좋은 건축을 여생동안 하고 싶어요. 욕심이라면, 이 사회의 진보와 새로운 시대의 사람들을 위한 그런 건축을 하고 싶다고 계속 생각해요. 늘 ‘이것 너머’를 꿈꾸죠.”
전이서 건축가는 항상 이상을 놓지 않으면서도, 온갖 현실의 일들을 끌어안으며 그 이상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현실을 충분히 인정하고 감내하면서도 쉽사리 타협하지 않고 항상 ‘현실 너머’에 대한 이상을 놓지 않는, 그런 현실주의적이자 이상주의적인 결합이 놀랍게 느껴졌다. 그의 하느님이 하고 싶었던 말은 ‘그만두라는 사인’이 아니라, 남들처럼 쉽사리 포기하지 말고 집요하게 이상과 현실을 ‘좁혀가라는 사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상의 조각을 심는 마음
“매번의 프로젝트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들을 넣어요. 일종의 사회의 이상 같은 것이죠. 이 사회의 결핍이 이 건축의 어떤 부분에서는 해결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죠.”
건축가란 항상 결핍이 있는 세상의 빈틈을 메우는 이상주의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그 건축 공간 안에서는 누군가 완벽한 경험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게 건축가는 아이들과 사람들에게 ‘이상’이 무엇인지 알게 하고, 느끼게 하는 직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어느 건축에서 이상을 경험하고, 어떤 사람들은 이 사회를 이상에 더 가까운 ‘좋은 사회’로 만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전이서 건축가의 말을 정리해 보면, 건축가란 관련 일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가 일생에 한 번 만날 일이 있을까 말까 한 사람이다. 내 집이나 내 사업의 건물을 지을 일이 누구에게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그 때가 온다면, 우리는 건축가에게 우리의 ‘이상’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건축가는 우리가 드나드는 곳에 이상의 조각들을 뿌려놓는다. 항상 불완전하고 결핀된 우리 삶이 어느 한 순간에라도, 더 온전한 경험들로 채워지길 바라면서 말이다.
나는 매번 그런 이상에 다가가면서도 치열하게 현실을 살아내는, 한 현실적 이상주의자의 이야기를 바로 앞에서 들을 수 있어서 무척이나 감격스러웠다. 내 삶에도 포기하지 않는, 내 삶의 이상이자 이 사회에 대한 이상이 때론 겹치는 순간의 조각들이 이어졌으면 했다. 나도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저는 기적을 꿈꾸는지도 몰라요. 좋은 건축이란 기적과 같죠. 좋은 건축주, 좋은 설계, 좋은 시공사 등 모든 게 잘 맞아야만 기적같이 ‘좋은 건축물’이 완성되는 것이니까요. 이번에 ‘iF 디자인 어워드 2023’을 수상했을 때도 일종의 기적을 만난 느낌이었어요. 나의 작업이 온전히 심사위원들에게 전달되었구나, 그런 기쁨이 정말 컸죠. 건축을 하는 건 그런 기적들을 만나며 살아오는 일인 것 같아요. 여전한 소망이 있다면, 가슴에 ‘쿵’하는 감동이 이는 건축을 하고 싶다는 거예요.”
한 분야에서 30년간 일해온 한 경력자가 그런 소망을 지닐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기적같은 일인지 생각했다. 그는 마치 죽지 않는 소녀를 마음 속에 지닌 사람 같았다. 나도 모처럼 내 안의 소년이 죽지 않았기를, 또 죽지 않기를 소망했다. 전이서의 ‘이상의 조각을 심는 마음’이 내게도 이어가길 바랐다.
* '정지우의 밀착된 마음' 인터뷰어 - 정지우
작가 겸 변호사. 20대 때 <청춘인문학>을 쓴 것을 시작으로,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등 여러 권의 책을 써왔다. 최근에는 저작권 분야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여년 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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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슬콩
좋은 인터뷰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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