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진짜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했어. G는 반쯤 체념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쌍꺼풀이 짙게 베인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마치 스탠딩 코메디의 오프닝이나 긴 연극의 서두처럼, 준비된 사람 특유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는 베타랑 배우 같았고, 나는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관객이었다. 간간히 창가에 부딪치는 빗소리가 배경음으로 흘러나왔다.
사라진 사람, 떠난 사람, 곁에 있어 준 사람과 남아 있는 사람. 그의 목소리를 통해 되살아나는 기억이 오랫동안 만나지 않아 비어 있던 서로의 공간으로 스며들어 왔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 이야기가 너무 차가워서, 때로는 너무 뜨거워서. 적절한 온도를 찾기 위해 몇 번이고 레버를 돌리는 것 같았다. 작은 몸짓 하나에도, 필연적으로, 후회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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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약속시간에 맞춰 집을 나서면서도 그냥 가지 말까, 생각했다. 최근에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이라도 줄곧 방 안에만 있었고, 같이 사는 친구를 제외하면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없었다. 그가 교회에 가는 일요일은 하루 종일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보금자리로 들어가 봄을 기다리는 동물처럼, 이불 속에 몸을 움츠린 채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이 싫은 건 아니었다. 누구에게든 먼저 연락이 오면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그들의 질문에 선뜻 답장을 할 수가 없었다. 너무 많은 맥락이 떠올랐고, 그걸 느낄 때면 숨이 막혔다. 간단하게 정리하거나 한 마디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길게 썼다가, 짧게 썼다가, 이모티콘을 보내려다, 이내 모두 지워버리기를 반복했다. 머리가 아파오면 보이지 않은 곳으로 휴대전화를 치워버렸다.
어쩌면 나는 설명할 자신이 없는지도 몰랐다. 세상에는 아무런 악의 없이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그건 우리와 다른 존재가 아니라, 상황과 환경에 따라 너무 쉽게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변명하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나도, 당신도, 언제든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나는 그게 무섭다는 걸. 납득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지 못하는 이야기는 한동안 내 몸을 아프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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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에게 연락이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잘 지내냐는, 흔한 안부 연락이었다. 그와는 초등학교 시절 같은 야구부에서 운동을 했는데, 죽이 잘 맞았던 우리는 다른 중학교로 진학한 후에도 몇 번 연락을 해 캐치볼을 했다. 10년이 지났는데도 당시의 풍경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그늘 사이로 비쳐드는 햇살 너머, 동백나무의 비릿하고 건조한 향기가 났었다.
그는 왜 연락을 했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보통 옛 친구들에게 책이 나온 걸 축하한다던가, 글을 잘 보고 있다는 식으로 연락이 오고는 해서,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G는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시간 있으면 한 번 만나자고 했다. 내가 어디서 지내는지 묻고, 구체적인 시간을 정했다. 그러면 목요일 저녁 6시 괜찮나? 자연스럽게 우리는 약속을 잡았다.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다. 서로 만나지 않았던 시간에 비해 너무 갑작스럽게 약속을 잡는 것 같았다. G를 만나는 데에 어떤 거부감이 불편함이 있던 건 아니었지만, 그를 만났을 때 제대로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하면 어쩌나 겁이 났다. 그냥 바쁜 일이 생겼다고 할까. 코로나 때문에 밖에서 보기 불편하다고 할까. 초조하게 혼자 생각하는 동안 시간은 금세 흘렀고, 결국 아무런 변명도 떠올리지 못한 나는 옷을 챙겨 입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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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중? 6시를 5분 남기고 G에게 메시지가 왔다. 때마침 지하철이 멈춰 섰기에 나는 걸어가며 답장을 보냈다. 지하철역에서 올라가는 중. 비 오던데 우산 있나? 가져왔음, 너는? 나는 회사에서 들고 옴. 다행이네. 이제 올라오나? 검은 패딩에 베이지색 바지 찾아봐. 나는 남색 코트. 와, 니 진짜 옛날이랑 똑같이 생겼네?
높은 톤으로 G에게 말을 건네면서, 나는 스스로의 목소리에 놀라고 말았다. 방금까지 떠오르던 온갖 걱정들은 이미 자취를 감춘 후였다. 어쩌면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은 G의 모습이 반가웠는지도 몰랐다.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을 가렸음에도, 나는 짙은 쌍꺼풀을 가진 그의 눈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는 근처 치킨 집으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계속했다. G는 나에게 어떻게 지내고 있냐고 물었다. 나는 지난 1년 동안 있었던 일을 대략적으로만 말해주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했던 것. 여러 맞지 않는 부분들 때문에 고생하다 폐결핵 진단을 받고 일을 모두 정리한 것. 지금도 약을 먹고 있다는 것. 그러는 와중에도 계속 글을 쓰고, 최근에 책이 나왔다는 것. G는 내 이야기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와, 신기하네. 내 소식 전혀 몰랐어? 어떻게 알겠냐? 나는 먼저 연락 오길래 알고 있는 줄 알았지. 그런가, 진짜 갑자기 생각나서 연락한 거라. 상관없지 뭐, 너는 어떻게 지냈냐? 서로 연락을 끊고 산지 10년이었다. 지금은 직장에 다닌다는 그가 이전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했다. 그는 몇 개의 문장을 끊어 내뱉더니, 이내 우스운 이야기라도 하듯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때는 진짜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했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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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소리를 배경으로 G의 말을 듣는 동안, 나는 어느새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그건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오래 하지 않은 답장처럼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린 이야기였다. 왜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걸까. 함께 했던 시간보다 멀어진 시간이 더 긴 사이인데. 이미 서로에게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을텐데.
하지만 그와 대화하면서 나는 최근 몇 개월 중 가장 편안한 기분을 느꼈다. 모든 게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 우리가 자신의 불행을 자랑하거나 전시하는 게 아니라, 온전히 상대방을 이해하고 공감하는데 사용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우리의 대화는 온도가 맞았다. 서로에게 서로를 강요하지 않아도 금세 스며들게 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런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지만 말이야. 힘에 부치는지 의자에 몸을 기대며 G가 말했다.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가, 다른 사람들한테 함부로 못하게 되는 게 있어.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은 없다고. 알기 싫어도 억지로 알게 되는 것만 같아. 연락한 건 그것 때문이었어. 그냥, 너도 열심히 살았을 것 같아서. 고생했을 것 같아서. 궁금했어. 정말 잘 지내고 있는 건지 말이야.
G는 다음에는 내가 다 나은 상태로 보자고 했다. 건강한 게 최고라고, 감기만 걸려도 억울해 죽겠는데 결핵은 얼마나 더하겠냐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의 다 나았어. 아마 2월에는 완치 될 거야. 다행이네. 그러게. 다행이야, 오늘, 너를 만날 수 있어서. 나는 소리 없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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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G는 자신이 치킨 값을 계산했다. 젖은 거리로 나온 우리는 잠깐 같이 걷다, 이내 각자가 가야할 길로 헤어졌다. 다음에는 내가 먼저 연락할게. 그렇게 말하면 나는 진짜 기다리는 거 알제? 꼭 연락하겠습니다. 먼저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나도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사실 병원에서 처음 X-ray 사진을 보았을 때, 나는 마음에 염증이 난 줄 알았다. 마음이 짓이겨지다 못해, 썩어 문드러져 하얀 피가 세어 나오는 거라고. 그제 서야 자신이 아프다는 걸 받아드릴 수 있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완전히 놓아버린 게 있음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런데도, 죽고 싶다는 얘기 같은 거, 아무한테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런 말은 민폐가 될 것 같아서, 쓸데없는 투정이나 바보 같은 소리가 될 것 같아서, 그런데도, 그런 말 밖에 할 수가 없어서. 기어이 누군가를 만날 생각 자체를 머릿속에서 치워버리고 있었다. 습관처럼 부정하고 혼자 나아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건 결코 ‘아프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전으로 돌아가는 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의, 아픈 동안의 생각과 감각을 모두 기억한 채로 살아가고 싶었다. 이 아픔에도 의미가 있다면, 분명 자신을 위한 것만은 아닐 거라고. 너와, 내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쏟아지는 비처럼 같은 마음으로 스며드는 무언가를 찾아낼 거라고. 반드시 찾아낼 거라고. 가빠지는 호흡으로 몇 번이나 자신에게 외치며, 나는 물빛에 반짝이는 거리를 소리 없이 걸었다.
'아픔에 이름이 생겼다'
결핵 환자로 지냈던 경험을 진솔하게 전달하는 에세이입니다. 단순한 치료 과정보다는 ‘환자’라는 정체성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자신의 아픔을 말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허태준
직업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장실습생을 거쳐, 산업기능요원으로 지역 중소기업에서 근무했다. 당시의 경험으로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를 썼다. 회사를 그만둔 후 모든 삶은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우리 사회의 이름 없는 시절에 대해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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