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여느 때처럼 일어나 양치를 하는데 뱉어낸 물에서 다량의 피가 섞여 나왔다. 너무 놀라 몇 번의 헛구역질을 하는 동안 세면대 가득 피가 고였다. 뭐야, 뭔 일이야. 손이 떨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자는 동안 잇몸이나 혀에 상처라도 난건가 싶어 양칫물을 헹궈낸 후 손가락으로 입 안을 이리저리 문질러 보았다. 하지만 딱히 찢어진 부분도, 통증이 느껴지는 부분도 없었다.
나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그걸 알 수 없어 두려우면서도, 나는 곧 오늘까지 납품하기로 되어 있는 작업에 생각이 미쳤다. 병원을 다녀오면 늦을 게 분명했다.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우선 오늘 작업을 마무리하고, 여유가 생길 때 병원에 가면 되겠지 싶었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몰랐지만 막연한 걱정보다는 당장 눈앞에 떨어진 문제가 더 거대해보였다. 그렇게 세면대에서 씻겨 내려가는 피처럼, 두려움도 일상에 휩쓸려 이내 잊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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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침대에 걸터앉아 있으니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벌써 몇 개월이나 지난 일이었는데, 정말 불현 듯 떠올랐다. 아마 의사에게 들었던 폐결핵의 주요 증상 중에 ‘각혈’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었다. 나를 불안에 떨게 했던 ‘정체불명의 사건’은 그 단어를 통해 금방 나의 아픔과 연결됐다. 아마 그 즈음부터 내 몸에는 결핵균이 퍼져 있었을 것이다. 수면부족과 과로로 인해 몸의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최근 들어서야 기침이나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본가 근처 종합병원에서 받은 진료는 이전 병원과 거의 비슷했다. X-ray와 CT 사진을 받아왔기 때문에 추가로 검사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치료 과정에 대해서는 보다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의사는 내가 2주 동안 1인실 음압병동에 입원하게 될 것이고, 약물 치료와 호흡기 치료를 병행할 예정이라고 했다. 의무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나는 약 먹고 누워 있는 것 이외에 ‘치료’를 상상할 수 없었다.
진료가 끝난 후 곧바로 간호사의 안내를 받았다. 병실은 건물 가장 안쪽에 있었는데, 입구가 참 특이했다. 복도 끝에 자동문이 있고, 그 안에 다시 T자 형태의 작은 복도가 있었다. 두 개의 병실이 마주보는 구조였다. 병실 문 중 하나가 열려 있으면, 반대쪽 병실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했다. 격리가 필요한 환자들이 서로 접촉해 상태가 더 나빠지는 걸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니 혹시라도 나올 일이 있으면 꼭 문이 닫혔는지 확인하라고 했다. 안 그러면 반대쪽이 있는 환자가 나올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런 일이 종종 있는 모양이었다.
병실에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맥박을 재고, 손등에 링거 바늘을 꼽았다. 체중을 쟀을 때는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줄어있어서 놀랐다. 내가 이렇게 말랐던가? 그제야 지내던 방에는 거울도 체중계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세면대에서 세수를 할 때나 잠시 자신의 얼굴을 마주했을 뿐이었다. 처음으로 주의 깊게 들여다본 자신이 너무 낯설었다.
점심 먹기 전까지 좀 쉬시고, 이건 한번 읽어보시면 되세요. 주의사항을 알려주던 간호사는 작은 소책자를 하나 건네준 후 병실을 나갔다. 철컥, 하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모든 게 현실감각 없이 모호하게만 느껴졌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어쨌든 지금은 환자인 자신에게 적응해야지 싶었다. 이 특이한 구조의 병실에서 어중간한 마음으로 문을 반쯤 열어둔다면, 반대편에 있는 나는 영영 밖으로 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환자인 나와 건강한 나는 서로 마주칠 수 없었다. 적어도 여기서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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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병실에서 별달리 할 일도 없었기에, 나는 간호사가 준 소책자를 뒤적여 보았다.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책에는 <결핵은 무슨 병인가요? 환자와 보호자가 궁금해하는 61가지>라는 뻔해 보이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런 제목은 나에게 어떤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다. 어딘가에서 똑같은 책자를 건네받았더라도 펼쳐볼 생각조자 하지 않고 금방 책장 구석에 처박아두었을 것이다.
그건 ‘결핵’이라는 병명도 마찬가지였다. 그 이름은 기껏해야 크리스마스 씰이나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병약한 인물을 볼 때나 떠올리는 무언가였다. 하나의 정립된 개념이 아니라, 그때그때 다르게 느껴지는 기분이나 분위기 같은 것 말이다. 하얀 얼굴로 피를 토하는 등장인물을 보고 있으면 안타깝다가도, ‘요즘 결핵은 그냥 감기 수준’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금방 그러려니 했다. 그 이름은 내 삶의 무엇과도 연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결핵은, 나의 아픔을 가리키는 이름 중 하나였다. 그 작은 연결만으로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폐에 결핵균이 침입하여 생기는 만성 전염병. 처음에는 거의 증상이 없다가 병이 진행됨에 따라 기침, 가래가 나오며 폐활량이 줄어들어 호흡 곤란이 나타난다’는 폐결핵의 설명을 나는 몸으로 읽어냈다. ‘제일차항결핵약’이 매일 아침 먹는 빨간색 알약과 노란색 알약이라는 걸 알았고, 약 복용을 중단했을 때 발생하는 ‘내성결핵’이란 단어를 보며 반드시 약을 잘 챙겨 먹으라던 의사의 염려를 떠올릴 수 있었다. 마인드맵을 그리듯, 이름은 계속해서 또 다른 이름과 이어졌다.
자신의 아픔이 명확하지 않을 때, 나는 내 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해 두려웠다. 그러면서도 진지하게 마주보려 하지 않았다. 되려 별일 아닐 거라며, 일상으로 눈을 돌려 당장의 상황을 넘겨버렸다. 그 애매한 태도 덕분에 환자인 나는 밖으로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를 둘러싼 정체불명의 두려움은, 그 자체로 불명(不名)의 아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도 호명되지 못한 채, 닫힌 방에 홀로 남아있는 무수한 아픔들 말이다. 그리고 아픔을 세계와 연결하는 건 결국 반대편에 선 또 다른 자신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으로도 가지 못하고 어중간히 일상으로의 문을 열어둔 내가 자신의 아픔을 내버려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럴 수는 없었다. 우리에겐 이름이 필요했다. 모든 아픔엔 이름이 필요했다. 그러니 두렵고 낯설더라도 스스로를 ‘환자’로, 때로는 ‘약자’로 정의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문을 닫고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겨우 그 작은 용기를 냈다. 진지하게 마주하는 것만으로 많은 게 명확해질 것이다. 마냥 괜찮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두려움은 사라질 것이다. 병실에서 혼자 긴 하루를 보냈던 그날, 나의 아픔에도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아픔에 이름이 생겼다'
결핵 환자로 지냈던 경험을 진솔하게 전달하는 에세이입니다. 단순한 치료 과정보다는 ‘환자’라는 정체성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자신의 아픔을 말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허태준
직업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장실습생을 거쳐, 산업기능요원으로 지역 중소기업에서 근무했다. 당시의 경험으로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를 썼다. 회사를 그만둔 후 모든 삶은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우리 사회의 이름 없는 시절에 대해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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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ri
앞으로의 글들이 기다려집니다. 이 글은 아픈 사람뿐 아니라 그 아픔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은 그 옆의 가족도 기다리게 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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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니
글이 편히 읽혀지고 깊이 음미하게 됩니다~. 경험의 서사는 어느 상황에 대입해도 들어맞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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