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으로 이루어진 것들_그림책을 보다가_우선영

2022.11.25 | 조회 869 |
0
|

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나는 요즘 이라는 단어에 꽂혀 있다. 정확히는 텍스트가 아닌 내가 보내고 있는 시간들이 이라는 단어로 형상화되어 계속 따라오는 듯하다. 어쩌면 이 글을 쓰기 위해 생각해 둔 그림책의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그림책을 고르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나의 인생 그림책 두 권은 그렇게 과 연결되어 있다.

첫 번째 책은 문장부호라는 그림책이다. 이 책은 출간되기 전부터 SNS를 통해 작업 과정을 엿볼 수 있었다. 우연한 경로로 알게 된 작가의 SNS에는 그녀의 일상이 꾸준히 올라왔다. 점묘법으로 그린 세밀화만큼이나 촘촘한 그녀의 삶을 지켜볼 수 있었다. 작품은 그것을 만들어 낸 예술가의 삶이 반영되는 듯하다. 작품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알아서인지 그림책이 완성되었을 때 내 일처럼 기뻤던 기억이 난다.

제목만 보면 왠지 지식 그림책 같고, 그림을 보면 생태 그림책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여러 번 볼수록 철학이 가득 담겨 있다. 그림책은 아주 작은 씨앗이 톡 땅으로 떨어지면서 시작한다. 그 씨앗은 마침표로 보여 지고, 새싹은 쉼표가 되고, 느낌표로 자라서 물음표라는 꽃을 피운다. 그 사이 잎사귀에는 작은 알이 마침표가 되고, 꼬물꼬물 애벌레는 쉼표가 되고, 느낌표로 자란 번데기는 나비가 되어 아름다운 물음표를 보여준다. 어린 아이들에게는 그림 속 숨겨진 문장 부호를 찾는 일이 그저 즐겁고, 어른들에게는 삶의 질문처럼 느껴진다. 나는 지금 어떤 문장부호를 찍고 있을지, 내 삶에 필요한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문장 부호가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점묘법으로 그려진 그림 덕분이라 생각한다. 점이라는 하나의 작은 시작이 모이고 모여서 이루어진 그림들이 꼭 우리의 삶을 닮아 있는 듯하다. 가끔은 그 반복이 지루할 것이고, 가끔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이 생기기도 하지만, 포기하지만 않으면 그 형태가 드러나는 그림처럼 내 삶에서 드러날 무언가를 기대하게 된다. 희망을 품고 나아가는 수많은 날들이 하나씩 점을 찍는 과정과 참 닮았다.

첫 번째 책이 삶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라면, 두 번째로 을 떠오르게 하는 책은 쨍아라는 시 그림책이다. 시와 그림책의 만남이라니. “책은 얼어붙은 감수성을 깨는 도끼가 돼야 한다.”는 카프카의 유명한 말이 이 그림책을 위해 쓰인 것 같았다. 그림으로 시의 감동이 더 구체화되고 확장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뜰 앞에서 쨍아가 죽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그림책은 사라져가는 쨍아의 죽음을 수많은 점으로 표현하고 있다. 색색의 점들이 모여 있다가 흩뿌려지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아름답고도 슬픈 음악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몽환적인 그림은 긴 여운으로 남아 죽음의 공포보다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떠오르게 한다. 어쩌면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스며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를 맡으면 저절로 떠오르는 할머니의 기억처럼 말이다.

삶과 죽음이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처럼 이라는 공통분모로 한 권의 그림책은 삶을, 또 다른 그림책은 죽음을 보여주고 있다. 두 권의 그림책을 아이들과 즐긴다면 복잡하지 않은 선으로 된 그림을 하나 출력해서 점으로 채워보는 활동을 해보는 것이다. 아이가 어리다면 풀 뚜껑처럼 조금 큰 물건을 활용해서 점을 찍는 것도 좋다. 그렇게 그림을 채워가다 보면 생각보다 애씀이 필요함을 알게 되고, 다 완성하고 나면 생각보다 괜찮은 결과물에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

살아가는 일도, 사라지는 일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루하루 애쓰는 날들 만으로도 모든 날들이 괜찮을 수 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채워진 날들이 쌓여 뿌듯한 순간을 만나게 할 것이고,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에 스며들어 남겨질 것이다.

 

- 글에 등장한 그림책-

< 문장 부호 / 난주 지음, 고래뱃속 출판사 >

< 쨍아 / 천정철 시, 이광익 그림, 창비 출판사 >

*

'세상의 모든 문화'는 별도의 정해진 구독료 없이 자율 구독료로 운영됩니다. 혹시 오늘 받은 뉴스레터가 유익했다면, 아래 '댓글 보러가기'를 통해 본문 링크에 접속하여 '커피 보내기' 기능으로 구독료를 지불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보내주신 구독료는 뉴스레터를 보다 풍요롭게 만들고 운영하는 데 활용하도록 하겠습니다.

 

 

*
'세상의 모든 문화'는 각종 협업, 프로모션, 출간 제의 등 어떠한 형태로의 제안에 열려 있습니다. 관련된 문의는 jiwoowriters@gmail.com (공식메일) 또는 작가별 개인 연락망으로 주시면 됩니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세상의 모든 문화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4 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에서 나만의 뉴스레터 시작하기

자주 묻는 질문 / 문의하기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 admin@team.maily.so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