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닮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롤모델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으면 참 난처하다. 이미 대단한 성공을 한 사람들은 그저 나와는 너무 멀게 느껴졌고, 다른 누군가를 닮으려는 것은 내 삶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림책으로 만난 주인공들에게는 남다른 애정이 솟아 올랐다. 그렇게 살고 싶다거나 그렇게 되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드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겨울이 다가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책들이 있다. 사진으로 찍어서 자주 들여다볼 만큼 내 안에 깊숙이 자리 잡은 주인공들을 소개하려 한다.
겨울이 다가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주인공은 <헨리에타의 첫 겨울>이라는 책에 등장하는 작은 들쥐이다. 겨울잠을 자는 ‘헨리에타’는 부모님을 잃고 혼자 맞이하는 첫 겨울을 준비하느라 부지런한 날들을 보낸다. 겨울 먹거리를 보관하기 위해 곳간도 만들고, 들판에 나가 열심히 곡식을 모아온다. 하지만, 처음으로 맞이하는 겨울 준비가 생각만큼 수월하지 않다. 애써서 모아둔 곡식이 비바람에 쓸려가 버리거나, 온갖 벌레들이 모두 먹어버리기도 한다.
여러 번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 상황에서 낙심할 법도 한데, ‘헨리에타’는 투덜거리는 법이 없다. 그저 문제를 인식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 다시 길을 나서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잃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나갈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서는 모습은 참으로 당당하다. 작은 들쥐의 당당한 뒷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고 귀여운지, 내 마음마저 들썩이는 듯하다. 어떤 상황이든 자신의 삶에 희망을 품고 자신 있게 나아가는 그 모습을 꼭 닮고 싶었다.
두 번째 떠오르는 주인공은 <빨간 열매>라는 책에 등장하는 아기 곰이다. 하얀 배경에 검은 먹으로 그려진 숲은 눈 덮인 겨울 산을 보여주고 있다. 겨울 잠을 자던 아기 곰이 배가 고파 일찍 깨어난 것일까. 하얀 눈길을 혼자 걸어와 나무 아래 기대 앉는다. 그때, 배고픈 아기 곰 머리 위로 톡 떨어진 빨간 열매. 맛을 보니 더 배가 고파진 아기 곰이 나무를 타고 올라간다. 오로지 빨간 열매를 먹고 싶다는 마음으로 오른 길이었지만 열매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림책을 읽다 보면 하얀 여백과 검은 먹 사이에 등장하는 빨간 열매가 삶의 정확한 목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간 아기 곰은 과연 무엇을 발견했을까? 사실 그림책의 묘미는 열매를 찾아 나무를 오르는 과정에 있다. 빨간 열매를 찾아 나선 길에서 발견하는 것들을 대하는 아기 곰의 태도를 닮고 싶었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목표라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그것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 또한 내 삶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나무를 오르는 중에 발견한 것들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네는 아기 곰처럼, 삶 속에서 자주 발견하고 감탄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나답게 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런 순간에 내가 닮고 싶은 것들을 떠올리면 삶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 한결 수월하다. 나다운 것이 무엇인지는 어렵지만, 닮고 싶은 방향으로 가다 보면 원하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묵묵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것, 희망을 잃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든 당당하게 나아가는 것, 그렇게 나아가는 과정 속에 발견하는 시선과 다정한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림책 속 주인공인 ‘헨리에타’와 ‘아기 곰’이 나에게 보여 준 삶의 방향들이다. 닮고 싶은 마음으로 나의 삶을 차곡차곡 채워가고 싶다. 그렇게 채워간 날들을 돌아봤을 때, 그림책 속 한 장면처럼 아름답게 기억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 글 속에 등장한 그림책 -
<헨리에타의 첫 겨울 / 롭 루이스 글.그림, 정해왕 옮김, 비룡소 출판사>
<빨간 열매 / 이지은 그림책, 사계절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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