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로카드의 여덟 번째 카드는 8번이라는 숫자와 함께 힘(STRENGTH)이라고 적혀 있다. 카드에는 맹수 사자가 등장하고, 한 여성이 사자의 몸을 길들이는 듯 강하게 꽉 움켜주고 있다. 이 그림은 그리스 신화에서 열두 과업을 수행하는 헤라 클레스가 네메아의 사자를 제압하는 장면을 상징한다. 그리스 신화 속 가장 강력한 영웅이자 초인적인 힘의 소유자인 ‘헤라클래스’를 가녀린 소녀처럼 그려 놓은 것이 의아하다. 과연 무엇을 길들이고 있는 걸까.
8번 타로카드와 함께 장예모 감독, 공리 주연의 영화 <5일의 마중> 이 떠오른다. 끝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아내 평완위의 이야기다. 문화혁명으로 인해 대학교수였던 남편 ‘루옌스’는 반동군자가 되면서 공안에게 잡혀간 후 가족은 처절한 삶을 살게 된다. 평안위는 ‘5일이 되면 집으로 돌아온다’는 편지 한 구절만 믿고 매달 5일이 되면 남편을 마중하러 기차역으로 나가지만 남편을 만날 수 없다. 그동안 발레리나가 되고자 했던 딸 ‘단단’은 반동분자의 자식이 되어 버리면서 주인공 역을 따낼 수 없게 된다. 할 수 없이 발레를 그만두고 공장 노동자가 되어야만 했다. 시간이 흘러 20년 감옥살이를 하고 남편 루옌스가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내는 오랜 병이 깊어진 후라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다음 달 5일이 되면 또다시 ‘평’은 남편 이름 ‘루옌스’라는 푯말을 들고 기차역에서 기다린다. 루옌스는 자신을 마중 나가는 평안위 곁을 지킨다. 머리카락이 다 세어 늙은 노인이 될 때까지 이 둘은 ‘5일의 마중’을 쉬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게 만든 중국의 문화혁명 그리고 격동의 시기를 살았던 중국인들의 삶의 모습이 잘 그려졌다. 반동군자가 되어버린 아버지를 원망했던 딸 ‘단단’도 시간이 흐르면서 인정하게 되고, 끝까지 엄마와 아빠의 곁에 머문다. 한 사람에 대한 무한한 기다림, 끝까지 기다려주는 한 사람 때문에 사랑을 놓지 않게 되는 이야기다. 장예모 감독은 한 사람을 평생 기다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 서로만을 기다리면서 사랑을 잃지 않는 모습은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렇지만 사랑의 기다림은 애틋하고, 인내의 시간은 고통스럽지만 숭고하다.
타로카드 8번, 힘 카드는 인내와 내공,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무언가를 뜻한다. 때로는 답답하고 불안하고 두려울 수밖에 없다. 나보다 훨씬 강해보이는 사자를 다스리는 힘은 단번에 키워지는 것이 아니다. 내면에서 단련된 힘으로 사자를 제압한다. 맨 손으로 사자를 부드럽게 다루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불편한 상황이나 힘든 여정을 극복해나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5일의 마중’이 보여준 사랑은 바로 타로카드 8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을까.
살면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과 시련을 마주할 때가 있다. ‘5일의 마중’에 나온 평안위도 그랬고, 나 역시 그러했다. 아이를 낳고 경제적인 생활고를 겪으면서 물 불 안 가리고 일을 했다. 아이는 세 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닥치는 대로 일했다. 벌이가 적은 남편 탓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육아를 했다. 주말이나 야간에는 도우미에게 아이를 맡기고 입시 학원 강의를 하러 다녔다. 머리를 쥐어 짜며 돈을 더 벌 수 있는 일을 찾아 헤매야 했다. 심지어 짧은 시간에 돈을 벌 수 있다는 사탕발림에 속아 다단계 회사의 사업설명회를 들으며 화장품 영업을 잠깐 하기도 했다. 30도 초반의 젊은 나이였지만 몸의 에너지가 고갈되어버렸는지 병이 나 버렸다. 학교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와서 채용신체검사를 하게 되었는데, 결핵 판정이 난 것이다. 공공 장소에서 사람을 대하는 일을 할 수 없는 병이었다. 내 인생은 정말 아무 것도 되는 게 없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끝도 없는 밑바닥으로 기어들어간 시절이다. 수렁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조금씩 숨통이 트이고, 아이를 바라보며 희망을 품었다. 어느 날 하나의 일이 물꼬가 트이면서 여러 가지 방면으로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로또나 대박같은 행운은 아니었지만 아주 더디고 천천히 상황은 좋아졌다. 30대는 나를 단련하며 담금질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오히려 나는 과거의 내 모습에서 용기를 얻을 때가 많다. 내가 지닌 힘은 기다림과 인내로 형성된 것이다.
‘평안위’가 ‘루옌스’를 평생 기다리면서 지키고자 한 것은 사랑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한 사람을 기다리면서 자신을 담금질하고, 그 시간 자체를 견디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처음 타로카드를 알게 되었을 때 8번 힘 카드에 대한 느낌이 좋지 않았다. 내적인 성장이라는 키워드도 있지만, 이를 악 물고 애써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죽을만큼 견뎌야 하는 건가? 싶어서 거부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안다. ‘고진감래’는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뜻인데, 고생 끝 낙이 온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고생의 시작도 끝도 어디인지 알 수 없고, 낙(樂)이라는 즐거움이 어떤 종류인지 가늠할 수도 없다. 과거의 고생이 오늘까지 이어지더라도 어느 순간 그것이 고생으로 여겨지지 않을 수도 있다. 반면 모든 고생이 끝났지만 행복하지 않다는 이들도 있다. 고생스러웠던 그 시절을 회고하며 ‘그 때가 좋았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간혹 볼 수 있다.
8번 타로카드는 자기 안의 맹수를 길들이길 조언한다. 조련사는 바로 ‘나’이다. 나를 조련해나가면 닿을 수 있는 과연 세계는 어디인가. 고생 끝에 또다시 고생이 오더라도 살아가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강렬한 생의 에너지는 자연스레 생겨날 것이다.
글쓴이 : 김소라 작가
『타로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을까』 『여자의글쓰기』 『바람의끝에서마주보다』 『사이판한달살기』 『맛있는독서토론레시피』 등 다양한 책을 썼습니다.
수원에서 작은 책방 ‘랄랄라하우스’를 운영하며 타로카드로 마음공부하는 글을 씁니다.
<타로카드 럭키박스>는 타로카드가 주는 의외의 기쁨과 성찰의 순간으로 위로받으며 잠시 쉼을 얻도록 도와주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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