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만난 베트남 국적의 여성이 있다. 93년생, 한국이름 박서라(한국이름, 가명).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90년대생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베트남 호치민에서 300km넘게 떨어진 남쪽 끝 섬에서 태어났는데, 그 마을에 전기가 들어온 것은 그녀가 중학생 때였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서 중학교 입학하고 학교를 스스로 그만뒀어요. 4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새우 까는 일을 했어요. 새우를 까다 새우 수염에 손이 찔리고 상처 나고, 새우를 까면서 손을 구부린 채로 계속 일해야 하기 때문에 다음 날이면 손바닥을 펼 수 없을 정도였고, 젓가락질도 못했어요. 엄마에게 도움 드리고 싶어서 푼돈이나마 벌었던 것 같아요”
한국의 초등학생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아마 역사책에서나 나오는 옛 조상들의 삶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얼마나 다양한 삶의 형편과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지 잊을 때가 많다. 사실 서라씨는 초등학생 때는 공부하는 것을 좋아해서 국어와 수학도 곧잘 했다. 말을 잘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변호사가 되고 싶은 꿈도 있었다. 가난한 환경 때문에 중학교 1학년까지 학교를 다니고, 생업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지만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나의 현실을 탓하지 않았다. 학교를 그만 둘 때에도 누군가 시키거나 강요한 일은 아니었다.
태어난 환경과 부모님의 형편 등을 핑계로 주어진 삶을 회피하거나 감정적인 무기력에 빠져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한국의 20대, 30대가 서라씨의 삶을 어떻게 평가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가 아무리 공부를 잘 해도 학교를 못 보내주실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빨리 사회로 나가 엄마와 아빠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한국에 온 것도 같은 이유에요. 한국 남자와 결혼을 하면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에 열 아홉 살 때 한국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베트남 남자는 한 번도 만나지 않았어요.”
보통 베트남 여자들이 한국 남자 만나서 결혼을 하는 대상은 나이 많은 남자들이 많다. 나이 차이 많이 나고, 농촌에 사는 분들이거나 때로는 장애인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서라씨는 운 좋게 먼저 한국에 가서 이주 여성이 된 사촌 언니의 소개로 한국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베트남 호치민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한국어로 소통하기도 힘들었고, 열 여섯 차이가 났지만 사람이 좋아 보여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다. 사랑이나 연애도 사치였고,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인생이었다. 스무 살에 결혼을 하고 곧바로 딸을 낳았다.
결혼 이주 여성의 삶을 이토록 가까이에서 들어본 적이 없었다. TV나 언론에서 비춰진 것은 아주 작은 일부의 모습일 수 있다. 개개인의 삶은 하나도 같지 않다. 서라 씨는 배움과 성장에 대한 욕구가 컸다. 자신이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커서 한국에 와서 지독하게 일하면서 새로운 문화와 사회를 습득하려고 애썼다. 한국이 베트남에 비해 발전된 모습이 있고, 자신이 노력만 하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라는 점을 직접 겪어 보고 부모님과 언니, 형부까지 한국으로 데리고 왔다. 20대에 이미 친정 식구들까지 전부 책임지는 가장으로의 삶을 살았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삼성화재 보험회사 일인데, 시작한 지 일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금융 쪽으로 배울 수 있는 일이고, 사람들을 만나서 영업하는 것이 재밌다고 한다. 학력이나 국적 등과도 상관없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도 좋다고 말한다. 주말이면 핸드폰 가게에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핸드폰 개통하는 영업까지 하고 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가운데에서도 한국에 와서 사는 제2의 인생은 너무도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한국은 노력만 하면 뭐든지 다 되는 곳 같아요. 부지런히 일하고, 노력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기에 목표 갖고 열심히 살면 돼요. 한국에 와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좋았어요. 물론 나쁜 사람들도 간혹 있지만, 좋은 분들을 더 많이 만났어요. 운이 좋아요.”
지금까지 십 년 간 잘 살아왔으니 앞으로 10년 후에도 좋은 일만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동안 자신에게 투자한 돈이 없다는 생각에 여유 자금이 조금 생기면 일 년 정도만 일 안 하고 공부를 해서 중,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입학하고 싶다고 한다.
그녀에게 삶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정서적인 기반은 어린 시절 행복했던 농촌의 풍경 같은 모습이다. 전기가 없어서 등유로 불을 켜고, 물건을 사고 파는 곳을 가려면 30분 정도 배를 타고 나가야만 했지만 아련하고 평온했던 추억이 있다. 언젠가 다시 나이가 들어 베트남에 돌아가서 사는 꿈을 꾼다.
“내 인생은 스스로 개척해서 살아나간다고 생각해요. 지금 아홉 살 된 딸에게도 자신의 인생을 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딸의 장래를 위해서입니다.”
서라 씨를 보면서 떠오른 타로는 ‘지팡이 여사제’ 라는 이름의 마더피스 타로 카드다. 아프리카 부족장 같은 젊은 여성이 오른손으로 사자의 머리를 쓰다듬고, 왼손으로는 동물의 뼈를 들고 있다. 하늘 위에는 무지개가 떠 있다. 이 카드의 의미는 오랜 가뭄 끝에 비를 내리게 한 여사제라는 뜻이며, 당당하고 강인한 힘이 느껴진다. 자신 뿐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서 무엇이든 해내는 인물이다. 사자를 길들일 만큼의 힘이 있고, 내면의 직관을 따라 움직인다는 스토리를 갖고 있다. 앞으로 닥칠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어떤 삶이든 부딪혀보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신화를 이루기 위해 태어났다. 예술적인 재능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도 있고, 누군가를 편안하게 보듬어주는 정서적인 힘을 지녔을 수도 있다. 경쟁에서 이기고, 성취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사람들도 있고 구도자의 길을 걷듯이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가는 사람들도 있다. 지팡이 여사제가 지닌 마법의 힘을 서라씨가 잘 활용하여 한국에서의 삶을 거침없이 살아가면 좋겠다.
글쓴이 : 김소라 작가
책이 있는 명상 공간 ‘랄랄라하우스’를 운영하며 타로카드로 마음공부하는 글을 씁니다.
『오후의 시선』『타로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을까』 『여자의글쓰기』 『바람의끝에서마주보다』 『사이판한달살기』 『맛있는독서토론레시피』등 다양한 책을 썼습니다.
타로카드가 주는 의외의 기쁨과 성찰의 순간으로 위로받으며 잠시 쉼을 얻도록 도와주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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