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보다 사랑을 사랑하는 이유_사랑의 인문학_정지우

2022.02.07 | 조회 2.4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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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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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은 내 욕망의 특이함을 보여준다. (...)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내 욕망에 꼭 들어맞는 이미지를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우연과 놀라운 우연의 일치가 필요했던가!“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중)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앞에서, 때로 우리는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저 사람과 너무나 함께 있고 싶고, 저 사람이 여전히 너무나 좋고, 과거의 추억들이 터져 나온다. 이별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그래서 상대에게 헤어지지 말자고, 계속 사랑하자고, 함께 데이트하고, 같이 있고, 곁에서 삶을 다시 만들어가자고 애원한다.

그런데 그런 복잡한 심경 안에서, 하나 드는 생각은 나보다 상대를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나만이 당신을 제대로 알고, 당신을 특별하게 볼 줄안다. 나만큼 특별하게 당신을 사랑해줄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당신을 위해서’라도 당신은 나와 헤어지면 안된다는 확신 같은 것이 든다.

상당히 묘한 순간이다. 그 순간, 나는 나만이 당신에 대해 ‘특별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나아가 당신이 내 곁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나의 이 ‘특별한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나는 당신에 대한 특별한 시선, 즉 특별한 욕망을 지녔다. 지금껏 많은 사람들과 소개팅도 하고, 썸도 타고, 만나기도 해왔지만 당신만큼 나에게 ‘특별히’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었다.

그 말은 사실 당신의 특별함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내 욕망의 특별함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내 욕망의 특별함을 지키기 위해서 당신이 필요하다. 나의 이 욕망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 모두에게 특별하지는 않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큰둥하다. 때로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나의 사랑에 반대하기도 한다. 물론, 세상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많이 지닌 사람이 내 연인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때도 나는 남들이 모르는 나의 연인에 대한 ‘지식’이 있다. 가령, 그는 남들이 볼 때는 그저 성격 좋고 스펙 좋은 사람이지만, 사실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그에게는 남들이 모르는 상처나 이상한 습관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그것 때문에 그를 더 사랑한다. 남들이 모르거나 욕망하지 않는 어떤 특이하고 사적인 지점 때문에, 나는 그를 더 사랑한다. 그래서 그는 내 곁에 있어야 한다.

우리는 사랑이 나와 당신만이 맺는 관계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나와 내 욕망이 맺는 관계이기도 하다. 나는 내 욕망을 사랑한다. 그 사람이 내 곁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나의 이 특별한 욕망을 지키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특별한 욕망이 주는 삶의 활기, 인생에서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는 힘, 내 삶을 생기로 가득 채우는 이 욕망이 필요하다. 어느 순간, 당신은 이 욕망을 내게 존재하게 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당신은 내 곁에 있어야 하는데, 그래야만 내가 이 삶을 더 안정적이고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특별한 욕망이 곧 나의 특별함, 내 삶의 특별함을 증거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은 때론 삶 전체를 잃는 일이다. 이별 이후, 그 무엇에도 더 이상 의욕이 없고, 이 삶은 빛나지 않으며, 이 삶 속에는 내가 원하는 게 없다. 우리는 거식증 환자처럼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거부한다. 삶이 끝나버렸다는 감각은 더 이상 욕망할 게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이별 이후, 나의 가장 특별하고도 소중한 욕망을 잃어버린 것이다. 당신은 나를 위해 돌아와야 한다. 내가 다시금 당신을 욕망하며 나의 삶을 사랑할 수 있도록 내게 돌아와야 한다. 혹은 나에게는 다른 사랑이 필요하다. 다른 특별한 욕망으로 다시 내 삶을 살려내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 속에서, 다름 아닌 사랑 그 자체를 사랑한다.

 

* 매달 7일 '사랑의 인문학'

글쓴이 - 정지우

'청춘인문학',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너는 나의 시절이다' 등 여러 권의 책을 썼습니다. 뉴스레터, 글쓰기 프로젝트, 각종 토크, 모임 등을 만들면서 계속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쓰며 사는 삶을 살아가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현재는 삼성역 인근의 한 로펌에서 변호사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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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라는 글쓰기 책을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글쓰기에 관심 있는 분들께 작은 참고가 되길 바라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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