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7시간 이모티콘을 그리는 습관을 7월부터 지속하고 있다. 퇴근 후, 매일 그리는 것은 힘들겠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한 달 단위로 그린 시간을 정산하고 있다.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관찰하는 것은 나라는 사람을 더 잘 알게 해 준다. 7,8,9월의 양상을 분석해 보니 나는 월초에는 게으름을 부리는 경향이 있었다. 거의 일주일에 두 시간을 그린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월말이 다가오면 그래도 평균 7시간을 채워야지 마음먹고 약속도 거의 잡지 않고, 주말에 7~8시간을 몰아서 그림을 그렸다. 소위 마감이 얼마 안 남았을때 집중력이 높아지는 마감 효과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일에도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예전에, 퇴근 후 이모티콘 말고 다른 것들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100세 시대에, 회사를 다닐 수 있는 기간은 상대적으로 길지 않고,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당장 내가 월급을 못 받는다면, 생활비며, 공과금이며 대출금이며 감당할 수가 없다. 과거에, 내 유튜브 추천 목록에는 한동안 “직장인이 평생 일할 수 있는 전문직 자격증을 딴 영상, 무인카페 운영하기, 블로그로 OO 벌기” 등이 가득했다. 그런 불안감 속에서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예전에는 블로그, 유튜브, 부동산 임장도 맛보기 수준으로 해봤다. 만약에 이런 것들에 집중해서, 꾸준히 시간을 쏟아부었으면, 이모티콘을 출시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때 뿐이었다. 계속할 수 없었다.
그 일들을 계속하지 못했던 이유는 재미가 없어서였다. 개인적인 일로, 심신이 많이 지쳐 있었기 때문에 재미 없는 일들을 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이모티콘 그리기만을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자체로 재밌고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이모티콘을 그리는 시간은 그 자체로 행복을 안겨준다. 캐릭터가 그려진 물건들과 스티커를 좋아하는 내가 이모티콘을 그리며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다. 이를 테면, 선크림을 사면 사은품으로 주는 파우치가 더 마음에 들어서 사버린 적도 있다. 미술관에 가면 그 옆에 있는 기념품 샵에 가서 마음에 드는 엽서와 파우치를 쟁여온다. 일러스트 페어에 가면 스티커들을 잔뜩 사 온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런 것들을 아무 이유 없이 좋아했다.
사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힘든 상황도 있었고,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지치는 날도 있기 마련이다. 나는 슬퍼하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적으로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은 꼭 그리는 사람이 되자고 되새긴다. 무엇인가를 창작하는 것은 내게 정말 소중한 시간이며, 그 시간은 지친 내 삶에 행복과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 이 시간을 지켜내고, 지속하자고 마음먹는다.
물론 이모티콘을 그리다가 막힐 때도 있다. 열심히 여러 번 고쳐서 그렸는데 결과물이 영 마음에 들지 않을 때는,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 고생을...어차피 재능도 없고 많이 부족한 것 같은데 이제 그만해야 하나 깊은 수렁에 빠진다. 예를 들면, 이모티콘을 안 그리다가 다시 그리니까 가장 어려운 부분은 “움직이는 이모티콘”을 만드는 일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움직이는 이모티콘을 그려서 그런지 감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막막한 느낌이 들었지만 나는 온전히 잘 완성하고 싶다는 결심을 품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 과거에 읽었던 책의 한 부분이 떠올랐다. 캐롤라인 애덤스 밀러의 <끝까지 해내는 기술>에 언급된 목표 설정 이론과 관련된 내용이다. 책에는 ‘학습 목표’와 ‘수행 목표’ 두 가지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학습 목표는 해당 일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 모르는 상태에서 학습에 집중한 목표이다. 수행 목표는 멘토나 전문가를 통해서 검증된 측정 기준으로 결승선이 명확한 목표를 말한다.
책에서 나오는 사례의 주인공은 최대한 브레인스토밍한 후 강점과 시간에 맞는 방법들에 집중하고, 멘토와 함께 검증된 측정 기준을 찾았다. 나는 책에서 언급된 학습목표는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정성적인 목표로, 수행 목표는 노력한 결과를 비교적 정량적인 기준으로 측정할 수 있는 목표로 이해했다. 이모티콘 작업에 있어서 검증된 정량적 측정 기준을 만들기는 어렵지만, 비슷하게 적용해 볼 수 있었다. 일단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피드백하는 것이다. 나름의 작업시간이 쌓이니 이전에 출시한 이모티콘을 참고하여, 이보다 더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만들어보자는 나름의 기준을 세울 수 있게 됐다.
이모티콘을 제작하고, 또 상품화하여 누군가에게 닿기 위해서는, 내가 즐거워서 그린 그림을 타인에게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경험해보니, 즐거움이 동기가 되어야 이 일을 시작할 수 있고, 또 그 즐거움은 큰 원동력이 된다. 뿐만 아니라 꾸준히 정성을 쏟는 시간이 필요한데, 나는 꾸준히 노력하기 위해서 “한 달 정산 시스템”이라는 나름의 시스템을 만들었다. 또한, 과거에 이모티콘 제작 방법에 대해 아예 몰랐던 상태에서, 강의와 책 등 자료를 참고하여 일차적으로 만드는 방법을 배웠고, 나름의 수많은 고민과 수정을 통해서 노하우가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열심히 작업해서, 결과물을 스스로 피드백하고, 가족에게 보여줘서 반응을 확인하기도 한다. 최종적으로는 이모티콘 플랫폼에 제출해서 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지 결과를 받아들인다. 이 과정을 반복하며, 이 일을 지속하고 있다.
*코너명: 비전공자 직장인의 이모티콘 도전기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다가,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좋아했던 마음을 꺼냈습니다. 다시 그림을 조금씩 그리다가, 이모티콘 제작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비전공자 직장인이 3개의 카카오 이모티콘을 그리고 출시했다가, 다양한 경험들을 하고 다시 이모티콘 제작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 글쓴이: 선샤인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귀여운 것들을 보면 행복해하는 직장인입니다. 이제는 글을 함께 써보려고 합니다. ‘나를 더 잘 알고 싶은 마음’과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 때문에 글을 씁니다. 글이 글로 끝나지 않고 삶으로 이어질 때, 나만의 동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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