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도 시원한데, 비가 올 때는 좀 많이 습해요. 편집자님이 사무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조명에 반사된 가구나 자잘한 물건들에는 본연의 색과 무관하게 주황빛이 들었다. 그는 여기가 예전에는 바다라서 그렇다고 했다. 건물이 서 있는 자리가 매립으로 만들어진 땅이니까, 지하 1층인 이곳은 분명 바다였을 거라고. 빛이 채우고 있는 공간 가득 물이 들어차 있었을 거라고 했다.
그 말이 무척 인상 깊었던 건지 나는 일하는 내내 혼자 바다를 생각했다.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과 파도가 부딪치는 소리, 잔잔하게 일렁이는 빛과 닿을 수 없는 지평선에 대해. 그리고 내가 잠겨 들었던, 무겁고 깊은 어둠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대해 생각했다. 이 바다는 어디에 더 가까울까.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한 나는 졸음을 달아내 듯 길게 기지개를 폈다.
*
집에서 회사까지는 넉넉잡아 1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근처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덕천역에 내려 3호선으로 망미역까지 이동해서, 내린 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면 비로소 회사 근처에 도착했다. 이렇게 적으면 무척 번거로울 것만 같지만 의외로 출퇴근에 큰 스트레스는 없었다. 가만히 있는 게 심심할 때면 가방에서 정일근 시인의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를 꺼내 읽었다.
슬슬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다. 계속 모아둔 돈으로 지내는 생활을 이어갈 수는 없으니까. 간간이 들어오는 수익으로는 먹고 사는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없었다. 월세와 식비를 제외하고도 통신비, 전기세, 가스비, 수도세 등등,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있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소모되어야 하는 타인의 노동이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그 일을 출판사에서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았다. 책을 한 권 쓰기는 했지만, 그 전후를 관리하고 책임지는 건 전혀 다른 영역의 일이었다. 편집자도 디자이너도 아닌 내가 책을 만드는 일을 할 수 있을까? 물어보나 마나였다. 나는 글쓰기도 겨우 이어가고 있었다. 그 외의 일은 마음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적잖게 당황했다.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 담당 편집자님과 출판사 대표님과의 저녁 자리였다. 대표님은 책이 나온 후 변변하게 연락도 못했다며, 좋은 책을 써줘서 고맙다고 했다. 태준 씨 요새는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그 질문에 나는 머뭇거리다 그냥 쉬고 있다고 했다. 결핵이 다 나을 때까지는 쉴 계획이라고.
그는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뜻밖의 대답을 했다. 혹시 출판사에서 일 해볼 생각은 없어요? 그때 난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놀라기보다는 약간 굳은 표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출판사에? 월급이 아깝지 않을까요. 솔직하게 말했다. 관련 분야 종사자도 아니었고, 출판과 관련된 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다. 사실상 모든 일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직원이었다. 그런 직원이 반가울 리 없다는 건 4년 동안 직장을 다녔던 내가 가장 잘 알았다.
가장 잘 알았으면서, 왜 나는 다시 묻는 그에게 딱 잘라 거절하지 못했을까. 오히려 정말 괜찮다면 해보고 싶다고, 스스로도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대답을 했을까. 그건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보다는 아주 작은 가능성에 기반한 것이었다. 혹시라도, 나 같은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세상에 나오지 못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울음소리가, 어디선가 한 편의 글이 되고 있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그걸 쓰는 당신이 외롭지 않을까.
나는 외로웠다. 사실, 정말 많이 외로웠다. 혼자 쓰고 혼자 증명하는 게, 내가 살아온 삶이 틀리지 않았다고 소리치는 게, 너무 외롭고 공허해서 많이 울었다. 글 같은 거 쓰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고, 그랬으면 더 행복했을 거라고 자주 생각했다.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이 커질 때는 차라리 오래 잠이 들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깊은 어둠으로 가라앉았다.
그런데 왜 나는, 다시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었을까. 폐가 터질 것처럼 다시 숨을 내쉬었을까. 스스로도 확신을 가지지 못하면서 왜 그랬을까.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알게 된 건, 그게 모두 타인의 노동 덕분이었다는 사실이었다. 문장을 매만져주던 누군가의 진심, 목소리의 형태를 만들어주었던 누군가의 손길,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기 위해 기꺼이 더해주었던 누군가의 온기. 그저 존재하기 위해 소모되었던 타인의 노동이, 그 실감이, 어느새 내가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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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근을 하고 2주 동안, 매일 같이 사무실 계단을 내려가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바다로 가고 있다고. 하지만 이제 가라앉는 게 아니라, 분명한 의지를 가진 채 돌아가는 거라고. 몇 번이고 거친 숨을 내뱉으며, 때로는 부조리한 삶을 원망하며 지치기도 하겠지만, 더 깊은 어둠을 향해 헤엄쳐갈 거라고. 그리고 매년 전 세계의 바다를 가로지른다는 거대하고 신비로운 생명체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당신을 찾아낼 것이다. 이야기가 가라앉지 않도록, 그 울음소리가 무의미하지 않도록 나의 노동을 바치겠다. 그러니 당신도 계속 글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나도 쓸 테니까,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아주 긴 호흡으로 삶을 견딜 테니까, 우리는 분명 만날 것이다. 지평선 너머로 반짝이는, 차마 두 눈으로 담을 수 없는 거대한 삶과 함께.
'아픔에 이름이 생겼다'
결핵 환자로 지냈던 경험을 진솔하게 전달하는 에세이입니다. 단순한 치료 과정보다는 ‘환자’라는 정체성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자신의 아픔을 말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허태준
직업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장실습생을 거쳐, 산업기능요원으로 지역 중소기업에서 근무했다. 당시의 경험으로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를 썼다. 회사를 그만둔 후 모든 삶은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우리 사회의 이름 없는 시절에 대해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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