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마주하는 기차역, 처음 방문하는 음식점, 처음 다니는 거리, 이 모든 ‘처음’의 존재는 낯설다는 감각을 선물해 준다. 내향적이고 도전을 그리 즐기지 않았던 나로서는 꽤 오랜 세월 동안, 이 ‘낯섦’은 반갑지 않은, 그래서 에너지를 써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랬던 내가 이 낯섦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검색창에 ‘교토 여행’이란 네 글자를 입력하고 나서 블로그 글 몇 편, 유튜브 영상 몇 편만 봐도 이미 그곳에 다녀온 듯한 환각을 느끼게 된다. 교토의 대표적인 신사인 청수사로 가는 길, 그 길가에 위치한 잘 알려진 맛집과 카페 풍경은 안 가봐도 가본 듯한 익숙함을 전해온다. 새로운 걸 찾아 떠나는데 떠나기 전에 이미 익숙해지는 아이러니 속에서 한동안 여행을 떠나곤 했다.
이번 교토 여행에선 이러한 떨떠름한 익숙함을 떨쳐내고 싶었다. 여행안내 책자도 한 권 마련했지만, 목차를 훑어보다가 ‘귀족들이 가던 휴양지, 아라시야마’라는 타이틀에 꽂혀 아라시야마 호스텔 예약을 하곤 그 책마저 덮었다. 펄떡이는 낯섦으로 교토의 거리를 거닐고 싶었다. 항공권 예매와 숙소 예약만 하고선 말 그대로 훌쩍 떠나버린 여행이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달리하면 아는 것과 익숙해진 관점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해석하게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새롭게 섭취한 지식과 정보로 덧입혀진 대상은 그만큼 좁혀진 시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 어떤 때보다 눈과 귀, 코와 혀를 온전히 열고 내어주는 것으로만 접할 수 있는 것들을 향유하고 싶었다.
교토 아라시야마 가츠라 강가를 거닐다가 마주한 멋진 하늘 풍경을 눈으로, 얼굴로, 온몸으로 담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 시간을 분초 단위로 쪼개며 미션을 수행하듯 여행지의 핫플레이스를 다니던 시절엔 미처 느끼지 못한 여유와 평온함이 은은하게 흘러가는 구름에 담겨있었다. 낯선 강가 벤치에 누워 그렇게 두 시간 가까이 보냈다. 낯섦이란 대양에 누워 항해하는 선장이 된 것만 같았다.
익숙한 환경과 시선에서는 미처 느끼지 못하는 ‘지금 이 순간, 여기’를 살아가는 감각을 낯선 곳에선 자주 경험하게 된다. 낯설기 때문에 온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그러다 보면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대상과 그 특징에 자연스럽게 주목하게 된다. 그 순간을 매만지듯이 살게 된다. 잘 모르는, 정보가 없는 여행이 선사하는 낯섦은 그 장소와 시간을 오롯이 살게 하는 마법을 보여준다. 낯선 여행지 교토 아라시야마에서처럼, 일상에서 마주하는 보통의 장소에서도 ‘낯설다는 감각을 유지하다 보면‘ 그 순간을 더 충만하게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살며시 기대해 본다.
* 글쓴이
인생여행자 정연
이십 년 가까이 자동차회사에서 HR 매니저로 일해오면서 조직과 사람, 일과 문화, 성과와 성장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몸으로 답하는 시간을 보내왔다. 지층처럼 쌓아두었던 고민의 시간을 글로 담아, H그룹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칼럼을 쓰기도 했다. 9년차 요가수련자이기도 한 그는 자신을 인생여행자라고 부르며, 일상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글을 짓는다. 현재는 H그룹 미래경영연구센터에서 조직의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며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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