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님, 학생때 처맞고 다니지 않으셨어요?

친구 M 이 내게 남긴것

2023.07.25 | 조회 1.24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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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나는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보드게임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장난감을 만드는 할아버지가 되는것이 꿈이다. 작은 보드게임 회사를 운영한지는 15년 되어 가는데, 어떤 일을 할지 하지 않을지 원칙을 지키려 노력한다. 그 원칙이 만들어지는데는 내 옛 친구 M이 큰 영향을 주었다. 

요즘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게임 Time Division. 올해 세상에 나온다. 
요즘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게임 Time Division. 올해 세상에 나온다. 

 

M을 만난 것은 한 대형 IT기업에서 신규로 게임사업을 시작한 덕분이었다. 그 회사에 입사하기 직전 나는 보드게임을 만드는 블랙기업에 잘못 들어가 임금을 받지 못하고 일하는 고생을 했었기에 근사한 팀에 합류한 나는 무척 기뻤다. 테헤란로에 있던 회사로 출근하면 사무실이 있는 14층까지 뛰어 올라갔다. 빨리 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새 대표님에게는 배울 것이 많았고. 팀원들은 모두 같이 일하기 즐거운 사람들이었다. 드문 일이다. 테헤란로의 고층 빌딩 한구석에서 사업을 준비하던 중. 네 번째로 합류한 게 M이었다. 그는 나와 동갑이었고, 매력이 넘치는 잘생긴 남자였다 M은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당시 세계시장에서 가장 크게 성공한 한국게임 중 하나를 맡았다. 그는 당시 업계에서 유명한 사람이었고, 우리 회사의 대표는 오랜 설득을 해서 그를 영입한 것이었다. 

어느 날 나는 헤비메탈 보컬리스트 David Lee Roth의  Girl You really Got me Now라는 곡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M이 나를 보더니 씩 웃으며 리뢌? 리롸ㄸ?이라는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이미지 출처 : Unsplash
  이미지 출처 : Unsplash

 나는 명품 슈트를 차려입고 복도 가운데 멈춰 서서 난데없이 괴상한 소리를 하는 그가 어이없었다. 그때 내게 든 생각은  “멀쩡한 녀석이 뭐 이상한 걸 잘못 먹었나?” 하는 것이었다. 몇 번 반복하던 M은 답답한 듯이 “아 그거 그 사람 노랜데”라고 했고 나는 대답했다.  아 “데이비드 리 로스?” 

 Roth의 발음은 리 로스보다는 리 로쓰나 롸ㄸ 에 가까우리라. 우리는 원곡을 만든 영국의 Kinks 이야기를 했고, 좋아하는 보컬리스트 이야기를 했다. 전설적인 락그룹 레인보우에서 공연도중 자꾸 자기 앞을 가로막는다는 이유로 그레이험 보넷의 머리통을 기타로 갈겨버린 리치블랙모어 이야기를 하면서 낄낄거렸다.  

 어이없게도 우리는 우리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학년에 1000명씩이나 되는 덕분에 우리는 3년 내내 서로를 몰랐던 것이다. 고등학생 때 나는 헤비메탈 밴드에서 보컬을 맡았었다. 선배 중 나중에 유명한 뮤지션이 된 기타리스트가 있었다. M은 그 선배의 동생이었다.  

 M은 딸 바보였다. 딸 이야기를 할 때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를 좋아했고 길을 걷다가 남의 집 아이를 보아도 입꼬리가 올라갔다. 

M에게는 참 배울 것이 많았다. 그는 몇십억이 들어갈 프로젝트 하나를 고려하면서 즉석에서 엑셀로 모든 경우의 수와 비용을 고려한 프로젝션을 만들고, 그 사업이 갖고 있는 잠재적인 리스크와 비전을 통찰과 함께 타인에게 쉬운 말로, 필요하다면 유창한 영어로 전달할 수 있었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의 리스트를 도출해 냈다. 그리고 우리가 투자한 게임회사가 고민을 상담해 오면 그저 전화 몇 통으로 순식간에 문제를 해결해 내곤 했다. 공교롭게도 대부분 동갑인 우리는 쉽게 의기투합했고 열정에 가득 차 있었다. 

 능력은 그의 장점 중 일부일 뿐이었다. 그를 가장 크게 특징 짓는 것은  그가 가진 매력이었다. 그는 엄격한 기준으로 봐도 꽤 잘생겼는데,  영화 시카리오에 나오는 베니치오 델 토로를 95%로 축소복사 한 다음에 주름살을 없애고, 보다 부드럽고 댄디하고 유머러스하게 만들면 그게 M과 비슷했을 것이다. 그와 관련된 일화도 있다. 

 그 회사에는 접견실이 있었고, 그 카운터에는 예쁜 여성이 앉아 있곤 했다. 어느 날 그 앞을 지나는데 그 여자분이 수줍은 빛을 역력히 드러내며. 나를 붙잡고 물었다.  “저… 가끔 같이 다니시던 잘생긴 아저씨는 이제 여기 잘 안 오세요?”

 추측 컨데 그녀는 겨우 20대 초중반이었을 것이다. 이미 우리는 40대를 향해 가고 있었는데 그녀는 용기를 낸 것이다. 같이 식사를 하는 곳에서, 술을 마시는 바에서, 만나는 모든 여성들이 M에게 보이는 호감은 공기처럼 당연한 것이었다. 

 그는 유머가 넘쳤으나 진중했고, 매우 명석했으나 뽐내지 않았다. 좋은 집안에서 뭐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자라서 귀티가 흘렀지만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격의가 없었다. 나도 그가 좋았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가끔 대책이 없는 인간이었다. 술을 많이 마셨고, 전날 마신 술냄새를 풍기며 출근할 때도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탄 다른 부서 직원들이 웅성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삶에 대한 그의 태도는 굉장히 탐닉적이었다. 연예인 집안이었지만 오히려 그런 기질은 M이 제일 많은 듯했다. 

 남자가 그토록 매력이 넘치는 동시에 대책이 없으면 사고를 치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많이 친해지고 난 이후에 그가 저지른 사고에 대해 말해준 일이 있었는데, 듣다가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야 이 미친놈아”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그의 욕망과 행동 사이에 서있어야 할 파수꾼은 가끔 자리를 비웠다. 

  기묘했던 것은 그가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분명히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죄가 자신의 앞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 비난이 정당하다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자신과 타인의 욕망이 만나면 사고를 저지르는데 거침이 없으면서도 지나고 나면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도 인정하고 그 비난과 책임은 담담히 받아들인다는 면에서 그는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르는 부류의 사이코패스들과는 또 아득히 다른 면이 있다. 실제로 그는 일상의 사리판단이나 상도덕등 일상의 시시비비에서는 매우 합리적이고 정직한 인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묘한 부분이다. 

 어느 날 내가 장모님과 통화하는 것을 들은 M은 신기해했다. 

“넌 장모님하고 사이가 좋아?” 

“어 원래 장모들은 사위를 예뻐하지 않나?”

“나는 전혀. 우리 장모님은 나를 자기 딸 인생을 망친 놈이라고 정말 미워해.” 

M의 와이프는 미인에 공부도 잘하는 재원이었고, 그래서 처갓집에서는 그런 귀한 딸을 주저 앉힌 나쁜 놈이라는 이유로 M을 미워했다고 한다. 그런 데다가 온갖 사고를 쳐대니 M이 예뻐 보였을 리가 없다.  

내가 말했다. 

“그런데, 그거 사실이잖아? 야 우리가 딸이 있는데 어느 날 우리 같은 놈을 데려와 결혼한다고 하면 열받지 않겠냐? 장모님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지.”

M은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봤고, 옆에 있던 동료들은 낄낄댔다. 

좋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잘 흘러가지 않았다. 대표가 많은 공을 들여서, 다른 좋은 일자리를 그만두고 M이 정식으로 입사 한지 겨우 두 달이 되었을때 갑자기 우리 대표이사님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하루아침에 대표인사가 그만두고 갑자기 새로운 대표가 왔다. 우리 회사 모기업 회장의 처남이라는 말을 들었다. 곧 우리는 새로운 대표님이 어떤 일을 위해 오셨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게임사업부를 정리하기 위해 보내진 사람이었다. 

 ‘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를 포함해서 대부분은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수는 없고, 다른 기회를 찾으면 그만이었다. 게임업종은 이직이 잦았다.  우리는 회사에 출근해서 이미 계약을 마친 건들의 마무리를 했다. 일이 많지도 않고 재미도 없었다. 퇴사까지 좀 시간이 남았지만 할 일도 없었고 야동이나 다운로드하면서 소일을 했다. 회사에서 야동을 다운받다니, 정신나간 짓인데 당시 우리는 이 회사가 사람을 장기짝으로 안다고 생각하고 좀 화가 났었던 것 같다. 

 나중에  다른 부서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총 직원 1600명이나 되는 그 대형 IT 기업 내에서 우리 조직이 정치싸움의 한복판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업부를 시작한 이전 대표님은 그곳 이사진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굴러온 돌이었던 것 같다. 

서울대 운동권 출신이 주축인 그룹이 창립 때부터 이사직을 유지하고 있는 있는 조직에서, 서울대 출신이 아닌 우리 대표는 신규사업 하나를 총대를 메고 진행했다. 지속되는 적자, 그리고 다른 이사진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뚝심 있게 사업을 밀어붙였다. 결과적으로 그 사업부는 훗날 미국기업에게 수천억원에 팔리게 되어, 그 회사가 기록한 가장 성공적인 사업 케이스가 되었다. 

 다른 부서 직원들이 우리 대표를 No.3라고 부른다는 걸 알았다. No1과 No2는 친형제 사이였다. 이 과정에서 그 사업을 줄기차게 반대했던 이사진의 입지가 약해진 것도 당연하다. 그리고 그가 새로 시작한 게임사업 역시 다른 이사진들의 줄기찬 반대를 무릅쓰고 진행한 것이었다. 이게 또 성공하면 반대한 이사들의 입지는 한층 나빠졌을 것이다. 우리의 존재 자체가 눈엣가시였던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이다. 팀장급들에 대한 전체 교육에서 직원들의 인사를 받던 이사들 중 몇몇은 게임사업팀이라는 말을 듣고는 노골적으로 도끼눈을 하고 대하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이만 먹었지 참 유치한 사람들이다. 한때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하면서 청춘을 보냈다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자들이. 

 딱한 것은 M이었는데 참 어이없었을 것이다. 정년이 보장되는 편하고 대우 좋은 직장을 그만두고 와서 두 달 만에 이렇게 돼버렸으니. 회사란 조직은 냉정하다. 구성원 자신의 잘못은 없지만 가장 큰 피해는 그저 비전을 믿고 따른 그들이 지게 된다. 

그래도 M은 유머를 잃지 않았다.  

영화 장밋빛 인생의 대사 “나한테 왜 그랬어요? 나 정말 죽이려 했어요?”라는 대사를 흉내 내어 우리를 웃겼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유머는 자기 충족적인 예언이 되어 버렸다. 

 안 좋은 일은 함께 오는 법이다. 어느 날 나는 자리에 앉아 멍하니 앉아 피시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M을 보았다. 내가 옆으로 다가와 화면을 볼 때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모니터에는 M의 와이프로부터 메일로 온 이혼통보가 있었다. 재산과 양육권에 대한 짧고 건조한 메일에서는 한기가 느껴졌다. 상황상 그가 사랑하는 딸의 양육권을 가져올 수 있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이혼을 한 후 M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술만 먹기 시작했다. 저녁에 나를 만나면 술을 사달라고 했다. 위스키를 얼음도 타지 않고 안주도 없이  홀짝홀짝 끊임없이 마시는 M은 분명 어떤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얼마 전 셋째 아들이 태어났기에 나는 빨리 직업을 구해야 했다. 온라인으로 새 직장을 알아보고 있을 때 새로운 대표이사가 나를 보자고 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온라인 게임팀 중에 나는 남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미 이 기업에 대한 큰 충성심은 사라졌지만 나는 이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M과는 그래도 수시로 만났다. 그는 외국계 회사에 입사했지만 이미 회사를 제대로 다닐 수 없었다. 만날 때마다 그는 위스키만 마셨고 나는 안타까웠다. 어쭙잖은 조언을 안 해본 것은 아니나 그런 게 소용없다는 것을 둘 다 알고 있었다.  

M이 호주에서 사업을 하는 누님을 돕기 위해 떠난다는 말을 들은 건 떠나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약 한 달 후 그는 호주에서 죽었다. 

 장례식장에는 내 새로운 상사가 된 새 대표이사도 와 있었다.  일종의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은 그에게 나는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실제로 M은 그를 전혀 원망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게임의 플레이어들이 해야만 하는 일들을 이해하고 있었다. M은 정말 쿨한 인간이었다. 타인에게 사소한 원망 따위 하지 않았다. 

이익을 다투는 대기업에서 모든 결정은 투자자들의 이익, 그리고 그 이익을 명분으로 조직을 운영하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정치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그걸 좋아하지 말지, 따를지 말지 결정할 수 있다.

 모기업에서 M을 대치할 자리에 새로운 사람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냈다. 키가 크고 번듯한 외모의 그는 모기업 회장의 운동권 시절 친구라고 했다..그는 술자리에서 자신의 대학시절 학생운동경력을 자주 반복해서 말하곤 했다, 해외출장을 갔을 때 외국인들 앞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던 이야기를 반복해서 할때면 나는 세상을 떠난 M을 생각했다. 

 나는 어느 날 동료들과 함께 아무도 듣기 원하지 않는 그의 이야기를 참고 듣다가  물었다.

“이사님, 이사님은 고등학교 다니실 때 애들에게 처맞고 다니지 않으셨어요? 아무래도 그랬을 것 같은데.”

이런 도발을 들은 그는 나를 노려봤고 나는 그를 웃으면서 똑바로 쳐다봤다. 그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좀 미안한 일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의 한계를 갖고 사는 사람들이다. 나는 내 친구의 죽음에 화가 나 있었지만 그게 그 사람의 책임은 아니었다. 

나는 내 맡은 일을 열심히 했지만, 이제 회사 14층까지 뛰어올라가는 일은 없었다. 내 생업이자 소중한 일터지만, 내 친구는 이곳에 왔기에 죽었다. 나는 아침에 사람들이 줄 서있는 엘리베이터 뒤쪽의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발견했는데, 그 엘리베이터에는 오로지 회장과 사장(동생)만 탄다고 했다. 나는 그걸 타고 출근하기 시작했다. 몇 번은 회장을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인사를 했다. 내게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충성심 따위는 없었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2년 후 회사는 정리됐다. 대표는 모기업 대표의 처남이었고 이 회사가 청산된 후 모기업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 이후 부산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제안을 받아 서울을 떠나게 되었다. 지방대학의 교수신분이 지겨워질 무렵 그곳을 떠나 다시 현업으로 돌아갔고, 곧 창업을 했다. 그리고 계속 보드게임을 만들고 있다. 

 나는 M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욕망이 모여 만든 큰 자본과 그걸 운영하는 사람들의 생리를 좋아하지 않게 됐다. 그들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용하겠지만 그들에게 충성하거나 휘둘리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누군가 큰 자본을 가진 사람이 어떤 제안을 할 때도 거들먹거리는 느낌이 들면 면전에서 들이받아버리곤 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M을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한때 국민티브이프로였던 슈퍼스타 K 때문이었다. 어느 날 예쁜 소녀가 하나 나와 기막히게 노래를 잘해서 가수 이승철과 다른 심사위원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는데 거기서 돌아가신 아빠 이야기를 했다. 사진에는 M의 얼굴이 나와 있었다. 연예인 집안이라 그 피는 못 속인 모양이다. 

 나는 실제로 M의 꿈을 꾼 일이 있다. 꿈속에서 나는 호주의 황량한 아웃백을 차를 몰고 달린다. 작은 주유소에서 멈췄다. 나는 주유소 주위를 뛰노는 맨발의 아이들과 초로의 현지 여성을 보고 잠시 이야기하다가 계산을 하러 들어간다. 왠지 아이들에게선 동양인의 얼굴이 느껴졌다. 나는 카운터에 있는 검게 그을린 동양인 남자를 발견하고 잠시 미동도 하지 않고 쳐다보았다. 그는 검은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를 못 알아볼 리는 없다.  “야 이 미친놈아.” 나는 M을 껴안고 등을 두드리며 꺼억꺽 거리며 울었다. 벼갯닛을 적시며 내가 깨어난 이후에도 눈물은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그는 경기도에 있는 납골당에 있다. 나는 그를 찾아가지 못했다. 가보고 싶었지만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꿈속에서는 다시 보고 싶지만,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와 함께 일하며 경험한 짧았던 시간들은 내가 일을 택하고 일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 버렸다. 내가 하는 일, 그리고 내가 내리는 판단들은 그의 죽음이 내게 준 깨달음과 결심의 연장선상에 있다. 최대한 사람을 중심에 두는 것. 사람을 돈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지 않는 것. 내가 힘닿는 한은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 

만화가 친구 왕지성이 그려준 캐릭터 
만화가 친구 왕지성이 그려준 캐릭터 

*글쓴이 - 정희권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살고 있습니다.

보드게임을 만들며 글을 씁니다.

세아들과 강아지 한마리를 키웁니다. 

스파이시, 렉시오, 리니지2 보드게임, 등 20여종의 게임을 직접 개발하거나 프로듀싱 하는 일을 했고, 단행본 <세상의 모든 청년>과 <내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의 공저자로 참여 했습니다.

 

정희권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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