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섭 작가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은 모습일지도 모른다. 편안한 복장에 배낭을 메고, 야구장으로 향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뒷모습이다. 부산의 청명했던 어느 날, 그와 가볍게 점심을 함께 먹고 나서, 어디로 가냐는 질문에 그는 대답했다. “창원의 야구장에 가요.” 그러면서 그는 자기의 소망을 하나 말하기도 했다. “언젠가 전국의 야구장에 대해 쓰고 싶은 꿈이 있어요.”
요즘 김민섭 작가는 많이 바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tvN의 <유 퀴즈 온 더 블록>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후, 부쩍 강연 요청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도 한다. 이전까지 운영해왔던 회사를 정리하거나, 또 새로운 책을 준비하고, 출판사를 운영하기도 하고, 서점까지 준비하면서 더 바쁜 시절을 보내는 듯했다. 그런데 그럴수록 나는 더 궁금해지는 게 있었다. 단순히 이것저것 하느라 바빠진 김민섭이 아니라, 그 바쁨 가운데 있는 그의 마음이 더 궁금해졌다. 그 바쁨 뒤에, 그는 어떤 마음을 도토리 품은 다람쥐처럼 가지고 있을지 종종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그에게 연락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마음이 참으로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개인적인 사고나 어려움도 있었고, 바빠진 것도 있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는 작은 꿈 같은 것을 꾸고 있다고 했다. 그 꿈은 바닷가에 서점을 여는 것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다. 김민섭다운 꿈이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이야기를 더 이어갔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마음에 전율이 이는 순간이 있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그의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활짝 웃으면서 가장 즐겁게 이야기를 하던 순간이었다.
그것은 야구에 대해 말하는 순간이었다. 그가 야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여전히 얼마나 즐겁게 야구장을 찾아 다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야구가 너무도 좋은 이유 중 하나로, 끝나는 시간을 알 수 없다는 점을 꼽았다. 정해진 시간 없이, 별들이 빛나는 밤을 새워서도 이어지는 그 무한함이 좋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할 때의 그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설렘, 말투에서 느껴지는 들뜸이 내게도 전염되는 듯했다. 그는 야구의 끝없음을 사랑한다고 했다. 내가 왜 김민섭을 떠올리면, 야구장으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이 생각나는지 알 것 같았다. 끝이 없을 그 여정, 야구장으로 향하는 그의 여행이 내게 삶에 대한 어떤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야구장에 가는 마음
김민섭 작가는 야구장에 가는 일이 가장 즐거운 일 중 하나이고, 평생 야구장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정작 야구장에 가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 삼십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야구장을 좋아했다고 하니, 그 사정이랄 게 더 궁금해졌다. 보통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은 십대, 이십대 내내 좋아하던 취미를 이어오기 마련이지, 마흔이 다 되어 가는 시점에 갑자기 좋아하게 되는 일은 잘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어릴 적 야구 선수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 마음은 꽤 오랫동안 이어져서, 중고등학생 때까지도 야구를 정말 좋아했다고 한다. 그때까지도 야구 선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을 완전히 버리진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대학생이 되면서, 이제 야구 선수라는 꿈은 포기해야 되는 것이 되었고, 야구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야구장에 앉아 있으면, 선수가 되지 못하고 관중석에만 앉아 있어야 하는 그 마음이 슬퍼, 야구장에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십대 이후로는 야구장에 가지 않았는데, 우연히 10년 만에 야구장에 갔던 적이 있었어요. 그때가 서른 여섯인가 일곱 때였거든요. 그런데 제가 그날 강연이 늦게 끝나고, 거의 밤이 다되어서 야구장에 갔는데 아직까지 야구가 하고 있는 거예요. 연장전 12회 말까지 이어졌는데, 그때 대타로 나온 선수 이름이 김민섭이었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죠. 저 선수가 끝내기 안타를 치면, 앞으로 이 팀을 응원할 거라고 말이죠. 그런데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났어요. 그때부터 그 팀의 팬이 됐죠.”
그가 다시 야구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신비로울 정도로 동화적이다. 그는 그 날 더 이상 야구가 자신을 슬프게 하지 않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어쩌면 그에게 야구란 잃어버린 꿈이 주는 아픔과 슬픔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에는 두려운 것을 마주하고 나면, 두려움을 직시하고 나면, 사실은 그것이 사랑하는 것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일들이 있다.
“이제 야구를 보면서 느꼈던 그 슬픔이 없어졌어요. 지금은 야구장에 가면, 일말의 슬픔도 없이 엄청 열심히 응원해요. 친구들이 놀랠 정도로 말이죠. 엄청 흥분해서 소리 지르고, 노래도 부르고 하죠. 야구장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에요. 특히, 저는 야구의 응원 문화를 정말 좋아합니다. 야구장에는 아홉 명의 선수들이 차례로 타석에 들어오는데,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을 집중해서 외치면서 응원하는 스포츠는 야구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든 선수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면서, 그 한 명에 집중하면서, 그렇게 간절하게 응원해주는 스포츠가 없는 것 같아요. 야구장에 가면, 우리는 누군가를 응원할 수 있는 존재구나, 라는 걸 느껴요.”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렇게 어느 한 명을 응원하는 순간이 참으로 좋다고 했다. 그런 즐거운 개인들이 모여서 끝을 알 수 없는 일에 몰입하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야구다. 그가 쓴 책 제목인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라는 문구의 의미를 이제야 정확히 알 것 같았다. 그는 당신이 잘되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 응원의 순간에 대해, 특히 그 순간의 기쁨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막연한 이타성만은 아니다. 오히려 결국 끝내기 안타를 쳐내고야 마는 한 야구 선수가 거기 모인 모든 이들의 기쁨이자 승리이기도 하듯, 그것은 나를 위한,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그 마음의 본질은 기쁨 혹은 즐거움이다. 나는 자신이 어느 때에 가장 기쁜지, 혹은 즐거운지 생각했다. 나만 잘될 때인가? 당신만 잘될 때인가? 혹은 우리가 잘될 때인가. 내가 가장 기쁜 건 나 자신만이 나를 축복할 때인가, 아니면 모두가 나를 축복하여 주고, 나도 그들을 축복할 수 있어 서로 부둥켜안을 때인가. 모든 위선과 허영을 내려놓고 똑바로 이 기쁨을 응시한다고 했을 때에도, 과연 거기에는 나 자신만이 있는가. 아니면 ‘당신’도 있는가. 나는 그가 옳다는 걸 알았다.
축제를 여는 마음
언젠가 김민섭 작가는 내게 자신의 고민이랄 것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자신이 글을 쓰는 작가로서 보다는, 다른 일들로 주목받는 게 낯설고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그는 <회색인간>을 쓴 ‘김동식 작가’를 발굴해낸 출판 기획자로서의 이력이 있다(현재 이 책은 80쇄 이상을 찍었다고 한다). 혹은 이제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는 ‘김민섭 프로젝트’로도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일본 여행을 계획했다가 갈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비행기 티켓 취소가 되지 않자, 동명이인을 찾아 그를 일본으로 보내주기로 했던 것이다(항공사 측의 이야기로는, 동명이인이기만 하면 해당 티켓을 이용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찾은 또 다른 ‘청년 김민섭’이 일본으로 떠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일을 응원했던 훈훈한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번에 인터뷰를 하면서, 다시 그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는 그에 대해 보다 명료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 같았다. 한때 그가 작가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그 고민보다 더 큰 마음을 가지게 된 듯했다. 작가로서의 정체성은 어찌 보면 후순위의 문제가 된 것 같았다. 그는 자기가 살고 싶은 삶, 자기가 지향하는 삶, 자기가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삶에 대해 더 명료히 이야기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게 곧 저의 즐거움이라는 걸 알게 된 셈이죠. 다른 사람들이 나로 인해 잘되면 좋겠고,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함께 즐거운 일을 하는 게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죠. 나아가 그 잘됨이 무한히 이어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멋지고 즐거운 일이 없다고 느껴요. 마치 작은 모닥불 하나가 산 하나를 가득 채운 산불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로 그렇게 통제할 수 없이 퍼져 나가는 즐거움이야말로 저에게는 가장 큰 기쁨인 것 같아요.”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의 마음을 정확하게 정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것은 ‘축제를 여는 기쁨’이 아닌가 생각했다. 혼자만의 즐거움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전염되어 나가는 즐거움으로 온 세상이 들뜨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축제의 밤. 그는 바로 그런 밤을 열어 보이고 싶은 게 아닐까.
“맞아요. 그런데 그 축제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건 아니에요. 그건 너무 부담스러워요. 저는 축제를 열되, 그 시작이 되는 것은 좋지만, 그 다음 부터는 다른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걸 더 보고 싶어요. 주인공은 양보하고, 나도 축제를 열었지만 그 축제를 즐기는 일원이 되고 싶어요.”
그때서야 그의 삶이 모두 하나의 실로 꿰어지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는 이 세상에 축제가 있었으면 했다. 물론, 세상이 항상 축제일 수 없다는 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그였다. ‘나는 지방대 시간 강사다’라는 책을 출간할 때부터,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와 대리운전 기사를 거치면서 현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다. 그런데 어쩌면 그렇기에, 그는 더 이 세상에 한 줌의 축제를 남기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직도 축제가 가능함을 믿고, 축제를 열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손에 닿는 것을 황금으로 바꾸는 마이더스의 손처럼, 자신의 손이 닿는 곳을 작은 축제들로 만들고자 꿈꾸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어지는 축제 속에서
일전의 김동식 작가 발굴에서부터, 김민섭 프로젝트, 그리고 전국의 동네서점들과 작가들을 잇고자 했던 회사 운영, 주로 신인 작가들의 책을 출간하는 출판사 정미소 창립 등에 이르기까지 그는 나름의 ‘축제 만들기’를 이어 왔다. 여담이지만, 나는 김민섭 작가와 ‘책장 위 고양이’ 프로젝트라는 걸 한 적이 있는데, 다양한 작가들을 모아 축제하듯 글을 쓰고 뉴스레터를 발송하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일들 하나하나가 모두 그의 ‘축제 열기’와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그는 또 다른 작은 축제를 기획하고 있다. 그것은 강릉 앞바다에 ‘당신의 강릉’이라는 작은 서점을 차리는 일이다.
“몇 년 전부터 강릉에 살기 시작하면서, 인근 중고등학교에서 강의할 일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서울이 아니면 이런 지역에서는 작가들한테 글쓰기 수업을 듣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글쓰기 피드백을 해주는 식으로 글쓰기를 응원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또 이곳에 와서 여러 사서나 국어 선생님들과 친해지기도 했는데, 그분들과 모여서 글을 쓰거나 책을 만들면서 이 지역 사회에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치 내가 살고 싶은 삶을 대신 살아주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 같았다. 나도 너무도 살아보고 싶지만, 차마 아직 용기내지 못한 삶을 그가 앞서 걸어가주는 듯하다. 언젠가 나도 꼭 그처럼 바닷가에 그런 작은 공간을 얻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릉으로 이주한 지가 이제 3년쯤 되는데, 아이들이랑 바다에 자주 가요. 그런데 언젠가 둘째 아이가 보석을 주웠다고 들고온 적이 있었어요. 무엇인가 하고 보니, 바다유리, 흔히 씨글라스라고 부르는 거였죠. 사람들이 버린 유리병이 마모되어 보석처럼 다듬어진 것이었어요. 요즘 둘째는 그 바다보석을 줍는 게 취미거든요. 많은 줍는 날은 수십개씩 줍기도 해서, 집에 수백 개가 쌓였어요. 서점을 열고자 했을 때, 문득 그 바다유리가 생각났어요. 책을 사는 분들게 하나씩 드리면 어떨까 생각했죠. ‘당신의 강릉’에서 책을 사면, 바다가 아주 조금 깨끗해진다, 그런 마음을 선물하면 좋을 것 같아요. 사는 사람도 무언가 조금 착한 일을 했구나, 책을 사면서 내가 조금 좋은 사람이 됐구나, 나도 책을 팔아서 조금 좋은 사람이 됐구나, 그렇게 느낄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그는 삶을 동화처럼 물들이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일부러 동화처럼 삶을 꾸미는 건 아니다. 오히려 진심으로 타인과의 이어짐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이다. 타인에게 어떤 마음을 선물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면, 그 삶은 어느 정도 동화 같아진다. 왜냐하면 동화란 대개 우리가 현실을 알기 전, 현실보다 마음이 더 중요한 시절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어느 동화에서는 인간이 고기를 먹는 현실보다 동물의 마음이 더 중요한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가 만들어갈 축제를 계속 보고, 듣고, 알고 싶다. 그렇게 그가 삶으로 만들어낸 축제들이 동화처럼 사람들 사이에 퍼져 나가고, 그의 정확하고 따뜻한 언어로 기록되는 일을 계속 보고 싶다.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건, 김민섭이 없는 세상 보다는 김민섭이 있는 세상이 조금 더 나은 세상일 거라는 점이다. 마치 세상의 어느 마을이든, 작은 축제가 없는 마을 보다는 있는 마을이 더 나은 마을일 것처럼 말이다. 그는 또 누군가의 마음을 엮어낼 것이다. 그 마음은 또 이어질 것이고, 밤하늘의 별자리가 될 것이다. 늦은 밤, 응원가가 울려퍼지는 야구장 위에 그 별자리는 언제까지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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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섭 작가는 일전에 내게 공개적인 편지를 보내준 적이 있다. 이번 인터뷰는 어떤 면에서 그 편지에 대한 답장이기도 하다.
김민섭 작가가 보내주었던 편지 : http://ch.yes24.com/Article/View/47149
* '정지우의 밀착된 마음' 인터뷰어 - 정지우
작가 겸 변호사. 20대 때 <청춘인문학>을 쓴 것을 시작으로, <분노사회>,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등 여러 권의 책을 써왔다. 최근에는 저작권 분야 등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20여년 간 매일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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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
두 분의 만남과 이어짐이 많은 이들에게 길을 보여줄 듯 합니다. 두 분의 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두 분의 삶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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