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탕 관리인이 탈의실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남자 좀 들어올게요."
원래 너무 얼토당토않은 말은 귀에 잘 안 들어온다. 나는 그냥 여탕 관리인이 사람들한테 뭐라 말하고 있구나 했다. 그 말이 "남자 좀 들어올게요." 라는 건 여탕 관리인이 세 번째로 그 말을 내뱉었을 때에야 알아들었다. 아니, 여탕에 남자가 들어온다니 그게 무슨 소리...?
며칠 전부터 사물함 첫 번째 열과 두 번째 열 사이에 천막이 쳐있고 이용하지 못하도록 해놓은 걸 봤다. 사물함이 고장난 건지 천장에 물이 새는 건지 어쨌든 뭔가가 고장났고 그걸 고치러 남자가 들어온다는 얘기 같았다. 여탕 관리인은 남자가 들어온다고 말하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편하게 계세요~"
아니, 여탕에 남자가 들어오는데 편하게 계시라니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그런데 더 황당한 건 여탕 관리인과 가까이 서 있던 어떤 사람이 아무런 동요 없이 "네~"라고 대답하는 거였다.
방금 샤워하고 나와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고 있던 나는 허둥지둥 사물함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 원래 얼굴에 스킨 로션을 먼저 바르고 옷을 입는데 순서가 뒤바뀌었다.
그런데 아무도 나처럼 급하게 옷을 입지 않았다. 다들 알몸인 채로 자신들이 하던 일을 하던 속도대로 계속했다. 거울 앞에서 화장품을 바르거나 드라이를 하거나. 아니, 남자가 들어온다는데 왜 다들 옷을 안 입는 거지?
거의 할머니들, 또는 곧 할머니가 될 것 같은 아주머니들이었다. 평일 아침 시간에는 헬스장 단체 운동 프로그램으로 에어로빅이 있는데 에어로빅이 끝나고 씻으러 온 사람들 같았다. 탈의실을 슥 둘러봤다. 나보다 젊거나 내 또래는 없었다. 모두 적어도 육십 대 이상은 되어 보였다. 육십 대가 되면 저런 대범함이 생기나? 하는데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분홍색 잔꽃 무늬 이불을 뒤집어쓰고 앞이 안 보이는 상태로 여탕 관리인의 안내를 받으며 천막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이 상황에 긴장하고 있는 건 오히려 남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목욕탕은 스물네 시간 운영하므로 사람이 없을 때를 골라 고치러 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여탕에 남자가 들어온 그 순간, 나와 여탕 관리인 빼고 다른 여자들은 모두 알몸이었다. 실오라기 걸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 남자가 들어오자 사람들은 남자를 보려고 몸을 돌렸다. 몸들이 자연스레 남자를 정면으로 향하게 됐다. 모든 게 다 보였다. 다들 너무 태연했다. 오직 나만 남자의 이불이 실수로라도 흘러내릴까봐 긴장하고 불안해 하고 있었다. 다행히 남자는 무사히 천막 안으로 들어갔고 남자가 사라지자 또 다들 아무렇지 않게 몸을 돌려 제 할일을 하기 시작했다. 모두 여전히 옷을 입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글쓴이 – 진솔
어린이들과 책 읽고 이야기 나누는 독서교실 선생님입니다. 초등 아이 키우는 엄마이기도 합니다. 뉴스레터 <세상의 모든 문화>에 ‘오늘도 새록새록’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진솔의 브런치 – https://brunch.co.kr/@kateinthe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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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잇
결말이 궁금해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은 에피소드입니다 ^^
세상의 모든 문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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