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여행자의 조직문화 탐사기

당신이 무기력한 이유

나의 일터, 당신의 일터는 이 사회와 떨어져 있지 않아요

2024.04.18 | 조회 1.29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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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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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 & Life @DALL·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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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터, 당신의 일터는 이 사회와 떨어져 있지 않아요.’

몇 년 전 심한 체증에 시달리며 수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정신적 체증은 일터에서 극심한 무기력으로 나타났다. 현상이 있으면 원인이 있을 텐데, <문제는 무기력이다>와 같은 책도 현상에 대한 이해는 도왔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까지는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땅콩 회항을 둘러싼 세 가지 분노>라는 논문을 우연히 마주하게 됐다. 평소 멋지게 생각하며 따르던 조직문화 교수님께서 추천해 주신 아티클이었는데 그 한 편의 글을 읽으면서 나의 무기력은 원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원인을 모르면 적합한 해결 방안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변죽만 울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질병 가운데에도 ‘돌발성’ OO와 같은 병들이 그렇다. 예를 들면, 돌발성 난청을 들 수 있는데, 난청이란 증상은 있는데 원인은 정확히 알지 못하다 보니, 몸의 면역력을 급격히 올려서 해결되길 기대하는 처방을 한다. 대표적으로, 부신피질 호르몬을 대량 생성하게 하는 고농도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하게 하거나 직접 주사로 고막에 주입하는 처치를 한다.

당시 나의 무기력도 그러했다. 증상은 있는데 원인을 몰라서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우연히 만난 정치사회학 논문에서 힌트를 발견하고 원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부조리와 부정의에 대한 분노를 해결하지도 해소하지도 못해서 그 응어리가 차올라 무기력에 이르게 됐던 것이다. 그 사실을 발견했을 때 너무도 기뻤다. 오래된 티눈의 뿌리를 찾아낸 것만 같았다. 이제 그 뿌리를 뽑아내고 잘 아물게 약을 바르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조직 구성원으로 일하고 있고, 보이는, 보이지 않는 선을 지켜야만 했다. 고요히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떠날 준비가 되어있니? 그게 아니라면, 넌 무엇을 할 수 있니?” 수용할 것과 개선할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었다. 견고한 구조와 시스템을 한순간에 바꾼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직을 둘러싼 사회와 국가의 토대 위에 조직도 세워지고 운영된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을 구분하고, 바꿔나갈 수 있는 것을 사부작사부작 해나갈 뿐이었다. 그 한 가지 방법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더 적극적으로. 글을 쓰고 말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출발점이었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라 믿었다.

우리 각자가 속한 일터는 사회와 국가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월요병’, 월요일 아침 일터에 출근할 때 느끼는 답답함과 무기력함이 개인적인 영역의 이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곰곰이 따져보면 우리 사회와 국가의 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다. 일터의 조직문화를 깊게 살펴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관심이 사회와 국가로 확장되는 이유기도 하다. ‘난 바쁘고 힘들어서 사회에 관심 가질 여력이 없어.’라는 솔직한 마음이 솟아오를지도 모른다. 오늘 당장 마주하고 있는 일터에서의 어려움이 압도해 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사회적 이슈와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일터에서의 문제 해결 역시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의사 표현에서 시작되고 그것이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제게 공부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언어였습니다. 타인의 고통은 타인의 것입니다. 우리는 손톱 밑에 찔린 가시로 아파하는 옆 사람의 고통을 알지 못하지요. 특히 부조리한 사회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은 종종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숨직이며 아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이지 않는 상처가 당사자의 몸에 갇히지 않고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그 고통에 응답해야 합니다. (중략) 공부를 할수록 세상은 복잡하고 변화는 쉽지 않다는 점을 알아갑니다. 하지만 답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질문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은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버릴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니까요.

김승섭,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중에서

 

* 글쓴이

인생여행자 정연

이십 년 가까이 자동차회사에서 HR 매니저로 일해오면서 조직과 사람, 일과 문화, 성과와 성장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몸으로 답하는 시간을 보내왔다. 지층처럼 쌓아두었던 고민의 시간을 글로 담아, H그룹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칼럼을 쓰기도 했다. 10년차 요가수련자이기도 한 그는 자신을 인생여행자라고 부르며, 일상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글을 짓는다. 현재는 H그룹 미래경영연구센터에서 조직의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며 준비하고 있다.

인생여행자 정연, 20년차 HR 매니저, 10년차 요가수련자, 15년차 아빠로 살아갑니다. 일상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글을 짓습니다.
인생여행자 정연, 20년차 HR 매니저, 10년차 요가수련자, 15년차 아빠로 살아갑니다. 일상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글을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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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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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잇

    0
    7 months 전

    글쓰기로 출발해서 사회로 관심을 확장하는 작가님의 이야기를 통해 무기력의 원인을 생각해 봅니다^^

    ㄴ 답글
  • 세나군

    0
    7 months 전

    마침 회사에서 대단히 무기력함을 느끼면서 원인을 궁금해 하던 차였습니다. 그 원인을 찾은 느낌이네요. 해결하셨던 방법을 저도 차용해보고자 합니다. 좋은 경험의 나눔, 대단히 감사합니다.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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