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한해 동안 매달 정원 여행을 다녔다. 초보 가드너로서 좋은 정원의 예를 보고 싶고, 정원의 개념을 새롭게 확장하고 싶은 마음에 유서 깊은 수목원이나 국가 정원, 이름 있는 정원사들의 정원을 먼저 찾아다녔다. 지역을 고르게 방문하겠다고 매달 전국 지도를 펼쳐 놓고 이리저리 계획을 잡다 보면 와, 내 인생에도 이런 시간이 오는구나. 매달 가족의 응원을 받으며 정원 공부를 위한 여행을 떠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축복받은 인생인가, 자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2월부터 12월까지 매달 정원 여행을 이어가다 보니(실제 방문한 곳은 20여 곳 되지만) 총 11곳이 내게 의미 있는 배움을 선사한 정원으로 추려졌다.
그간 여행한 정원에 대한 감상을 몇 편의 연재글로 올리곤 했는데, 여행기가 정원의 특색만큼 다양한 반응을 받는 게 신기했다. 어떤 글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많은 사랑을 받는가 하면, 어떤 글은 조용히 자리만 지키다 잊혀졌는데 그게 해당 정원의 인지도나 매력 때문인지, 나의 모자란 글빨 때문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오늘은 2023년 전국 정원 여행이 내게 남긴 것을 한편의 글로 정리하며 <전국 정원 여행> 연재를 마무리하려 한다. 정원 여행을 다녔던 일년을 전후로 나는 정말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는데, 이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속도가 빠르고, 무언가를 깨닫게 되면 그 다음 단계로 실행을 이어가야 직성이 풀리는 나의 특성과 맞닿는 지점이기도 하다. 내 인생은 늘 그런 방식으로 도전을 이어왔기에 이번에도 두려움없이 다음 단계로 훌쩍 넘어서 보기로 한다.
전국 정원 여행을 다니던 작년 7월, 나와 우리 가족은 거주지를 경북으로 옮겼다. 생활 반경이 전혀 달라지는 큰 폭의 이주였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의 진입이었다. 베란다가 아닌 땅에 정원을 일구고 싶다고 고백한 지 이제 일 년 정도, 여러 정원을 다니며 정원에 대한 시야가 확장된 지 반년 만의 결정이었다. 5년이나 10년 후 쯤 먼 미래라고 만 생각했던 삶을 지금부터 준비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나는 가족과 함께 논의를 시작했고, 그해 7월에 경북으로 이주할 수 있었고 현재 정원 가꾸는 일을 시작한 상태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 여행기를 계속 이어가기 보다 그간의 배움과 질문이 나의 정원에 어떻게 녹아드는 지를 기록한 연재를 이어가고 싶어졌다. 아직 제목도 목차도 미정이지만, 전국 정원 여행이 내게 무엇을 남겼는지 부터 정리하다 보면 다음 연재의 제목과 목차도 술술 풀어지지 않을까. 이제 전국 정원 여행의 마지막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전국 정원 여행이 내게 남긴 것
첫째, ‘자연의 모든 식물은 정원 식물’ 이라는 깨달음이다.
돌이켜보면 베란다 가드닝을 했던 4년 여의 시간은 솔직히 ‘가드닝’이라는 단어보다 ‘식물 모음’이라는 말이 더 어울렸던 것 같다. 내 마음에 드는 어여쁜 식물, 정원 유튜버의 영상에서 본 핫한 식물, 꽃은 오래 피면서 쉽게 죽지 않는 식물을 모아 베란다에 예쁘게 진열해두고 기뻐하는 게 내 ‘가드닝’의 대부분이었음을 인정한다. 행여 나의 서툰 솜씨로 식물이 죽기라도 하면, 가차없이 화분을 비우곤 더 싱그럽고 어여쁜 식물을 들여놓고 만족스러워 하던 나. 나에게 정원 식물이란, 특이하거나 강인하거나 시각적 만족감을 주는 극소수의 식물들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베란다라는 제한된 공간을 근사하게 채워줄 식물을 최고의 정원식물이라 여겼던 것 같다.
전국의 정원을 다니며 난생 처음보는 식물들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이렇게나 다양한 수종의 나무와 초화류가 지구상에 존재한다니! 그 지역의 기후와 땅의 생태조건에 따라 자라는 식물이 다르다 보니 지역마다 터를 잡고 있는 낯선 나무와 꽃들이 너무 신선하게 느껴졌다. 또한 흔하게 보아왔지만 전혀 정원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고사리, 이끼, 사초, 그라스 등이 자리잡은 정원이 얼마나 다채롭고 신비한 매력을 뿜어내는지도 알게 되었다. 피트 아우돌프, 질클레망, 정영선 등 거장들의 정원을 책이냐 영상으로 접하면서도 정원 식물의 기준이 많이 바뀌었다. 그들의 정원엔 프리마돈나처럼 홀로 존재감을 뽐내는 식물은 거의 없고, 서로 어우러질수 있는 흔하고 평범한 식물들이 주변 풍경과 아름답게 사계절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아, 정원 식물이 따로 구분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재발견하고 내 정원에 녹여내느냐가 중요한 거구나. 그렇게 자연의 모든 식물이 정원 식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둘째, 식물의 모양새에서 ‘식물의 생애’로 관심이 확장되었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베란다에서 식물의 파릇한 모습만 즐기던 내가 사계절 정원을 탐방하며 제일 먼저 깨달은 사실은 ‘나는 식물의 일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였다. 매년 봄이면 어떤 식물이 가장 먼저 땅을 뚫고 올라와 싹을 내미는지, 나무마다 잎이 무성해지는 시기가 어떻게 다른지, 어떤 나무가 가을에 빨갛게 물들고, 또 어떤 나무가 잎을 떨어뜨리지 않고 겨울을 나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정원을 다니다 보니 그제서야 ‘노지 월동’이라는 단어가 귀에 들리기 시작하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식물의 모습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식물의 생애를 이해하는 것은 정원을 구상하고 만들어가는데 아주 기본적인 배경 지식이다. 식물이 주로 어디에서 서식하는지, 어떤 기후를 좋아하고 어떤 조건에 취약한지, 봄여름가을겨울 어떤 성장과 변화를 겪는지, 일년생인지 다년생인지, 어떤 모습으로 시들거나 겨울을 나는지 가드너는 충분히 숙지하고 있어야 정원의 사계절을 상상하며 만들 수 있다. 식물에 대한 깊은 이해만이 사계절 아름다우면서도 지속가능한 정원을 만들 수 었다는 걸 배웠다.
셋째, 공간에 대한 감각, 조형언어가 깨어났다.
어려서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던 나는 학부시절 미술을 전공했다. 그 시절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던 언어는 주로 시각언어와 조형언어였는데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수많은 예술품과 그들의 언어 앞에서 나는 매번 감동하고 전율하며 나만의 표현을 찾으려 애썼다. 대학을 졸업하고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며 시각언어와 조형언어를 사용하는 횟수가 점점 줄었는데, 나의 것을 표현하기 보다 아이들이 잘 표현할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주로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후 사회복지 분야 실천가로 활동하고, 글을 통해 내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간이 늘면서 시각언어와 조형언어는 거의 사용할 일이 없어졌다.
정원을 다니는 동안 오래 잠들어있던 언어들이 서서히 깨어나는 걸 느꼈다. 정원에 들어서고 새로운 식물과 인사를 나누는 순간, 신선한 컬러 조합과 조형적 아름다움이 있는 정원디자인 앞에 서는 순간, 오랜 시간이 쌓인 녹색의 우주 안에 몸을 맡기는 순간 저 아래 가둬 두었던 아름다운 언어들이 마구 깨어나 말을 거는 것을 느꼈다. 미세한 색을 읽어낼 때마다, 빛에 반응하는 형상과 움직임을 볼 때마다, 점,선,면이 어우러지며 만들어내는 조형적 하모니 앞에서 감탄할 때마다 내 안에선 그것에 반응하는 언어들이 올라왔다. 새로운 공간에 들어설 때면 몸이 보이는 반응을 통해 내가 지금 이 정원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저 아름다운 조화가 내게 무슨 의미로 전달되는지 보다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정원에 대한 지식, 식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도 공간이 건네는 다양한 조형언어와 사인을 읽어갈 수 있다니 너무 반가웠다. 마치 잃어버린 모국어를 찾은 느낌이랄까. 이렇게 읽어가는 게 맞는지, 틀린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내가 느끼는 정원의 주관적 아름다움, 좋은 정원의 의미를 추출해 갈테니 말이다. 정원을 다니는 사이, 나는 다시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되었다.
넷째, 정원은 가드너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원을 가꾸겠다 결심했던 초기, 나는 온통 꽃과 나무의 눈부신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있었다. 내 정원은 특색있는 식물로 채워야지,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은 들이지 않겠어, 라며 맥락도 없고, 정체성도 없는 혼자만의 거대한 식물 전시장을 계획했었다. 멋진 식물을 가득 채우면 아름다운 정원이 될 거라 오해했던 나의 생각은 탁월한 정원들을 찾아다니고, 그곳을 만든 가드너의 철학과 정체성을 알아가는 동안 보기 좋게 깨어졌다. 좋은 정원엔 그만의 철학이 있었다. 좋은 정원은 그것을 만들고 가꾸는 가드너의 삶과 맞닿아 있었다. 아버지의 감귤농장이 있던 자리에 정원을 만든 제주 ‘베케’의 김봉찬 가드너의 정원은 그를 키운 부모님의 역사가 서려있었고, 그가 자란 제주의 생태와 그 땅의 지형이 그대로 녹아든 채 펼쳐져 있었다. 자연주의 정원을 일궈가며 정원 교육, 정웜 문화를 이끌어가는 ‘입곱계절의 정원’ 김재용 대표는 땅의 힘을 키우는 법, 적절한 자리에 정확한 식물을 식재해야 함을 강조하는데, 평생 정원사로 살았다는 고백에서 그의 삶이 녹아난 나무 사랑, 정원관리의 전문성이 묻어났다. 정원에서 다양하게 할 수 있는 여러 활동을 건네며 수많은 정원생활자들의 학교를 만들어가는 ‘일곱계절의 정원’은 김재용 대표의 정체성과 너무도 닮아있는 것이다.
나 역시 많은 정원을 방문하고, 그 정원이 품은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정원은 그저 식물 저장소가 아닌 어마어마한 삶의 레이어와 가드너의 철학이 녹아든 공간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가드너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 이 정원에서 사람들과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 지가 정원 디자인에 녹아든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정원을 화단과 잔디밭으로 가꾸어 멀찌감치 앉아 바라만 보고싶은 사람도 있고, 관광객이 찾아와 인생샷을 남기는 장소로 만들어 수익을 올리는 컨텐츠로 잘 굴려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정원 공간 사이사이 놓인 의자에 앉아 마음을 다스리고, 하루를 정리하며 삶을 돌아보는 공간으로 만들수도, 또 누군가는 더 큰 자연을 만나고 신의 섭리를 이해하는 영적인 공간으로 가꿀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형태이든, 무엇이 강조되든 결국 그 공간을 만들고 지키는 이의 정체성과 철학에 연결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시드니 에디슨은 책 ‘정원은 자서전의 한 형태이다’라고 말했나 보다(정원을 가꾼다는 것, 195p)
이것 외에도 크고 작은 깨달음이 있었는데 그 이야기는 이후 나의 정원이야기를 펼쳐가며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일년 간의 전국 정원 여행은 나를 더 큰 자연의 세계로 이끌었고, 이전과 전혀 다른 라이프스타일로 진입하도록 했다. 내 인생 오십에 다가온 ‘정원이 있는 삶’이 앞으로 어떤 장면들을 끌고 들어올지 나도 기대가 많이 된다. 정원에 전혀 관심없던 독자들, 정원에 이제 막 발을 들인 독자들, 이미 정원생활자 이신 독자들 모두와 즐겁게 호흡하며 다음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싶다. 우리 안에 있는 ‘바이오필리아’(생명 사랑 본능)를 깨우며 더 큰 인생 이야기를 담아 다음 시절로 넘어가려 한다. 그동안 전국 정원 여행기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글쓴이 – 이설아
작가, 글쓰기 공동체 <다정한 우주>리더, 정원이 있는 시골 민박을 준비하는 초보 가드너. 저서로는 <가족의 탄생>,<가족의 온도>,<모두의 입양>,<돌봄과 작업/공저>,<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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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충온
그동안 정원 이야기 쓰시느라 애쓰셨어요.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 영주에서 펼쳐질 설아 쌤의 인생을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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