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서는 생명이 보여야 하는데 이곳은 왜 야심이 보이는걸까_전국정원여행_이설아

2024.02.22 | 조회 1.56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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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정원은 자연을 추구하지만 결국 사람이 만드는 공간이다. 자연을 근간으로 하지만 자연의 단면이 극대화된 ‘편집된 아름다움’이 필요하다.’ 

<베케, 일곱 계절을 품은 아홉 정원> 중에서
순천만 습지의 아름다운 모습
순천만 습지의 아름다운 모습

정원은 자연의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자연 그 자체라기 보다 누군가의 취향과 목적에 따라 편집되거나 가공된 공간이다. 백 명의 사람이 정원을 만들면 백 가지의 얼굴이 드러나는 것은 만든이의 취향과 정체성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정원 여행을 이어가며 새삼 느끼는 것은 어떤 정원을 두고 좋다, 나쁘다로 구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나는 영국식 정원이 좋더라혹은 나는 자연주의 정원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정도로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정원, 내가 원하는 스타일을 더욱 선명히 깨달으며 정원 그림을 그려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국가정원이 생긴다는 기사를 접했던 몇 년 전부터 정원에 국가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정원은 또 어떻게 달라질까 궁금했다. 28만평 대지에 2000억원이 넘는 예산으로 정원을 만들었고 이미 400만명 이상이 다녀갔다는(작년 5월 기준/현재는 누적 1000만명)는 순천만 국가정원의 기사를 접하며 우리나라 1호 국가정원은 어떤 미래를 품고 조성되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었달까. 8년 전 목격했던 천혜의 환경이 빚어낸 순천만 습지의 아름다운 갈대정원과 황금빛으로 번지던 일몰이 순천만 물길 위에 드리워지던 감동을 기억하는 나는 아마도 그때의 전율을 순천이라는 이름 위에 살짝 포개고 있었던 것 같다.

순천 와온해변의 해질녘 풍경
순천 와온해변의 해질녘 풍경

 

5월 초의 이른 아침, 고요한 순천만 정원을 즐기고 싶어 오픈런에 맞춰 매표소 앞에 섰다. 입구 주차장엔 아침부터 엄청나게 밀려드는 관광버스 행렬이 보인다.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네. 정원과 시끌벅적한 관광버스 행렬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무료입장 출구 앞으로 줄을 서신 분들은 대개 6, 70대 분들이셨는데 65세 이상 무료관람이라는 혜택이 전국의 어르신들을 이곳으로 다 불러모은건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입구가 열리자 마치 춘계 마라톤의 출발 총소리를 들은 마라토너들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순천만국가정원 안으로 우르르 쏟아져 들어갔다. 나도 그 인파에 끼어 부지런히 정원 안으로 흘러들어갔는데, 뭔가 쎄한 느낌이 드는건 왜일까.

눈앞에 펼쳐진 입구정원의 작가 부스(10군데 정도에 작가가 디자인한 정원이 작은 컨테이너 형태로 전시되고 있다)와 눈이 부실만큼 알록달록한 꽃들, 분주하게 움직이고 큰소리로 서로를 부르며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는 관광객들을 보는데, 내 머릿속 정원이라는 단어와 순천만국가정원의 정원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같은 의미인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말하는 국가정원이라는 명칭은 ‘K-박람회장혹은 ‘K-유원지의 새로운 별칭인가?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 많은 예산과 수고, 땀방울이 들어간 게 보이고, 얼마나 많은 관련자들의 삶이 이곳과 연결되어 있을지 누가 봐도 가늠이 될만한 면적과 모양새였는데 나에겐 왜 그곳이 정원으로 느껴지기 보다 잘 꾸며진 행사장이나 유원지처럼 느껴진걸까.

눈이 시리도록 화려한 꽃들이 가득했던 순천만 정원
눈이 시리도록 화려한 꽃들이 가득했던 순천만 정원

정원부지는 한눈에 가늠할수 없을 만큼 넓었다. 정원 내부를 유유히 가로지르는 동천에는 작은 유람선(나룻배라 해야할까)도 운행되고, 정원 전체를 손쉽게 이동하도록 돕는 관람열차도 있다. 국가정원 남문쪽으로 가면 모노레일을 탈 수있는 정원역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모든 풍경이 내게는 익숙한 K- 유원지(관광지)를 떠올리게 하는 요소였다. 고즈넉하고 조용한 정원을 거닐 생각에 부풀었던 내 마음은 그늘 하나 없이 펼쳐진 초록 잔디밭과 여기저기 같은 꽃조합을 반복해서 심어둔 입구정원의 성급함 앞에서 어느새 슉~하고 바람이 빠지고 있었다.

정원에 삽니다라는 2023의 주제는 어느 공간에서 시작되는 걸까. 이렇게 시끌벅적하고 관광지 분위기인 정원에서는 단 하루도 살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이 주제 문구를 곱씹으며 정원을 둘러보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모두들 꽃밭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한없이 들떠 보였고, 깔끔하게 정돈된 잔디와 완벽하게 매만져진 자연 위를 걸으며 행복한 얼굴이었다. 이렇게 일 년에 한 두번 꽃을 배경으로 화려한 사진 찍고 자연을 배경으로 한 포토 스팟에서 인생샷을 남기면 국민의 삶에 정원이 스며드는 걸까. 초록 잔디와 화려한 꽃들로 넓은 땅을 채워두면 언젠가 성숙한 숲이 되고, 깊이 있는 정원이 되는걸까. ‘순천이라는 두 글자를 떠올릴 때마다 떠오르던 신비롭고 충만한 감동은 다 어디로 치운걸까. 대자연을 잃은 대신 거대한 놀이동산을 얻은 것 같은 조금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초록잔디는 아름답다기 보다 인공적으로 느껴졌다.이토록 그늘이 없는 정원이라니
끝도 없이 펼쳐진 초록잔디는 아름답다기 보다 인공적으로 느껴졌다.이토록 그늘이 없는 정원이라니

국가정원을 거니는 내내 정원에 머무르는 느낌보다 행사장을 누비는 느낌이 들었던 이유를 얼마후에야 깨달았다. 순천만국가정원에 관련된 기사를 검색할 때마다 성공적인 개최와 관광객 유치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굵은 글씨로 읽혔는지가 생각난 것이다. 어마어마한 예산을 들여 조성한 거대한 정원은 지역 고유의 역사성과 철학이 담긴 정원이라기보다 국가와 지자체, 순천시민의 거대한 열망을 담은 또하나의 K컨텐츠로 자리매김시키려는 노력으로 읽혔다. 기사를 찾아보니 ‘K디즈니순천으로 미래 100년을 준비할 계획이라는 기사가 여럿 보인다. 순천만 기반 애니 클러스터를 중심으로한 문화콘텐츠 산업 육성을 새해 목표로 삼겠다는 기사였다.

결국 ‘정원’만으로는 사람을 끌어모을 힘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걸까.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질만큼 잘 팔리는 컨텐츠를 만들어 더 많은 관광객을 끌어보겠다는 순천시의 야심을 읽는데 그 열망 앞에 정원에 대한 더 이상의 고민과 철학이 필요할까 싶은 마음이 든다. 순천만 정원은 그저 화려한 볼거리를 즐긴 관광객이 잠시 쉬어가는 휴게 공간이자 인생 사진을 남기기에 적절한 포토스팟으로만 남으면 되는가 보다. 천혜의 자연으로 신비로운 자연정원을 보여주던 순천만이 몇년만에 천지개벽해서 역동적인 K디즈니순천으로 변하다니, 이제 순천은 그 컨텐츠를 담아낼 바탕으로서만 존재하면 되는건지 많이 아쉬운 마음이 든다.

땡볕에서 정원을 관리하느라 작업중이던 아주머님들
땡볕에서 정원을 관리하느라 작업중이던 아주머님들

정원을 한바퀴 돌고 나오는데 매표소 입구 광장에 잔득 걸려있던 순천시의 국가정원 인력 부당해고에 관한 현수막과 민주노총의 활동모습이 새롭게 보였다. 국가정원 성공개최라는 지상과제 앞에서 얼마나 많은 개인의 삶이 효율성이라는 명목아래 대체되어 왔을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 정원이라는 단어가 건넸던 평화로운 느낌이 조금은 퇴색되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관람객은 꽃 앞에서 행복했겠지만 나는 그닥 즐겁지 않았다.

순천 도심에서 만난 향림사의 아름다운 정원
순천 도심에서 만난 향림사의 아름다운 정원
모든 풍경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던 향림사 정원 한켠
모든 풍경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던 향림사 정원 한켠
아주 오랜시간 한 자리를 지킨 나무의 생명력
아주 오랜시간 한 자리를 지킨 나무의 생명력

앞서 말했듯 정원의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하기에 순천만국가정원은 나와 '취향이 전혀 안맞았다고'만 말하고 싶다. 나는 '인간의 노오력'이 돋보이는 정원보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일깨워주는 정원을 좋아한다. 마치 화훼공판장 앞마당처럼 알록달록한 꽃을 여기저기 늘어붙인 납작한 정원보다 식물의 층위가 있어 함께 모인 식물사이에 빛과 그늘이 스며드는 정원, 지역과 기후에 걸맞는 자생종이 돋보이는 정원, 다양한 종의 식물이 어우러져 작은 생태계를 이루는 정원을 선호한다. 집약된 K-유원지 같았던 순천만국가정원은 내가 진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새겨주었다. 직접 가보지 않았다면 선명하지 않았을 생각들을 확실히 정리시켜 준 것이다. 그것만으로 이번 정원여행은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여행 첫날 들렀던 순천만 갈대 습지(일부구간)와 와온해변, 도심 속 향림사의 정원이 훨씬 아름다운 곳으로 각인되었다. 순천이 가진 천혜의 환경은 최소한의 가공만 더해질 때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자연이 일하는 방식을, 자연이 그려내는 그림을 나는 더 보고 싶다.

 

 

*글쓴이 이설아

작가, 글쓰기 공동체 <다정한 우주>리더, 정원이 있는 시골 민박을 준비하는 초보 가드너. 저서로는 <가족의 탄생>,<가족의 온도>,<모두의 입양>,<돌봄과 작업/공저>,<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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