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글은 재미있게 보셨나요? 여기는 지난 한 달 동안 비가 많이 와서 서핑을 자주 가지 못했습니다 😢. 비가 와도 서핑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지만, 이곳 오렌지카운티 보건국에서는 비가 온 뒤 최소 3일간은 바다에 입수하지 않는 것을 추천합니다. 하수구와 강을 타고 바다로 흘러가는 빗물 때문에 바다의 박테리아 수치가 높아지기 때문이죠. 물론 그런 것은 개의치 않고 바다에 사람이 없다고 더 좋아하는 열성적인 서퍼들도 있습니다. 저도 비가 와도 서핑을 할 때도 있습니다. 한국의 해안은 비 올 때 수질이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작년 여름 한국에 갔을 때 비 오는 날 부산 송정 해수욕장에서 아주 재미있게 파도를 탄 기억이 나네요.
서핑을 소개하는 지난번 글을 보고 서핑에 도전해 보기로 마음을 먹은 분이 계시다면, 우선 너무 기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 행복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나니까요! 그리고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멀리 보시라는 겁니다. 지난번에 이야기한 것처럼, 서핑은 인내심이 필요한 운동입니다. 바다에서 파도를 잡을 때뿐만 아니라, 서핑이라는 활동 전반에 익숙해지는 데에도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시간 내기가 어려운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이니만큼 날짜를 딱 하루 정해서 '내가 이 날은 무조건 파도를 타고 오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바다에 갔다가 실망하고 다시는 도전하지 않는 경우를 가끔 봅니다. 그보다는 몇 번이 되든 도전해 볼 생각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누구나 처음엔 초보였고, 시간이 걸린다고 아무도 비웃지 않거든요.
서핑에는 변수가 많기 때문에 아무래도 맨 처음에는 강습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맞는 장비를 고르는 법부터, 웻수트는 어떻게 입고 벗어야 하는지, 정확히 어디서 파도를 타야 하는지, 각 해변마다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등 처음에는 막막한 것이 많죠. 마치 갓난아기가 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보통 두세 시간 정도 진행되는 첫 강습에서는 기본적인 자세와 안전 수칙을 알려주고, 패들링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파도가 올 때에 맞춰 강습자가 서핑보드를 밀어서 파도를 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보드가 파도를 잡아 나아가면 강습자가 소리를 쳐서 팝업하여 일어날 때를 알려주죠. 이때 파도에 충분한 힘이 있으면, 운동신경이 좋고 운이 따라주는 분은 첫 강습에서 일어나서 파도를 타는 경험을 하실 수 있습니다. 이때 여러분이 타게 되는 파도는 화이트워터White Water입니다.
처음 서핑에서 위와 같은 모습을 기대하셨다면, 조금 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파도는 크게 깨지기 전의 그린웨이브Green Wave와 깨지고 난 후의 화이트워터로 나눌 수 있는데요, 위 사진의 그린웨이브는 화이트워터보다 훨씬 잡기 어렵기 때문이죠.
파도가 점점 커지다가 피크Peak라고 불리는 머리 부분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쏟아져 내리면, 쏟아진 부분이 관성에 의해 수면 위에서 해변을 향해 계속 나아가게 됩니다. 이런 상태의 파도는 거품 때문에 하얀색을 띠기 때문에 화이트워터라고 불립니다.
깨진 후에 바다 수면 위에서 나아가는 화이트워터는 앞으로 나아가는 힘만 있기 때문에 보드 위에 가만히 있어도 나를 앞으로 밀어줄 수 있지만, 위로 올라오는 힘도 있는 그린웨이브는 파도가 내 밑으로 지나가기 전에 정확한 타이밍에 일어나 보드 뒤를 적당히 눌러줘야만 나를 밀어줄 수 있습니다. 확실히 처음 서핑을 하는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죠. 맨땅에 헤딩하며 서핑을 배운 저는 1년도 넘게 걸렸습니다.
화이트워터 파도가 올 때, 보드 위에서 밸런스를 잘 잡은 채로 해변을 향해 패들링을 하고 있으면 거의 예외 없이 화이트워터를 잡을 수 있습니다 (파도의 힘이 충분하다면요). 허리 힘으로 상체를 들고, 두 다리를 모두 보드 위에 올려두고, 보드 앞코가 수면에서 주먹 하나 정도 높이로 떠 있게 하는 것을 명심하세요. 정확한 타이밍에 일어나야 하는 그린웨이브와 달리 화이트워터는, 파도를 잡은 후에 여유를 가지고 조금 기다렸다가 안정감이 느껴질 때 팝업하여 일어나도 무방합니다. 바로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하면 밸런스가 무너져 물에 빠지기 쉽습니다.
첫 강습을 받고 어느 정도 감을 잡으셨다면, 계속해서 강습을 받으실 수도 있고, 장비를 렌트하거나 구매해서 혼자서도 서핑을 하실 수 있습니다. 꾸준히 강습을 받는 것이 나쁜 자세를 교정하고 빨리 실력을 향상할 수 있는 길 입니다만, 저처럼 느려도 맨땅에 헤딩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은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바다는 일단 나가면 어쨌든 배울 것이 있더라고요.
한국의 많은 서프샵이 장비 보관 서비스를 제공하고, 초보자가 많이 사용하는 8피트(약 240cm) 짜리 보드가 들어가는 소형차도 많으니, 장비를 구매하는 것도 생각처럼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저도 루프랙이 있어야만 차로 서핑보드를 나를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도요타 프리우스에도 8피트짜리 보드가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고민 없이 첫 보드를 구매했습니다. 제 차는 폭스바겐 골프인데 뒷좌석과 조수석을 접으면 8피트 보드가 여유있게 들어갑니다. 처음엔 저렴한 가격의 코스트코나 이마트 소프트보드로 시작하셔도 무방합니다. 제 보드와 웻수트가 생기고 나니 바다에 더 자주 가게 되더라고요. 시간이 되고 파도가 좋아 보이는 날은 무작정 바다로 쏘는 겁니다. 일찍 일어나서 새벽에 가면 차도 덜 막히고 좋지요.
만일 마음을 먹고 힘들게 바다에 갔는데 파도가 없다면? 저는 노를 저어 타는 SUP(Stand Up Paddle)보드를 타거나 맛집탐방 등 다른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돌아오시길 추천합니다. 파도가 없어도 패들링 연습은 할 수 있다며 강습이나 렌탈을 해주는 샵이 더러 있습니다만, 저는 그럴 것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파도가 없으면 다음에 또 오면 되죠. 다른 재미있는 것을 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바다는 바라보기만 해도 좋잖아요. 😄
미리 파도 차트를 확인하고 가면 허탕을 치는 일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물론 차트가 항상 맞지는 않아서 서퍼들이 "오늘도 뻥차트야!" 라고 말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만, 실시간 해변 상황을 보여주는 서프캠과 함께 차트를 참고하면 어느 정도는 파도 상황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서핑매거진 더블유에스비 팜WSB FARM 에서 한국 주요 해변들의 파도 차트와 웹캠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파도 차트는 어느 해변에서 파도를 탈 수 있는지 참고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가능하다면 좋은 장비를 구비한 서핑샵에서 강습을 받으시고, 불친절한 샵은 미련 없이 걸어 나오세요. 서핑은 초보를 비웃고 으스대는 운동이 아닙니다. 걱정과 불안은 바다에 맡겨 두고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는 운동이죠. 직원의 태도를 보면 그곳이 서핑을 사랑하는 곳인지, 파도는 타지만 진정으로 서핑을 하지는 않는 곳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제 모든 염원에도 불구하고, 첫 시도에서 파도를 타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너무 실망하지 마시고, 몇 번 더 기회를 주시길 바랍니다. 올해가 아니면 내년도 있고, 그다음도 있습니다. 이곳 캘리포니아에서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서핑을 하는 분을 심심치 않게 봅니다. 평생 친구를 사귄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다가가시면, 분명히 친해질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언제나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 🌊
* 글쓴이 - 지민웅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서 게임회사에 다니며 취미로 음악과 서핑을 하고 있습니다. 서핑을 시작한 지는 2년이 조금 안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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