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있는 이야기가 좋다.

서브컬쳐오딧세이

2023.10.17 | 조회 1.01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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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어떤 콘텐츠 또는 이야기가 인기를 얻으면, 원래 예상했던 것보다 오랜 생명을 갖는 경우가 흔해져 버렸다. 어마어마한 인기를 모았으나 어느덧 많은 이들의 관심에서 벗어나고 있는 미드 워킹데드가 좋은 예다.

만화 드래곤 볼을 그린 토리야마 아키라가 원래 드래곤 볼을 시즌 1에서 끝내려고 했던 이야기도 유명하다. 드래곤볼 만화책이 전 세계적으로 너무나 큰 히트작이 돼버리자, 일본의 총리까지 찾아와서 연재를 계속해 달라고 하는 덕에 우리는 깊은 산속에 살던 원숭이었던 손오공이 우주인이 되고, 머리 색깔을 바꿔가며 초 사이언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드래곤 볼을 좋아하는 우리로선 반가운 일이었지만, 작가에게는 그게 꽤나 고역이었는지, 드래곤볼 이후에는 절필을 해 버렸다. 왜 안그랬겠는가?

이때만 해도 손오공은 외계인이 아니었다.
이때만 해도 손오공은 외계인이 아니었다.

게임은 때로, 사실상 엔딩이 없어 보이는 경우도 많다. 스토리라인을 가진 게임이라면 최종 보스를 물리친다거나 수수께끼를 푸는것으로 엔딩을 삼을 수 있겠지만, 배틀그라운드 같은 대전 게임이나, 이론적으로는 끊임없이 콘텐츠가 업데이트되는 MMO RPG 같은 경우에는 엔딩을 말하기 힘들다. 사람들이 모여 게임을 하고 승패를 확인하는 보드게임과는 다르다.

이렇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게임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줘야할 게임이 자칫 우리의 삶을 침식하게 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게임은 삶의 시뮬레이션이지만, 그 시뮬레이션 안에 갇힐 수도 있는 게 인간이다. 이걸 사람들은 과몰입이니, 중독이니 하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다.

게임에 잠식되지 않으면서 게임을 재미있게, 나아가 잘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그것은 자기 나름의 엔딩을 상정하는 것이다. 완결된 스토리의 완성, 또는 특정 목표(또는 퀘스트)에 게임 플레이를 집중하는 것. 또는 특정 조건 안에(예를 들어 하루에 한판으로) 자신이 얼마만큼 도달할 수 있는지 집중해서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에 대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엔딩을 설정하는 것. 이것은 게임 플레이 자체를 놓고 우리가 벌이는 일종의 메타게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메타게임을 통해, 우리는 게임을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고 우리 스스로를 게임의 주인으로 회복시킬 수 있다.

‘이론적으로’ 끝이 없는 게임이 있을 수 있겠지만 실제로 그런 게임은 없다. 모든 게임은 언젠가 끝난다. 의도하고 끝을 내느냐, 돈을 벌기위해 꾸역꾸역 운영되다가 잊혀지면서 사라지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게임은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 만든 자기 완결적이고 폐쇄적인 하나의 세계다. 삶이 죽음을, 탄생이 소멸을 전재로 하듯, 끊임없이 이어지는 게임들은 사실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는 수많은 게임들의 집합이다. 우리가 모든 삶을 다 살아 볼 수 없듯이. 그 모든 게임들의 엔딩을 볼 수는 없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자신의 엔딩이 필요하다.

엔딩이 없어 보이는, 끝이 없는 콘텐츠들은 사실 우리의 착각과 욕망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것은 때로 창작자, 그리고 소비자 모두의 즐거움과도 거리가 있어 보인다. 자기가 그린 만화가 너무 잘 팔리기 때문에 꾸역꾸역, 의도하지도 않았던 이야기를 억지로 쥐어짜야 했던 만화가가 즐거울 수가 있었겠는가?

드래곤볼의 전작인 닥터 슬럼프 같은 만화를 보면, 만화가가 자기가 그리는 만화라는 매체 자체를 얼마나 즐기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드래곤볼의 첫 번째 이야기까지만 하더라도, 같은 느낌이 전해졌다. 그러나 드래곤볼 이후로 토리야마 아키라는 만화라는게 정말로 지긋지긋 해져 버렸던 것 같다. 비슷비슷한 이야기가 계속되는 와중에 나중에는 작화까지 붕괴되어 갔던 것을 보면.언젠가는 끝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억지로 이어나가게 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욕망의 결과다. 그렇게 억지로 생명을 연장한 이야기들은 상업적으로는 성공할 망정, 그 과정에서 창작자와 독자가 사랑했던 모습을 잃어버리게 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는 이미 처음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이것은 마치 삶에 대한 은유처럼 생각된다. 우리는 영원한 삶을 꿈꿀 때도 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영화 에이리언의 프리퀄인 프로메테우스에서 영원한 삶에 대한 욕망으로 인류의 기원을 찾아 떠난 피터 웨이랜드가 만난 것은 파국이었다. 삶의 엔딩을 받아들이지 않고 영원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많은 이야기에서 빌런으로 그려진다.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도 그렇고, 유태인 전승에 등장하는 세상을 영원히 떠도는 아하스페르츠에게 영생은 애당초 저주가 아니었던가? 허망한 욕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삶은 잠식되고 부서져 버리고 만다.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얻고 상업적인 목적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다가 용두사미로 끝나고 소리소문 없이 잊히는 수많은 만화들 중 상당수는 상업적으로는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원래 만화를 그렸던 사람의 바람이었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삶이 하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그 엔딩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편이 이 이야기를 정말 재미있게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우리 삶의 주인이 되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마치 우리가 즐기는 게임에 압도되지 

만화가 친구 왕지성이 그려준 정희권
만화가 친구 왕지성이 그려준 정희권

*글쓴이 - 정희권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살고 있습니다.

보드게임을 만들며 글을 씁니다. 세 아들과 강아지 한 마리를 키웁니다. 스파이시, 렉시오, 리니지2 보드게임, 등 20여종의 게임을 직접 개발하거나 프로듀싱 하는 일을 했고, 단행본 <세상의 모든 청년>과 <내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의 공저자로 참여 했습니다.

정희권의 브런치 https://brunch.co.kr/@ezns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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