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술형 시험, 절대평가, 지역마다 다른 시험 문제…이게 정말 입시 맞아?
독일에서 유학 중인 남편은 이웃의 부탁으로 19살 독일인 학생의 입시 수학 과외를 한 적이 있다. 이 곳에서는 애초에 입시를 위한 과외도 흔치 않은데, 이 아이의 어머니가 한국인인지라 부족한 수학 점수가 걱정되어 주변에 믿을 만한 한국인에게 부탁을 한 것이다. 과외 학생과 이런저런 말을 붙이다보니 독일의 입시 제도에 대한 이야기도 꽤 나눌 수 있었다. 독일에도 한국의 수능같은 ‘아비투어’라는 시험이 있다. 대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이 시험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점수를 받아야 한다. 신기한 건 모든 문제가 서술형 시험이라는 점이다. 서술형 시험이라고? 1점 차이로도 당락이 오가는 한국의 수능 시험을 생각하면 모든 문제를 채점자의 주관이 반영될 여지가 높은 서술형 방식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주마다 아비투어 시험을 다르게 주관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입 시험을 보는데 주마다 문제가 다르면 난이도도 다른 것 아닌가? 특정 주에서 만점자가 더 많이 나온다거나 쉬운 문제가 나오면 어떤 지역에서 시험을 볼 지 입시 전략을 치열하게 겨루게 될 것 같은데. 심지어는 어떤 주에서는 아비투어를 볼 과목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데, 어떤 학생을 영어를 선택하고 어떤 학생은 수학을 선택한다는 것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수능에서도 사회탐구와 과학탐구는 선택 과목이 있지만, 아무래도 주요 과목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기도 하고, 그조차도 객관식 시험이기에 참작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독일의 입시 제도에서 변별력은 크게 의미가 없어보인다. 서술형이라면 문제와 채점 기준에 따라 점수가 달라지기 때문에 만약 한국이었다면 아비투어 출제자나 출신의 선생님이 입시 시장에서 그야말로 스타 강사로 수십 억씩 벌고 있지 않을까. 채점자의 주관이 반영될 수 있는 서술형 시험만 보는데도 독일의 사교육 시장이 과열되지 않는 건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시험이 모두 절대평가이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누구보다 더 잘 볼 필요 없이 내가 이 과목을 성실하게 공부해서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를 보이면 좋은 점수를 받는다. 아비투어는 그저 대학 과정을 학습할 자격을 부여하는 확인 절차에 불과하다. 상대평가가 아니기 때문에 시험도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기괴해질 필요가 없다. 모두가 열심히 해서 모두가 좋은 점수를 받으면 변별력 낮은 시험이 되는 한국의 입시 제도에서는 점수차를 내기 위해서 점점 더 어렵고 기괴한 문제를 개발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시험 난이도를 낮춰서 만점자가 많아지면 누가 좋은 학교를 갈 지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야말로 대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수학 문제가 뭐가 이렇게 쉬워?’ 과외가 끝나고 나서 남편이 늘 하던 말이다. 아비투어가 몇 달 남지 않은 시점에 기출 문제를 풀어봐도 온통 기본 개념을 숙지하고, 원리를 증명하는 문제들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다 모두가 열심히 하면 모두가 백점맞는 거 아닌가 라는 말이 나올 만큼 문제는 기본에 충실했다. 돌이켜보면 수능 수학은 공식을 잔뜩 외운 후 꼬여있는 문제에 외운 공식을 열심히 동원해서 풀어낸 기억들이 대부분이다. 단 한 번이라도 수능 시험에서 수학 공식을 증명하는 방식의 문제를 풀어봤던가 생각하면 없다.
스카이와 인서울 없는 대학 입시, 중요한 건 “문제 난이도”가 아닐텐데
그야말로 이상적인, 사교육없이도 누구나 노력하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이상적인 독일의 입시 제도는 어떤 배경에서 가능한걸까. 일단 독일에는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가 없다. 즉 전공 무관 전국의 모든 수험생들이 열망하는 대학교는 없다. 물론 이 곳에도 각 전공별로 명문대라고 손 꼽히는 대학들이 있지만 한국처럼 일렬로 줄 세울 수 있는 간판 대학과 비교하면 다른 느낌이다. 의대, 약대, 경영대 등 특정 학과를 제외하고는 자기가 살고 있는 주 안에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인서울’이라고 하며 서울 안에 있는 대학교에 가는 것을 하나의 기준처럼 언급하는 반면 독일에서 ‘인베를린’ ‘인뮌헨’ 같은 개념은 없다. 애초에 도시마다 대표적인 대학교가 있고, 대도시도 여럿이라 적당히 대도시의 주립 대학이라면 좋은 학교라고 본다. 특정 학교 특정 학과를 제외하고는 입시 경쟁률이 치열하지 않기 때문에 최소 기준만 맞추면 대부분 무던히 합격한다. 외국인들도 마찬가지라서 어학 증명과 고등학교 성적과 수능 성적표를 제출하면 적당히 비인기 학과 정도는 들어갈 수 있다.
그렇다고 독일의 학생들은 학업 부담이 없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대학 입학 이후 본격적으로 압박이 시작된다. 독일의 주립 대학은 학비가 거의 없다 싶을 만큼 저렴한데, 학교마다 다르지만 한국 사립 대학의 1/10 정도 된다. (한국은 대부분 명문대가 사립대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독일은 국립대를 훨씬 더 선호한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입학도 어렵지 않고, 학비도 부담이 없다는 건 사실상 독일은 학생들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공부할 수 있도록 공공 교육을 제공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인지 졸업은 까다롭다. 기회는 많은 사람에게 주지만 학업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은 철저하게 기회를 박탈한다. 전공 과목을 세 번 이상 낙제하면 독일 전역에서 해당 전공으로 학업을 지속할 수 없다. 그래서 두 번 낙제한 학생들이 다른 전공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 주마다 차이는 있지만 내가 살고 있는 NRW주의 대학교에서는 수업에 출석을 할지 말지, 시험을 치룰지 말지도 본인 선택이라 사실상 모든 것이 자유롭지만 졸업 요건을 맞추지 못하면 졸업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독일인 친구들이 자기 소개를 할 때 “그 대학교에서 공부했어”와 “그 대학교를 졸업했어”라는 말은 의미가 전혀 다르다. 한국 대학교의 졸업장은 입학 시험의 치열함에서 결정된다면 독일 대학교의 졸업장은 대학 입학 후 학업 성취 결과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즉 대학 입시를 위한 아비투어 시험이 한 학생의 대학 졸업장에 엄청난 영향력이 미치지 않기 때문에 겨우 1점차로 울고 웃는 변별력을 갖춘 시험 자체가 의미가 크지 않다.
수능 변별력이 없어져도, 결국은 줄 세우는 구조 안에서라면 어떤 식으로든 기괴해질 수밖에 없다.
확실히 지금의 한국 대학 입시 시스템은 기괴한 면이 있다.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명문대에 입학해도 심도 있는 토론이나 기본적인 영어 회화도 어려워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사교육의 비중을 제 아무리 낮춘다 한들 변별력이 없어서 만점자가 수두룩하게 나오면 수능 외 내신, 논술, 학생부 기록 등 주관적 영역을 동원해서 어떻게든 변별력을 만들어내려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다시 공정성 논란이 커지면서 수능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며 원점이 될 것이 뻔하다. 즉 시험 문제의 난이도를 높여 변별력을 갖는 것은 줄세우기식 입시에서 파생되는 지극히 당연한 하나의 현상일 뿐, 근본적인 입시의 목표가 달라지지 않는 이상 어떻게 해서든 대학마다 변별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때론 기괴하게라도 찾을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제일 공정한, 1등부터 꼴등까지 확실하게 줄 세울 수 있는 시험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지독한 학벌 사회와 현 입시 시스템 속에서는 교육의 본질을 고민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지경이다. 당장 수능 시험의 문제 난이도를 높이든 낮추든 결국은 줄을 세우겠다는 단 하나의 목적을 향해 달려가기 때문이다. 공교육을 충실히 공부한 학생이 졸업을 한 후에 어떠한 학업 능력을 갖추게 되었는지, 대학의 전공 과목을 수학하기 위해 어떠한 소양을 길러야 하는지 고민하기 어려운 이유는 입시와 연관된 수많은 외부적 요인들(SKY인지, 인서울인지만을 맹렬하게 구분하여 서열화하는 사회적 분위기)이 입시 그 자체와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시험을 모두 주관식으로 출제하고, 지역마다 다른 문제를 출제하고, 선택 과목에 대한 규칙도 상이하고, 그럼에도 사교육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고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높은 사회가 같은 하늘 아래 존재한다. 공교육의 정상화를 꿈꾼다면 문제 난이도가 아니라 그 사회 안에서 입시가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과 입시 시스템 그 자체를 참고해야 하지 않을까. 대학 입시 자체가 줄 세우기가 목적인 현실을 지적하지 않고 고작 시험 문제 난이도를 문제 삼는 건 사실 앞으로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말과 다르지 않게 들린다.
* '독일에서 살게 될 줄은' 글쓴이 - 메이
유학생 남편과 함께 독일에서 신혼 생활을 꾸리며 보고 듣고 경험하는 이야기. 프리랜서로 일하며, 독일어를 배우면서, 일상의 풍경들을 낯선 시선으로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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