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쏟아지던 어느 날 월터 할아버지를 처음으로 만나고, 또 그의 친구들과의 커피 모임에 초대된 그날 이후 비록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나도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매일 오전 10시 미사가 끝나면 11시 즈음 동네의 커피숍에서 (말하자면) 브런치 스타일로 차와 스콘을 먹곤 했다. 이들은 요일마다 다른 커피숍을 이용했고, 아무리 길어도 2시간을 넘지 않게 머무르며 항상 커피숍과 다른 손님들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끔은 커피숍이 아니라 반짝이는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커다랗고 긴 창문이 있는 친구들의 응접실에 초대받기도 했다. 하얀색 테이블보 위로 봄날의 꽃밭처럼 화려한 색색의 찻잔과 접시가 차려진 커다란 테이블에 앉아서 따뜻한 홍차와 곁들여 갓 구운 스콘을 먹으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끊이지 않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조용히 이어지는 대화들 속에서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이야기하고 때로는 하얀 손수건으로 젖은 눈을 닦기도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마치 왈츠를 추고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 같다는 환상에 빠지기도 했었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 나는 그들이 나누는 또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는데 그것은 마치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책을 읽고 또 읽다가 어느새 나 자신이 책 속의 주인공이 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을 때의 것과 비슷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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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내가 한국에 다녀오고 또 아일랜드의 일상이 바빠지면서 나는 친구들과의 커피 모임에 자주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미사 시간 이후에나 길거리에서 또 마트에서 친구들과 마주치면 그들은 언제나 살갑게 나의 안부와 또 내 부모님의 안부를 물어 주는 친근한 분들이었다. 게다가 시간이 더 흘러서 내가 임신을 하고 입덧이 시작되면서, 커피 향과 갓 구운 스콘의 냄새가 참기 어려워지면서 간간히 나갔던 커피 모임을 아예 나가지 못하자 친구들은 가끔 내게 문자를 보내어 안부를 묻기도 했다.
순두부찌개, 치즈돈가스, 육개장, 굴짬뽕, 양념통닭, 아이스커피, 단팥빵, 즉석떡볶이... 남편이 출근 한 뒤 다시 침대로 돌아와 누워 있으면 마치 만화 속의 한 장면처럼 말풍선 속으로 온갖 음식들이 떠올랐다. 나는 한국에 살면서 음식에 진심인 편이었는데, 양식도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얼큰하고 덜 큰 한 ‘한식’을 너무나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입덧의 강을 건너고 나니 그다음에는 먹고 싶은 음식들이 매일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자상한 남편은 파운드케이크, 컵케이크 등을 구해 와서 따뜻한 차와 함께 정성스럽게 내 앞에 차려주곤 했지만 미안하지만 그것들은 정말로 내가 원하는 음식들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흰쌀밥에 불고기와 김치를 얹어 한 입 가득 먹거나 뜨거운 순두부를 후후 불어 한입에 후루룩 먹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임의 친구들 중에 한 명이었던 헬렌이(헬렌 할머니가) 내게 전화를 했다. 매년 독일에서 아일랜드로 여름휴가를 오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중에 한 명이 한국인이라고 하면서 그 댁에서 식사 초대를 했는데 시간이 되면 같이 가자고 했다. 그녀가 일부러 내게 전화를 해 주었고, 나 역시 더 이상 입덧을 하지 않게 되었던 터라 흔쾌히 초대에 응했는데 한국 분의 식사 초대라고 생각하니 괜히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드디어 그날이 되어, 나는 남편과 함께 후식으로 먹을 케이크를 사서 초대받은 댁으로 향했다. 깔끔하게 정돈된 정원을 지나 사과나무 두 그루의 환영을 받으며 뒷마당 한 편에 주차를 해 두고 초인종을 눌렀다. 잠시 뒤 문이 열리며 맥주잔을 손에 든 독일인 남편과 엄마와 비슷한 연배의 중년의 여성이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겨주셨다. 솔직히 말하면 두 분들과 어떻게 인사를 나누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두 분의 환대와 함께 집안에서 풍겨 나오던 불고기 냄새가 또 그 냄새를 맡고 살짝 흥분하기 시작했던 나의 모습만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다.
초대받은 다른 분들은 우리 보다 먼저 도착해서, 정원에서 웰컴 드링크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바로 주방으로 가서 아주머니께 심부름할 것이 없는지 여쭈어 보았는데, 대구식의 억양을 가진 그분은 내게 고개를 돌려 따뜻한 눈빛으로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임신을 했다고 들었는데, 그냥 편하게 앉아서 식사를 기다려요. 그동안 먹고 싶어도 한국 음식을 먹을 기회가 없었을 텐데, 오늘 우리 집에서 맛있게 많이 먹고 가세요. 며칠 전에 배추김치를 담갔는데, 아주 맛있게 익었어요. 이따가 집에 갈 때 한 통 담아줄게요. 가져가세요.”
나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마치 말 잘 듣는 딸처럼 주방에서 나와 정원으로 가서 남편의 옆자리에 가만히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잠시 뒤 남편 분이 정원으로 나와 식사 준비가 다 되었다는 말씀을 하며 집 안으로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거실 겸 응접실로 쓰이는 커다란 내부에 10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에는 방금 차린 음식들이 김을 내고 있었는데, 한상 딱 벌어지게 차려진 음식들 앞에서 나는 그만 입이 떡 벌어진 채로 ‘우와’ 하며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흰쌀밥, 갓 담근 배추김치, 각종 야채와 함께 볶아진 불고기, 가지무침과 된장찌개. 한상 가득 차려진 음식은 지난 몇 주간 매일 머릿속으로만 먹었던, 먹고 싶었던 그 음식들이었다. 고향인 경상도식으로 만들어진 짭짤한 배추김치와 짭조름하고 달달한 불고기는 내 입속으로 흰쌀밥과 함께 끝도 없이 들어갔다.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시던 ‘숙’ 아주머니는 밥을 더 줄까 물어도 보시고, 식은 된장국을 다시 데워서 나에게 가져다주셨다.
식사가 끝나고 후식을 먹을 시간이 되자 독일식의 사과 케이크와 영국식의 찻잔과는 또 다른 디자인의 독일식 찻잔 세트에 담긴 진한 커피가 테이블에 차려졌다. 1970년대 간호학과 학생이던 ‘숙’ 아주머니는 당시 독일에서 간호사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해서 한국을 떠난 ‘파독 간호사’ 분이셨다. 그곳에서 아시아에 관심이 있었던 정치학도와 사랑에 빠졌고, 결혼 후 남편의 정치인생을 함께 한 스토리를 가지고 계셨다. 나는 흥미진진한 그녀의 인생사에 푹 빠져 한참 동안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엇보다 오늘 처음 만난 분이지만 한국인이라는 공통점과 함께 마치 딸처럼 살뜰히 챙겨주시는 모습에 감동을 받아 오늘의 만남이 너무도 감사하고 귀중하게 느껴졌다.
나는 숙 아주머니가 주신 김치가 가득 담긴 통을 보물단지처럼 소중하게 다루며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에 잘 넣어두었다. 며칠이 지난 뒤 남편이 시리얼을 먹기 위해 우유를 그릇에 따르면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여보, 나는 김치향 우유를 시리얼에 넣어 먹을 거 에요.”(^^)
그날 그 자리에서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었던 뱃속에 있던 아이는 이제 10살의 소년이 되었다. 언젠가 아이에게 ‘친구’란 무엇인지를 물은 적이 있다. 아이의 대답은 ‘나의 좋은 시간, 힘든 시간, 무서운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이라고 답했고, 나는 그 대답이 참으로 멋지다고 생각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땅에서 제법 낯가림이 심한 나에게 처음으로 다가와 말을 걸어준 월터 할아버지 덕분에 그분의 친구들을 만나고 또 나는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 아일랜드에서 살아온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내가 쓰는 영어의 발음이나 어색한 문장을 지적하면서 친절함을 가장하여 은근히 차별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가 많았고, 나는 그때마다 상처를 받곤 했다. 하지만 나의 소중한 친구들은 그동안 단 한 번도 나의 억양을 지적하는 일도 없었고, 또 한국에서의 나의 경력과 경험을 존중하면서 아일랜드에서 그 경험을 다시 살려보라고 늘 격려해 주곤 했다.
그 후로도 따뜻하고 지혜로운 나의 친구들은 아이가 태어났을 때 정원에서 한 아름 꽃을 따서 초콜릿과 함께 선물하며 아이를 만나러 와 주었고, 또 다른 친구는 직접 손으로 뜨개질을 해서 아이의 담요를 만들어 선물하기도 했다. 또 아이의 세례식에는 한국에 있는 나의 가족을 대신해 참석해 주어 진심으로 아이의 앞날을 축복해 주기도 했다. 나의 친구들은 그렇게 나의 좋은 시간 그리고 힘든 시간을 나와 함께 해 주었다. 그리고 나 역시 그들의 시간에 함께 하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살고 있다.
하지만 인생의 경험이 많은 친구를 둔다는 것은 때로는 그들과의 이별을 언제나 마음속에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일랜드 일상다반사
아일랜드 사람 아빠와 한국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한 명과 아일랜드 시골 마을에서 살면서 겪고 있는 일상의 이야기들입니다.
도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 길에서 만난 아일랜드 사람과 결혼을 했습니다. 얼마 전부터 아일랜드에서 타향살이를 하면서, 경험하고 느낀 것을 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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