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여기만 고치면 진짜 예쁘겠다” “살만 빼면 정말 예쁠 것 같아” 30년 넘게 한국에서 살면서 수없이 많이 들은 이 말들은 사춘기 시절엔 꽤 날카롭게 다가오기도 했었다. 꼭 성형수술이나 다이어트가 아니더라도 치아교정이나 운동을 권하는 말들도 묘하게 기분을 가라앉게 했다. 거울을 보는 일은 자연스레 내가 가진 단점을 하나하나 찾는 일이 되었다.
어느 순간 그런 말을 들어도 마음의 생채기가 나기는 커녕 익숙해진 나머지 나 역시 남을 보며 비슷한 생각을 떠올릴 때가 있다. 비록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어느새 무뎌지고 있던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메이크업으로 홍조와 잡티를 가리고, 통통한 하체를 보완할 옷을 사고, 넓은 하관을 가릴 헤어스타일을 찾았다. 비싼 돈을 주고 컨설팅을 받으며 퍼스널컬러를 찾고 단점을 가리고 장점을 부각하는 기술을 익히는 내가 그럴듯한 사회인으로 성장한 느낌도 들었다.
독일에 와서 외모 때문에 처음 충격을 받은 건 헬스장에서였다. 거울 앞에서 운동을 하는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나와 너무 다르게 생겨서였다. 의외로 눈에 띄는 건 피부색이 아니었다. 그들의 넓게 벌어진 어깨와 골반, 길쭉하게 뻗은 팔다리, 작은 얼굴이 나와는 너무 달랐다. 처음으로 내 광대가 넙대대한 것을 알았고, 어깨와 골반이 좁아서 마치 어린이같은 체형의 여자가 거울 앞에 서있었다. 그게 나였다. 한국에서는 부단히 노력한 덕분에 남들과 비슷한 뚱뚱하지 않은 외모를 갖게 되었는데, 독일에서는 노력할 수 없는 요인들로 인해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한국에서처럼 다이어트를 하거나 스타일을 바꿔도 숨기지 못하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습관처럼 그들과 닮으려고 했다. 다이어트를 할 게 아니라 어깨를 넓히고 하체를 키우겠다는 목표로 운동 강도를 높였다. 물론 그런다고 그들의 타고난 골격을 닮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달라도 너무 다르니까 애써 닮으려는 노력 자체가 금세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그제서야 나를 다시 보게 됐다. 어설프게 누군가를 따라하고 나의 단점을 극복하는 과정을 언제까지 해야한단 말인가. 나 이제는 외국인의 외모까지 흉내내려고 하는건가하고.
사실 어떤 나라를 가도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외모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있다. 독일에도 극단적으로 다이어트를 위해 하루 한 끼만 먹는 사람이 있다. 금요일 저녁 번화가로 몰려가는 젊은이들을 관찰하면 지금 유행하는 미의 기준이 무엇인지 금방 알아챌 수 있다. 한국과 다른 기준일 뿐 독일에도 분명 유행하는 외모가 존재하고 그를 따르는 젊은 사람들은 많다. 독일의 유튜버들도 최신 유행하는 메이크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들 그에게 너무 아름답다는 찬사를 보내며 제품 정보를 묻는 걸 보면 어딜가나 비슷해 보인다.
다만 뷰티 유튜버의 체형과 생김새는 한국에 비해 꽤 다양하다. 빅사이즈부터 마른 체형, 하얀 피부부터 그을린 피부, 잡티가 그대로 보이는 모습까지 숨기지 않는다. 그들에게 함부로 못 생겼다고 말하는 악플들도 보이지 않고, 대부분 아름답다고 칭찬한다. 유행하는 메이크업이 있다고 해도 다양한 체형, 얼굴형, 이목구비가 공존한다. 반면 한국의 뷰티 유튜버들은 대부분 마르고, 하얗고, 깨끗한 피부를 가졌거나 그렇게 보이는 방식으로 메이크업을 한다.
독일에서는 체형의 단점을 그대로 드러내는 옷들도 거리낌없이 입는 사람도 많다. 살이 쪄도 비키니를 입고 여름이면 노출이 많은 옷을 입고 거침없이 활보한다. 가끔 속옷이 다 보이는 옷차림에 어색해하는 건 나 뿐이다. 그들을 향한 노골적인 시선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점이 많아도 애써 가리지 않고 햇볕을 즐긴다. 유행하는 패션은 있지만 다양한 체형들이 공존한다.
생각해보면 한국의 미적 기준이 독특한 것은 미적 기준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따르지 않았을 때 공공연히 지적을 받는다는 것이다. 하나의 기준을 벗어났을 때, 예컨대 살이 찌거나 화장을 하지 않으면 빈번하게 그에 대한 지적을 받는다. 어쩌면 한국은 예쁜 것을 좋아한다기보다는 미적 기준에서 벗어난 이질적 외모 자체를 거부하는 것 같단 생각도 든다. 예쁜 사람이 너무 많고, 대부분이 외모를 가꾸며, 예쁘지 않은 외모를 보면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체형, 피부, 머리색, 외모가 공존하는 사회에서는 어떤 모습이든 외모를 개선해야 한다는 부담이 적다. 독일에서 사는 3년 반의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외모에 대한 지적을 받은 적이 없고, 이 곳에서는 타인의 외모 얘기 자체가 화두가 되지 않는다.
묘한 해방감이 들었다. 어떤 여름에는 선크림 없이 몇 시간씩 햇볕을 맞으며 보냈다. 주근깨가 가득 차도 내 얼굴이 불만스럽지 않았다. 3년이 넘도록 미용실을 안 가서 푸석푸석해진 긴 머리를 가위를 들고 자르고 싶은 만큼 잘랐다. 짝짝이가 된 단발로 며칠을 보내다 거슬리면 다시 잘라서 길이를 맞췄다. 아무도 내 외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처음으로 느끼는 해방감을 즐기기도 했다.
“한국 가면 시술을 안 받는 내가 너무 뒤쳐지는 것 같아요” 자유로움은 사실 오래 가지는 않았다. 한국 친구를 만나면 비슷한 푸념을 늘어놓게 된다. 피하려고 해도 습관적으로 외모 얘기가 나온다. 몇 년 후에는 한국에 돌아갈 상황이었기에 더욱 비슷했다.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에는 외모 업그레이드가 늘 포함됐다. 한 때 외모가 예뻐지는 것이 자기 만족이자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그걸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게 정말 행복인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예뻐지고 싶으면서 동시에 안 예뻐도 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다.
* '독일에서 살게 될 줄은' 글쓴이 - 메이
유학생 남편과 함께 독일에서 신혼 생활을 꾸리며 보고 듣고 경험하는 이야기. 프리랜서로 일하며, 독일어를 배우면서, 일상의 풍경들을 낯선 시선으로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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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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